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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

by 루비하루

민원인에게 전화를 건다.
예상은 했지만, 폭풍 같은 짜증과 불만이 쏟아진다.
10년간 지속된 민원,
그동안 쌓인 감정과 답답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시간의 통화가 끝나고,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시장 상인들은 아침 일찍 매대를 끌고 나온다.
도로까지 내다 장사를 시작하는 순간,
주택가 주민들의 불만은 이미 시작된다.
그러나 상인들에게는 그저 하루의 생계일 뿐이다.
돈을 벌어야 하고, 손님을 붙잡아야 한다.
그들 나름의 절박함이 그들을 도로 한가운데로 이끈다.

빌라 주민들은 시장이 활기를 띠기 전부터 이곳에 살았다.
노후화된 건물, 깨진 시설, 낡은 골목.
그들은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견뎌왔다.
낮에는 시장의 활기가 들어와 시끌벅적하지만,
밤이 되면 바퀴벌레와 쥐들이 길을 점령한다.
그 모든 혼돈과 불편을 감당해야 하는 건
결국 ‘없는 자’들, 주민들이다.

그 사이 아침이 오면, 상인들은 차를 타고 또 출근한다.
벤츠를 끌고 오는 이도 있고,
잘 갖춰진 장비를 실은 상인도 있다.
그들은 시장에서 돈을 끌어모으고,
자신들의 삶을 확장한다.
그걸 지켜보는 주민들에게는
단지 부러운 풍경일 뿐이다.
돈이 있었다면,
그들은 진작 이사를 갔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다.
돈 있는 자는 환경을 만들고,
없는 자는 그 환경 속에서 버텨야 한다.
시장 상인의 활기 뒤에는
밤의 혼돈과 주민들의 피로가 숨어 있다.
그렇게 매일이 반복된다.

그래서 결국, 이곳의 질서는 단순하다.
돈 있는 자는 웃고,
없는 자는 살아남는다.
누구도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자본주의란 그런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조금 잔인하다.


없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저 구청에 민원을 넣는 것,
“불법을 단속해 달라”는 요청을 주기적으로 보내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민원 아래에서 시달리는 공무원들은 또 다른 고충 속에 있다.
법과 현실, 규정과 삶의 괴리 사이에서
그들은 하루하루 버티며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법의 확립인가,
가난한 이들의 구제인가,
혹은 단순한 상생인가.

쉽지 않다.
돈 있는 자와 없는 자,
시장과 주택, 상인과 주민의 균형은
쉽게 맞춰지지 않는다.

시장은 활기를 띠지만,
밤에는 바퀴벌레와 쥐들의 향연이 이어지고
주민들은 다시 민원을 넣는다.
그 과정에서 아무도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그래도 모두는 살아간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잔인하다.
없는 자는 법을 믿고,
있는 자는 돈을 믿는다.
그리고 중간에 끼인 공무원들은
그 차가운 현실을 조용히 감당한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민원도, 장사도, 시장의 활기도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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