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진 Jan 26. 2024

삼둥이 탄생

34주 6일 오전 4시 태동검사 시작.

아이들의 심장잡기가 어려워 태동검사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오전 8시 30분경. 침대에 누운 채로 의료진들에 이끌려 수술실로 이동한다. 남편은 옆에서 내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간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다. 막상 수술날이 되면 무서울 줄 알았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그 별 생각이 없다. 얼마나 아플지 상상이 안 돼서 그럴 수도 있겠다. 

끌려가는 건 나지만, 내가 아닌 남이 애를 낳으러 가는 것 같다. 신기간 마저 남이 겪은 이야기를 그저 신기하게 들은 기분이다. 신기루 같이 뭔가 비현실적이다.


내가 세쌍둥이를 임신했었다고?

그리고 지금 그 아이들을 낳는다고?


천장의 하얀 조명들 내 머리 위로 휙휙 빠르게 지나다.


누운 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을 더 올라간다.

"남편분은 여기서 대기하세요."

잡고 있던 편의 손이 빠진다. 남편나에게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내 침대는 수술실을 향해 빠르게 이동한다.

자동문차례차례 열린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이제는 정이 든 나의 교수님이

"괜찮죠?"

활기차게 웃으며 물어본다.

"네 괜찮아요." 

나도 역시 활기차 웃으며 대답한다.

수술실로 들어간다. 좁은 공간에 우굴우굴 사람도 많다. 산부인과 의사간호사, 소아과 의사 최소 셋간호사들, 마취과 의사, 인턴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 다  방에 몰려있다.


여러 명이 나를 들어 수술대로 옮긴다. 초록색 천으로 내 배 아래를 린다.  눈엔 이제 천장과 초록색 천만 보인다.

"하의 벗깁니다."

나의 하의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 벗겨진다.

혈압을 재기 위해 오른팔에 혈압계가 장착된다. 얼굴에는 산소마스크를 끼운다. 천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천을 바라보며 주변 상황을 귀로 듣는다.

교수님이 누군가를 혼다. 무슨 준비가 제대로 안된 모양이다. 심각한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역시나 그동안 봐왔던 교수님 같아 히려 안심이 된다.

"차가울 거예요."

배에 소독약을 바른다. 아마도 약은 빨간색이겠지?

"이제 전신마취 약 들어가요." 

눈을 희번하게 뜨고 내 앞의 천을 노려본다. 마취약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심보다. 번 숨을 들이 쉰 후 기억이 없다. 역시 마취약은 강하다.


마취의사가 날 흔들어 운다.

"수술 다 끝났어요. 일어나세요." 

좀 친절하게 깨우면 안 되나. 너무 세게 흔든다. 체감상 눈 감자 마자 깬 듯 한 기분이다. 할 일을 마땅히 한 마취의사에게 괜히 신경질이 난다.

비몽사몽 눈을 뜬다. 내 침대가 옆쪽으로 옮겨진다. 갑자기 너무 아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아... 너무 아파요!!!"

리를 지르고 정신을 잃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눈이 번쩍 뜨인다.

"우리 아기들 울음소리예요???"

아니란다. 우리 아기들은 진즉에 나갔단다. 옆에서 다른 수술이 바로 진행 중이었나 보다.

다시 비몽사몽 중에 나 혼자 중얼중얼 계속해서 너무 아파요, 만 외친다. 하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교수님이 오셔서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수술이 너무 잘됐다고 하신다.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미친듯한 오한과 통증이 시작되었다. 계속 추워요, 아파요 외친다. 이가 딱딱딱 소리 나게 부딪히고, 초점 잃은 눈과 함께 얼굴이 사방으로 흔들린다. 침대에 누운 채로 입원실로 이동다. 수술실을 나오자마자 남편을 찾았으나 남편은 아기 관련 서류를 처리하러 다른 층으로 가 있단다. 괘씸하다(남편은 간호사가 불러서 갔다고 억울해한다). 남편이 와서 손이라도 좀 잡아주면 좋겠는데 없다. 입원실에 와서도 계속 벌벌 떨며 아프다며 울부짖다. 이미 무통주사와 진통제를 다 맞고 있단다. 지방층, 근막, 복막을 지나 자궁까지 열고 세 아이들을 꺼내고 온 길이다. 그 고통이 너무 커 무통주사와 진통제조차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추워요 추워요 추워요, 를 계속해서 외치자 간호사가 이불 몇 개를 더 갖다 준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오한이다. 한 겨울, 시리도록 차가운 바다 한가운데 맨몸으로 풍덩, 빠지면 이 정도로 추으려나.

시간이 지나고 조금 진정이 되자 그제야 남편이 돌아온다. 내가 제일 괴롭고 아픈 모습을 보지 못한 게 굉장히 괘씸하고 얄밉다. 그래도 오자마자 고생했어, 힘들었지, 정도의 말  줄 았다.


남편은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쳐다도 보지 않았다. 아이들이 너무 작게 태어났단다. 게다가 첫째의 호흡이 약간 불안정해 마스크를 꼈단다.


셋다 당연히 2kg을 넘을 줄 알았다. 초음파 상으로 그랬으니. 하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작 태어났다.

첫째 2.05kg

둘째 1.96kg

셋째 1.70kg

정말 충격적이었. 첫째, 둘째는 그렇다 치고, 혼자 너무 작은 막내의 무게에 망연자실하였다. 음파의 차가 크다고는 해도 셋의 무게가 이 정도로 차이 난 적은 없었다. 임신 막바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모든 것이 내 잘못 같았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남편은 자기 부인이 죽다가 살아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을 임신했을 적, 나에게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아기들보다 내가 우선이라고 했던 사람이다. 그 새 마음이 바뀌었나 보다. 때의 서운함은 아직도 가슴속에 크게 남아있다.


다행히 아기들은 무게 빼고는 건강하게 태어났. 그래도 작기에, 셋다 니큐에 들어갔다.


전신마취라 아이들 울음소리 한 번을 못 들었다. 얼굴도 못 봤다. 남편도 인큐베터에 들어 있는 아이들을 스치듯 본 게 다고 했다.

저녁, 니큐에서 아이들 사진을 한 장씩 보내주었다. 아직 눈도 못 뜬 나의 아이들이 거기 있었다. 만져보지도, 듣지도 못한 내 아기들. 마음이 저려왔다.


수술 이후 주삿바늘이 무서워졌다

무통 주사와 진통제, 소변줄의 도움으로 그날은 견딜만했다. 출혈생각보다 적었다고 했다. 수혈받기 위해 피도 다 세팅해 놓은 상태였으나 필요가 없어 반납했다며, 철분주사만 맞았다. 많은 종류의 약을 동시에 몸에 넣기 위해 왼팔, 오른팔도 모자라 발등까지 주삿바늘에 양보했다. 교수님은 수술 후에도 여전히 씩씩한 나를 보며 조금은 놀라신 듯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어떤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이전 15화 이 배가 벌써 그립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