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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민상 Jul 28. 2024

인터라켄, 신공이 필요해

밀라노에서 인터라켄(Interlaken)으로 가는 보편적인 방법은 슈피츠(spiez)를 거쳐 가는 것이다. 슈피츠에 내리면 두 가지 선택지가 기다린다. 산과 호수를 옆에 두고 기차로 이동하는 것과 인터라켄 서쪽의 툰(Thun) 호수를 유람선으로 가로지르는 것이다. 한결같이 기차로 이동한 일정이었기에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유람선을 선택했다.


호수에서 처음 만난 스위스는 상상을 넘어섰다. 스위스 하면 떠오른 건 알프스가 펼쳐진 산새였는데, 하늘빛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호수가 기대를 넘어서게 한 거다. 이런 곳이 유레일 패스만 있으면 공짜니. 인터라켄에 도착해 처음 만난 스위스 아주머니도 첫인상을 해치지 않았다. 골목 안 숙소를 찾는 게 어려워 길을 물었다. 여행자가 많은 곳이기에 귀찮을 법도 한데, 오 분 정도 앞서가며 숙소가 보이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가던 길이 아니었던지 되돌아가는 뒷모습이 멀리 보이는 설산, 정갈한 집들과 어우러지며 정겨운 풍경이 되었다.

   

방 안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스위스를 담았다. 이렇게 완벽한 하루가. 내일 예정된 융프라우로 가는 길에 비가 온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돼야 평균이 맞춰질 테니. 그렇게 다음날 균형이 맞춰졌다.

    

날씨 영향을 크게 받는 여행지에서 달갑지 않은 날씨와 맞닥뜨렸을 때 ‘내가 언제’라는 신공을 사용한다. ‘내가 언제’ 비 오는 금강산에 오르겠어. ‘내가 언제’ 케이블카에서 안개 자욱한 장가계를 보겠어. ‘내가 언제’ 우중 골프만 일 년 내내 쳐보겠어. 이런 식이다. 그렇게 오르다 보면 비가 그친 정상은 공룡 등줄기 같은 능선을 보여주기도 하고, 구름 위에 떠있는 듯한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운해를 깔아 주기도 한다. 그리고 골프 점수보다 그늘집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잔에 의미를 두는, 내 취향에 딱 맞는 골프가 진행된다.     


그렇다고 해서 사천 미터 높이의 비구름을 보기 위해 융프라우에 올라갈 만큼 여유롭지는 않았다. 다음날로 일정을 미루고, 조금 낮은 위치에 있어 궂은 날씨에도 트레킹 할만한 피르스트(First)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도착한 그린델발트(Grindelwald) 매표소에선 피르스트에 오르면 곰탕 같은 구름만 볼지도 모른다고 했다. ‘난 당신이 모르는 신공을 가지고 있소.’ 속으로 답하며 주문을 외웠다.


케이블카가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유리 표면에 붙은 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내가 언제 비 오는 날에 바칼르프(bachalpsee) 호수까지 가보겠어’ 주문을 다시 외웠다. 간간이 보슬비가 내렸지만, 살짝살짝 보여주는 알프스다운 풍경들은 주문이 필요 없게 했다. 바칼르프 호수에 다다랐을 때 기대했던 봉우리는 구름에 가려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조그만 오두막집이 보였다. 이곳에 오르는 동안 다른 여행객을 못 본 것처럼, 오두막집 안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나처럼 신공을 가진 건 아닌가 보다.


안에서 몸을 녹이는 동안 아이들은 밖에서 뛰놀며 몸을 녹였다. 순간 아들이 들어오며 오른손에 든 종이를 흔들었다. “아빠, 이거 돈이야?”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오십 프랑이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여전히 사람은 없었다. 왠지 고생한 우리에게 내려진 선물처럼 느껴졌다. 선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멀리 융프라우도 보여주고, 윗옷을 한 꺼풀 벗길 갠 날씨까지 선사했다. 이렇게 신공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지는 하루가 추가된 거다.


그 오십 프랑은 어떻게 됐는지? 시내로 내려와 한여름에 내리는 우박을 피해 차양 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차양이 운명적으로 한식당 소속이더라. 우리를 보호해 준 고마움에 오십 프랑을 전했다. 주인장은 그리웠던 김치찌개와 잡채밥으로 보답했다. 아. 순서가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여행을 기록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그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는 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전업작가가 아닌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항상 부족함이 느껴지네요. 자신감 있게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있는 Part 2를 기대하며 Part 1을 완결합니다. 구독자님, 동료 작가님 감사드립니다. 좀 더 다독이고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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