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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담는 방법

by 윤민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다시 만난 뉴욕의 야경은 슬펐다. 물론 외롭게 서 있는 원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느껴지는 슬픔도 있다. 신혼 시절 아내와 칼바람을 맞으며 쌍둥이 트레이드센터가 또렷이 보이는 야경을 같은 장소에서 찍은 경험이 있기에 슬픔은 각별하다. 특히 안개가 살짝 덮인 월드트레이드센터 밑에서 아내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 있으면, 911 테러 순간의 TV 장면 속으로 순간 이동을 하게 된다. 그 슬픔과 별도로, 지극히 개인적으로 슬픈 이유가 있었다.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프라하 에피소드(카를교의 비극)를 읽은 분은 기억하겠지만, 무리한 새벽 촬영 도중에 카메라가 망가져 버렸다. 무거운 DSLR 카메라를 준비한 이유에는 뉴욕의 도시적인 풍경을 제대로 담아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북유럽과 영국을 지나 캐나다까지 똑딱이 카메라가 똑딱거릴 때마다 쌓였던 아쉬움이, 별처럼 빛나는 야경을 보면서 역치를 넘어갔다.


야경을 본 뒤로 스쳐 가는 뉴욕 풍경 속에서 의미를 찾기 어려워졌다. 차라리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보면, 사진에 대한 미련이 사라질지 몰라 이곳저곳 실내 전시실로 옮겨 다녔다. 그러다 밖으로 나오면 우뚝 솟은 건물들이 나를 비웃듯 내려다봤다. 나 한번 제대로 찍어볼 생각 없냐고.


“자연사 박물관은 애들하고 갈 수 있지? 혼자 가볼 곳이 있어서.”


뉴욕의 야경이 무의미하게 두 번이나 지난 아침, 계획이 다 있던 나는 아내에게 운을 띄웠다. 혼자 어디에 가려는 건지 물어보는 아내에게 쭈뼛거리며 말했다. “여기는 대도시니깐, 한국처럼 카메라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한번 알아보려고.” 아내는 흔쾌히 그러라 했다. 사실 뉴욕에서 짧은 기간에 카메라를 수리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카메라를 빌릴 생각이었다.


창고 같은 건물을 들어서면 투박한 카운터가 보였고, 그 뒤편에 서 있는 선반들 위로 무심히 촬영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망가진 카메라와 같은 모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100달러와 신용카드 정보를 전한 뒤에, 길었던 아쉬움을 달래줄 카메라가 내 손에 쥐어졌다. 50달러라고 하면 아내도 이해하겠지.


자연사 박물관으로 가면서, 비웃던 건물들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찰칵찰칵! 뉴요커에게는 하나도 특별하지 않을 평범한 거리가 내겐 특별하게 보였다. 똑딱이로 도저히 찍을 수 없는, ND 필터로 장노출을 찍었다. ND 필터는 짙은 선글라스라고 보면 된다. 촬영 시간을 길게 만들어 낮에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과 차의 흐름을 담을 수 있다. 그만큼 촬영 시간도 길어지긴 한다.


잠시 떨어져 있던 가족을 몰고 다니며 센트럴 파크에서, 타임스퀘어에서 증명사진 찍듯 카메라에 담았다. 어느덧 의미 있게 변해버린 야경이 반짝였다. 언젠가 인상적으로 본 사진이 브루클린브리지였던 것이 기억났고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오묘한 빛을 보여주기도 하는 매직아워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브루클린브리지 자체는 멋있었지만, 그곳에서 본 야경은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너무 남쪽 뷰였다. 지금까지 왜 이렇게 끌려다녀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는 뾰로통한 아이들의 얼굴을 지나, 내일이면 사라질 손에 든 카메라가 더욱 크게 보였다. 휴대폰으로 맨해튼의 미드타운을 담기에 최적인 곳을 겨우 찾았다.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환하게 켜져만 있던 빌딩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가고 있었다. 마치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들을 예고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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