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민상 Jun 30. 2024

헬브룬 궁을 아시나요?

“쇤브룬(Schönbrunn)이 아닌 것 확실하죠?”

    

계획에 없던 빈으로 갈 수도 있으니 몇 번을 되물었다. 헬브룬(Hellbrunn) 궁이란 곳이 있다는 걸, 이곳에 오기 전에는 몰랐다. 여행 내 함께한 도톰한 유럽 여행 책자에도 관련 정보는 없었다. 잘츠부르크역에 도착해 찾아간 안내센터에서 아이들과 가기 좋은 곳으로 추천해 준 장소다.  

   

지금이면 조용히 의자에 앉아 손가락 몇 번 타닥거리면 쉽게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수밖에. 센터를 나온 내 손엔 잘츠부르크 카드가 들려있었다. 헬브룬 궁을 비롯해 대표 관광지 입장권이 포함되어 있고, 버스까지 이용할 수 있는 카드다. 뮌헨에서 얻은 교훈에 따라 일정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원하는 것 천천히 다 하시도록.

 

시내 중심에 모여있는 관광지와 달리, 버스로 20분 걸리는 헬브룬 궁으로 먼저 갔다. 버스에서 내린 곳엔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노란색 담벼락이 늘어서 있었다. 마치 단체관광버스라도 되는 듯 대부분 승객이 내렸다. 동양 사람으로 보이는 건 우리 말고 없었다. 왠지 서양 사람에 둘러싸여 있으면 제대로 된 관광지를 골랐다는 편견이 또. 아무튼 그 무리는 단체관광이 맞다는 듯 고스란히 트릭 분수(trick fountains) 가이드 투어로 옮겨갔다.


트릭 분수는 몰래카메라처럼 작은 관을 곳곳에 숨겨놓은 것이다. 예상하겠지만 물줄기는 관람객이 방심하는 순간 뿜어진다. 이 정도만 얘기하면 옛 성을 개조해 만든 테마파크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곳은 400년 전에 만들어졌고, 그때부터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수압으로만 작동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광해군이 경희궁을 지었으니, 경희궁 곳곳에 광해군이 숨겨놓은 광기가 오늘날까지 관람객을 놀라게 하고 있다 상상하면 된다.


이 궁은 마르쿠스 시티쿠스(Markus Sittikus) 대주교에 의해 지어진 여름 별장이다. 대주교는 각국 특사를 이곳에 초대해 감출 수 없는 장난기를 발산했다. 그런 상황을 투어를 통해 체험할 수 있었다. 야외 테이블을 중심으로 주변에 관람객들을 모았다. 간단한 역사를 알려준 뒤, 열 명의 지원자를 받아 식탁 의자에 앉혔다. 모두 아이들이었고 딸과 아들도 나갔다. 식사 중인 것처럼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게 했다. 손을 올리며 방심하는 순간, 의자와 테이블 주변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대주교의 자리였을 곳으로 예상되는 곳만 젖지 않았다. 관람객들은 당황과 동시에 즐거워하는 특사를 보던 대주교처럼 유쾌하게 즐겼다.

     

테이블 체험에 참여한 아이들은 이미 젖어 버린 옷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그리고 7월의 햇살 속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즐겼다. 권력의 덧없음을 보여주듯 수압에 의해 오르내리는 왕관, 거대한 연극무대를 축소해 놓은 듯한 움직이는 인형들,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과 사슴뿔에서 뿜어내는 물줄기를 즐겼다. 궁전 옆 물의 정원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큰딸 리즐이 ‘Sixteen going on seventeen’을 부르며, 프러포즈하는 장면을 촬영한 유리로 된 누각이 있다. 아이들 눈에 들어온 건 유명한 유리 누각이 아닌 놀이터였다. 마가레타 수녀를 만난 영화 속 아이들처럼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고집스레 책에 쓰여있는 곳이 전부인 양 안내센터의 조언을 무시했다면, 저렇게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을 눈에 담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행하는 동안 마음을 열어두는 것이 필요할듯하다. 여행을 하면 마음이 열리기도 하지만. 그렇게 열어둔 마음속을 여행길에서 만난 누군가 또는 어딘가가, 보석 같은 시간으로 채워주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