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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에 대한 팁이 필요해, 앤틸로프 협곡

by 윤민상

거액의 청구서로 변한 무리와 무지 덕에, 한 시간 먼저 앤틸로프 협곡으로 출발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보통은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여유로움을 즐기는 편인데, 그날만큼 시간이 남아도는 게 기분 나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남은 시간이 기분 나빠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투덜투덜 나눈 대화에서, 열심히 달려온, 주 (state) 별로 시차가 있었다는 무지를 깨우칠 무렵 가이드는 우리를 승합차로 안내했다.


차 앞쪽은 미국인 한 가족이 차지했고, 우리는 뒤편으로 들어가 앉았다. 바퀴가 돌자, 분무기로 모래를 흩뿌린 듯한 창밖을 통해 사막 한가운데 있다는 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도착한 협곡 입구에는 디즈니월드의 어트랙션처럼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 정도 기다리는 건 예사라는 표정으로 가이드는 우리를 이끌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물결무늬 적벽 사이에 한 줄기 빛이 내리는 사진은 여행 전부터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런데 힘들게 그 앞에 선 내 손에는 프라하에서 망가진 DSLR 카메라 대신 똑딱이 카메라가 있었고, 머릿속에는 인상적인 사진 대신 삼십만 원이 넘는 청구서가 있었다.


직접 본 경관은 사진만큼 아름다웠지만, 뒤따르는 사람들에 밀려 제대로 감상하거나 사진으로 담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특정 포인트에서 가이드는 카메라를 빼앗듯 가져가 가족사진을 찍어 줬다. 돌려받은 카메라에는 역광으로 찍힌 새까만 얼굴이 어두워진 내 마음을 그대로 담아낸 듯 새겨져 있었다. 그렇게 협곡 안의 시간은 30분도 지나지 않아 끝나버렸다. 이 짧은 경험을 위해 가이드 비용 삼십만 원과 벌금 삼십만 원을 내다니. 제대로 된 사진이라도 있었다면 아깝단 생각은 안 들었을 텐데.


출발한 곳으로 돌아왔을 때, 동행했던 미국인 가족이 둥글게 모여있는 모습이 럭비 선수가 작전 회의하듯 무언가를 상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지? 설마 가이드 비용을 냈는데, 팁을 또 줘야 하는 건가? 디즈니월드에 들어가서 사파리 투어를 하고, 버스에서 내리면서 팁을 주지는 않잖아.’


그저 모여서 얘기하는 건지, 우려처럼 팁을 얼마나 줄지 정하는 건지, 파악하지 못한 채로 가이드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가이드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까지도 그날 내가 팁을 줬어야 했던 건지, 안 줘도 괜찮은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미국인 가족이 팁을 줬다면, 그만큼 감동해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가이드와 우리가 나눈 건 한두 마디 정도. 그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대화는 끊기지 않았으니깐. 아니면 그들이 나온 사진은 순광으로 환하게 찍혔으려나. 아무튼 미국의 팁 문화는 시차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


그런데 지금껏 그날의 멋들어진 풍경보다 팁을 주지 않았던 것이 더 생각나는 걸 보면, 적은 금액이라도 팁을 주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서 확장된 가격에 포함된 벌금은 내 잘못이지 가이드 잘못은 아니었다. 그와 대화를 통해 교감하지 못한 것도 내 영어 능력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고.


결국 풍족하고 여유로웠던 여정에 작은 흠집 하나가 새겨졌다. 그 일로 팁은 상대를 위해서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속 여유로움을 위해 주는 것이란 팁을 얻었다. 아마도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언젠가 나를 앤틸로프 협곡 앞으로 내몰 것 같다. 그날은 조금 넉넉한 팁으로 가이드의 흔들리던 눈빛을 환한 웃음으로 바꿔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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