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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요세미티

by 윤민상

혹시 지난 에피소드 끝 무렵에 나온 부스럭거리는 소리의 주인공이 곰이라 생각한 분은 일단 브런치를 닫고 넷플릭스를 열어 비교적 신작인 <언테임드>를 보시길 바란다. 요세미티를 배경으로 만든 미드다. 거기에는 곰도 나오고, 사슴도 나오고, 요세미티에 숨어 사는 사람도 나온다. 그리고 넷플릭스에 올려진 후 반짝 Top 10에 들었다가 이내 빠져 버린 이유를 찾게 되면, 바로 이 글로 돌아오시길.

어둑한 그림자의 정체는 다행히도 곰만 한 덩치의 앞 숙소 사람이었다. 잠 못 이루는 밤에 출출해진 뱃속에 넣을 야식거리를 찾았겠지. 그 덕에 하룻밤밖에 지내지 못하는 이곳의 알싸한 새벽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곰 때문에 숙소를 안전한 곳으로 바꿔줬는데, 설마 이곳에 곰이 나타나겠어.’란 생각으로 주변을 잠시 둘러보며 평온함을 확인한 후에야, 이 깊은 숲 속보다 더 깊은 꿈 속으로 빠져들었다.


찬란한 햇살이 어둠을 몰아내자, 마음속 걱정도 흐릿해졌다. 제아무리 덩치 큰 곰이라 해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함부로 나오지는 않을 것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반나절이란 짧은 시간은 사람 많은 유명한 장소만 찾아다니기에도 벅찬 시간이었으니깐.


공원 안에서 차로 이동하며, 하프돔을 품었음에도 탁 트인 요세미티를 보여주는 Glacier 포인트와 2킬로미터 높이의 암벽이자, <엔터임드> 속 충격적인 첫 장면의 배경인 El Capitan,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요세미티 폭포 그리고 이런 풍경을 또렷한 반영으로 비춰줄 호수를 찾아다니려고 했으나, 어둠을 몰아낸 찬란한 태양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악의 가뭄으로 기록되는 역사적 현장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물기 쫙 빠진 건조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사막처럼 말라버린 호수 바닥에서 주운 나뭇가지로 바위 자르는 시늉을 하며 하프돔을 재현했다. 안전을 걱정한 아내의 반대로 타지 못하게 된 자전거를 상상하며, 타는 행동으로 시위하기도 했다. 말라버린 풀밭이 석양과 어우러지며 노란 들판을 만들자, 그곳에서 자란 사슴처럼 풀밭 사이를 이리저리 뛰놀았다. 폭포도 아름다운 반영을 비추는 호수도 보지 못했지만, 요세미티의 시간은 건조하지 않았다.


짧기는 했지만 얕지 않았던 요세미티를 뒤로하고 미 대륙의 마지막 여행지인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어둑한 도로를 세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트레져아일랜드는 멀리 반짝이는 샌프란시스코 야경을 보여줬다. 반짝이는 불빛 하나하나에 지난 여행의 추억이 담겨서 보석처럼 빛나는 건 아닐까 하는 진부한 생각이 잠시 밤바람을 타고 머릿속을 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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