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정신과 진료실 앞에 앉은 나.
솔직히 말하면, 3개월 전부터 직장에서의 균열이 시작되던 그때부터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출근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버텼다.
‘1년만 버티면 근속승진이야.’
스스로를 그렇게 달래며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또다시 이 문 앞에 서게 될 줄은 몰랐다.
심리 검사지를 받아 들고 앉았다.
펜을 쥔 손이 떨렸다.
질문을 읽을수록 눈물과 콧물이 함께 흘러내렸다.
이건 단순한 ‘검사’가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 그동안 버텨온 시간이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확인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검사가 끝나고, 의사 앞에 앉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단서가··· 필요합니다.”
의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다시 오세요. 그때 써드릴게요.”
그 말에 안도와 슬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겨우 여기까지 왔다.
진단서를 받으러 집을 나서야 하는데···
현관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게 이렇게 두려운 일이었었나.
지난주 병원에 다녀온 뒤 식은땀과 오한, 한밤중 통증에 깨는 일들이 반복됐다.
‘나, 정말 회복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진료실 앞에 앉아 눈을 감았다.
문득 스물아홉의 나를 떠올렸다.
그 시절, 우리 부부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
마이너스 통장에서 신혼을 열었고, 신혼집은 보증금도 제대로 된 가구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돈에 대한 집착은 생존에 가까운 본능이었다.
남편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벅찼다.
나는 결심했다.
‘공무원 시험, 이번이 마지막이야.’
번번이 떨어졌지만··· 이번엔 끝까지 가기로 했다.
첫 도전은 26세. 6개월 만에 필기시험합격. 그러나 면접에서 낙방했다.
꼴찌로 붙은 예비 합격자.
당연히 떨어뜨리기 위한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이듬해, 또 낙방.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고, 기저귀를 빨며 법령을 외웠다.
밤마다 요약집을 붙잡고, 이겨낼 수 있다고, 꼭 합격하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마침내, 29세. 첫째가 돌이던 해. 최종 합격.
그날, 울면서 합격자 명단을 바라보던 순간.
나는 이겨냈다.
절박함을 버텨내며, 드디어 살아남았던 그날이었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두 달은 쉬어보시죠. 그다음에 다시 이야기해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괜찮겠죠?”
“저번보다는 괜찮아 보이세요.”
그 말에 웃음인지, 안도인지 모를 감정이 스쳤다.
그래. 이번에도 나는 살아낼 것이다.
그때처럼. 절박함 속에서도 일어났던 것처럼.
이번 병가도, 나를 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