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인근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 범인을 포함한 2명이 사망하고 최소 9명이 부상했습니다.”
올랜도로 떠나는 뉴욕의 마지막 날, 속보로 나오는 뉴스 속 사건 장소는 지금 머무는 호텔에서 서너 번 코너를 돌면 나오는 곳이었다.
“어제 새벽에도 지나온 곳이잖아. 큰일 날 뻔했네.”
“그러니깐 내가 새벽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다고 했잖아!”
“정말 큰일 날 뻔했네. 미안해.”
브루클린 브리지에서 고민했던 이유는, 다 같이 움직이면 아이들이 힘들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가서 좋아할 만한 게 있다면 모르겠지만, 관심도 감동도 없는 건물만 보일 텐데. 그래서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걱정도 됐지만, 괜찮은 척 혼자 미드타운을 찍기 위해 롱아일랜드에 가겠다고 했다. 정말 괜찮겠냐고 몇 번이나 묻던 아내는 지쳐있는 아이들을 보더니 호텔에 먼저 가기로 결정했다.
“수시로 연락해. 문자라도 보내. 꼭!”
그녀의 당부에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Vernon Blvd-Jackson Av 역으로 향했다.
무질서 속에 내가 모르는 질서라도 있는 걸까. 이 상황을 나만 모르고 있던 건가? 내리려 하는 환승역을 그냥 통과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역 하나를 걸어, 다시 지하철을 타고, 힘겹게 도착한 역에 뉴요커들은 어느새 사라졌고, 혼자만 남았다. 인적 없는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맨해튼의 불빛이 천천히 나타났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강변을 낀 공원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태양 볕이 내리쬐는 사막을 힘겹게 걷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하면 이런 기분일까.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맨해튼의 미드타운을 이리저리 살폈다. 위치는 좋았다. 하지만 전 세계와 연결된 유엔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뉴요커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기대했던 건물의 반짝임은 없었다. 아쉬움 가득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이리저리 살피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눈을 떼고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와!” 아내와 아이들이었다. 깜짝 놀라면서도 반가웠다.
“여기 위험한데, 애들 데리고 왜 왔어?”
“그렇게 위험한 걸 알면서 왜 혼자 간다고 했어?”
아내는 혼자 가는 내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위험할 것 같기도 해서 뒤따라왔다고 했다.
“여기 오기도 불편하고 역에서 걸어오는 데 정말 무섭더라.”
“애고. 공원 주변 구경하고 있어. 얼른 찍고 가자.”
미드타운 야경도 계획했던 것만큼 만족스럽게 담지 못했기에 타임스퀘어에 들렀다. 그리고 몇 시간 후면 총격 사건이 일어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무심하게 지나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새벽 1시였다.
침대에 걸쳐 앉아 멍하니 뉴스를 보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빌렸기에 늦게까지 돌아다니게 된 것이고, 새벽에 들어왔기에 늦잠을 잔 것이고, 늦잠을 잤기에 평소보다 느지막이 호텔을 나섰고, 그랬기에 코앞에서 벌어진 사건 현장을, 사건이 일어난 아침 시간대에 지나치지 않은 거란 생각. 결국 내가 빌린 카메라가 우리를 살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원했던 사진을 찍지 못하는 순간에도 빌린 카메라는 더 큰 일을 해내고 있었다는 생각.
다음 한주는 쉬겠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팸투어에 참여하거든요. 기회가 되면 국내 여행도 공유할 공간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2주 후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