어느 날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내 삶은 고난의 연속일까··· 숨 좀 쉬려 하면 또 덮쳐. 왜 나만 이래···”
거실 끝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고3아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고난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대.”
나는 그 말을 가만히 되새겼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왜 나만’이라고 속으로 되뇌고 있던 나.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아이가 내가 견딘 시간을 기억하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누군가를 위한 버팀목이 되었다는 사실은 나 자신을 붙잡는 가장 단단한 지지라는 것을.
아들의 그 한마디는 어떤 위로보다 깊었고, 어떤 판결보다 명확했다.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다시 세상 앞에 가슴을 펴고 설 수 있는 진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삶은 또 한 번, 예고 없이 나를 밀어냈다.
조용했던 일상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익명의 제보가 접수되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내용은 우리 팀장의 잦은 출장과 자리를 비우는 행태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팀장 역시 나와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는 걸.
그녀는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었고, 가끔은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 조용히 울기도 했다.
그녀는 밖으로 도망치듯 자주 나갔다.
출장, 회의, 외근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자주 비우는 것도 결국 그녀의 숨구멍이었다.
반대로 나는 사람들 틈에 있는 것이 더 힘들었다.
시선, 말소리, 숨소리조차 짐처럼 느껴졌으니까.
내게 필요한 건 조용한 실내, 비워진 거리였다.
서로 다른 방식의 고통.
나는 안으로 숨었고, 그녀는 밖으로 도망쳤다.
우리는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다.
서로의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이 조직에서 가능한 가장 인간적인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의 빈자리를 탓하지 않았고, 그녀는 나의 고요를 건드리지 않았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우리 둘만의 균형.
정확히 같은 병명은 아니었어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서로가 지금, 가장 조심스럽게 살아내고 있다는 걸.
그러나 그날 이후, 사무실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상하게도 화살은 팀장이 아니라 나를 향했다.
과장은 말끝마다 비아냥을 섞었고, 회의 자리에서는 일부러 내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말투는 조롱이었고, 표정은 의심이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제발 조용히 살고 싶다. 괴롭히지만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