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의 경우 로마에서처럼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행자들에 대한 관찰도 필수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만드는 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아들은 종종 자신만의 여행길을 찾아 나서곤 했다. 그럴 기미가 보이면 아들이 보이는 위치에 살짝 몸을 숨기고 들키지 않게 따라간다. 정신을 차리고 두리번거릴 때까지 기다린다. 낯선 땅에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아득함이 몰려오며 눈물샘의 수위가 올라간다. 눈물 한 방울이 맺힐 때쯤 '짜잔'하고 나타나는 충격요법은 제법 유용하다.
아이들과 여행하며 가장 신경이 많이 쓰였던 부분이었다. 크게 다치는 게 아니라면 상처는 치료하면 되지만, 만약 아이를 잃어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렇다고 사용하지 않던 스마트폰을 사서 모두가 로밍하는 건 부담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1킬로미터까지 통신이 되는 조그만 무전기를 네 개 샀다. 아침마다 무전기를 각자의 가방에 넣어 줄 때면 비장함마저 들었다. 주로 이런 식으로 사용됐지만.
“치이익 칙. 앞서가는 남자들 천천히 가기 바람. 우리는 파란 대문 상점에서 기념품을 볼 거다. 오버”
로마 다음 일정은 아말피(Amalfi) 해변을 훑는 것이었다. 로마로부터 가까운 순서로 나열하면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포지타노다. 숙소는 소렌토. 나폴리는 마피아, 폼페이는 돌아다니다 재가 될 것 같은 타는 듯한 날씨 때문에 과감히 통과했다. 소렌토까지 기차로 이동해서 숙소에 짐을 맡긴 뒤 포지타노행 버스를 탔다.
버스 기사는 퇴근 후에 페라리를 모는지, 꼬불꼬불한 도로를 직선처럼 달렸다. 연신 좌우로 흔들리는 버스는 속도가 줄지 않았다. 몇 번의 울렁거림을 얼굴로 표현하던 아들은 참지 못하고 아침 식사로 먹은 것을 쏟아내 버렸다. 미리 상황을 파악한 눈치 빠른 여행객이 비닐봉지를 건네줬기에 망정이지. 비닐봉지를 묶으며 쏘리를 연발했다. 주변 사람은 오히려 아들을 걱정해 주며 이탈리아에서는 이렇게 운전하는 게 기본이라는 농담을 전했다.
도착한 포지타노의 먹구름과 거센 파도는 이곳이 휴양도시임을 잊게 했지만, 지중해 바닷가는 오롯이 우리 차지였다. 작은 해변을 둘러싼 경사진 절벽에는 알록달록한 집들이 빽빽함 속 여유로움을 담고 있었다. 속이 비워져 가벼워진 아들은 어디서 힘이 났는지 연신 텀블링하며 에너지를 방출했다. 딸은 조약돌을 주우며 예쁜 애는 주머니 속으로 나머진 바닷속으로 던져 보냈다. 숙소를 포지타노로 정할 걸 그랬나 후회도 들었지만, 아침 일찍 피렌체로 이동하는 일정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다. 꼬불꼬불한 해안 길을 되돌아 소렌토로 왔다.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장점은 식사할 때 맥주나 와인 한잔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맥주나 와인이 한잔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무거워진 눈꺼풀을 반쯤 떠 시간을 확인했을 때는 다급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소렌토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기차역으로 가는 길은 느리게 지나갔다.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양손에 캐리어를 들고 기차에 올라탔고, 아내도 내 뒤를 따라 올라왔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창가에 자리를 잡았을 때,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창밖에 아들이 홀로 서 있는 게 보였다. 아직 눈물을 글썽이는 단계는 아니었지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님은 알고 있는 듯했다. 창문을 두드리며 이름을 불렀지만 알아채지 못했다. 황급히 가족 모두 내리는 결정을 했다. 캐리어를 다시 들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문 쪽으로 향했다. 제발 출발하지 말기를. 만약 출발하면 어떡하지? 기도와 고민이 짧은 순간에도 오고 갔다. 다행히 가족 모두 무사히 내렸고, 떠나려는 기차에 굳이 미련을 두지 않았다.
“아 아 아빵, 왜 나만 두고 간 거야? 아아앙”
우리를 본 아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오른손에 무전기를 꼭 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