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낳았지만, 아이들의 얼굴 한 번을 보지 못했다. 울음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아이들의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안타깝고 슬픈 마음은 어떻게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겨우 2층을 더 올라가 니큐입구 앞에서 기다린다.잠시만 서 있어도 머리가 어지럽고 온몸에서 땀이 흐른다. 속이 좋지 않아 구역질이 나고, 배는 쉴 새 없이 화끈거린다. 오라는 시간에 정확히 왔건만, 의자 하나 없는 그곳에서꼬부랑 할머니 같은 모양새로 꽤 오랜 시간을 대기한다. 비닐옷과 모자, 장갑까지 끼고 있자니옷 안으로 땀이 차고, 숨까지 막혀온다. 그래도 이를 악 물고 버텨본다.
아기들은 퇴원 전 오늘,딱 한 번만 볼 수 있다. 니큐에서 언제 나올지 알 수는 없다. 나는 한 번이라도 보지, 단 한 번을 보지 못하는 남편은 아주 많이 섭섭해한다.남편의 마음이 이해는 가지만,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다.아이들 사진을 많이 찍어 오겠다는 말만해준다.
드디어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한 손으로는 링거 스탠드를, 한 손으로는 불타는배를 부여잡고 겨우 니큐실 문 안으로 들어간다. 아기들을 보기도 전, 들어가는 복도에서부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안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인큐베이터 박스들이 구역별로 질서 있게 놓여있다. 우리 아이들은 어느 인큐에 들어있을까. 너무 힘들게 걷고 있는 나에게 모든 간호사들의 시선이 쏠린다.세쌍둥이를 낳고 여기까지 잘 걸어왔다고 응원을 해 준다.
"여기에 첫째가 있어요."
한 인큐베이터를 가리키며 담당간호사가 말한다. 박스 앞으로 가니, 자고 있는 첫째가 보인다. 눈가에 위태롭게 맺혀있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이 터진다. 나름 2kg을 넘겨 제일 크게 태어난 아이다.그런데도 너무 작았다.이렇게 작을 줄은 몰랐다.정말 내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느낌이다. 사진으론 이렇게 작게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도 그때의 사진을 보면 실물로 봤을 때의 그 작은 느낌은 없다. 직접 봐야지만 보이는 그 작음이란. 손으로 잡으면 아이가 부서질 것만 같다. 눈물이 쉴 새 없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더 오래 품어주지 못한 미안함에 가슴이 미어져 온다. 슬픔에 빠져 오열하는 엄마와는 다르게 첫째는 가끔 입을 쩝쩝이며 그저 평온하게 자고 있다. 그런 첫째를 계속 보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 뒤의 인큐베이터엔 둘째가 있다. 첫째를 보며 마음의 안정을 조금 찾은 상태였기에 둘째를 볼 때는 울지않았다.둘째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한쪽 팔을 위로 올리고 편안한 자세로 잠을 잔다. 지금도 그때처럼 자주 팔을 위로 올리고 자는 둘째이다. 어쩌면 그 자세는 내 배 안에서부터자주 취하던 자세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움직임이 없어 진짜 자는 게 맞나 의심스러워 몇 번이나 배가 움직이는지 확인해 본다. 다행히 열심히 숨을 쉬느라 배는 쉼 없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다음은 가장 작은 나의 막내. 그래서 더욱 미안한 나의 막내. 딱 보기에도 앞의 둘보다 작고 말랐다. 거기다왜 그런지 막내는 온몸이 새빨개지도록 울고 있다. 멈췄던 나의 눈물이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신생아가 우는 것은 너무나당연하고 소소한 일이건만, 그 당시의 내 마음은 당연하지가 않다.그것도 젤 작아 마음이 아픈 막내가 울고 있다. 아이가 아픈 건 아닌지, 어디 이상이있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스럽다. 간호사의 다독임으로 다행히 내가 나가기 전, 막내는 울음을 그치고 다시 잠에 든다.
그렇게 아팠는데. 아이들을 보는 동안은 그 아픔들을 잊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잊고 있던 아픔이 다시 세차게 몰려왔다.
한번도 만져보지 못한 내 아가들
임신 마지막에 밥을 제대로 못 먹은 것, 아이들을 더 품어주지 못한 것 등, 내가 더 노력했더라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크게 나왔을까?
많이 속상했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우리 아이들은 단태아가 아니다. 쌍둥이도 아니다. 세쌍둥이가 이 정도면 좋은 주수에, 좋은 몸무게로 건강하게 잘 태어난 것이다. 앞으로 더 건강하게 잘 크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