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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진 Jan 19. 2024

사실은, 자연분만이 하고 싶었어

바닥에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임신 이후 허리를 굽혀 바닥의 무언가를 줍는 일은 하지 않았고, 배가 나와 허리를 굽힐 수도 없었다. 그랬는데, 왜 그랬을까. 순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배를 접어 핸드폰을 주웠다. 스프링 튕기듯 다시 허리를 으켜 세운 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통증과 뭉침 시작되었다.


갑자기 설사 계속하고, 그에 따른 탈수증상생겼다. 이전에는 없던 생리통 같은 싸한 배앓이 시작했다. 수축도 너무 자주 일어났다. 진통 어플로 체크를 본다. 이런, 병원에 갈 준비를 하란다. 어떡해야 하나.

33주 6일 저녁, 민을 하다 분만실에 전화를 했다. 당장 애 낳을 준비를 해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네?! 아니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저는 그냥 물어보려고 전화한 거예요"

정말이었다. 그저 입원을 며칠 미리 하면 안 되나 싶었다. 집은 아무래도 불안해 병원에서 버티고 싶었다. 그랬는데 당장 아이를 낳잖다.

"아니요. 아니에요. 지금 안 낳을 거예요.

억지로 괜찮다며 전화를 끊는다. 입원을 바랐건만, 입원은 없고 출산만 있다. 그렇게까지 아프더니 배가 장난 아니게 더 무거워졌다.


34주 2일

경부길이 1.4cm

첫째 2262g

둘째 2142g

셋째 2116g

와! 꿈에 그리던 2kg를 셋 다 넘었다. 세쌍둥이를 임신한 이후로 줄곧 기다리던 꿈의 무게다. 너무 기뻐 눈물이 다 났다. 이 작은 배에서 잘 커 이들 너무 고마웠다.


혈압이 143으로 높게 나왔다. 임신중독증일 수도 있다며, 급하게 소변검사를 했다. 다행히 단백뇨는 없다. 붓기도 없고, 살도 찌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전 분만실 전화가 도화선이 되었나 보다. 단지 혈압이 약간 높다는 이유로 오늘 당장 아기를 낳자고 다.

무조건 싫었다. 당장 낳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도 아닌데 35주의 목표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몇 번의 언쟁이 오간 후, 교수님은 34주 6일에 아이를 낳자고 했다.

"하루 더 버티고 35주에 낳으면 안 되나요?"

"그날은 외래가 다 잡혀 있는 날이라 응급 아니고는 수술을 안 해요."

"그럼 며칠만 더 버텨 볼게요."

교수님의 언성이 높아진다.

"엄마 몸 생각은 안 해요? 나중에 회복 안되면 어쩌려고 더 버텨요. 지금도 충분히 오랫동안 버텼는데. 애 낳고 자궁 수축 제대로 안되면 어쩌려고 이래요. 산모가 회복을 해야 애를 보든 키우든 할거 아니에요."


맞는 말이. 애를 건강하게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그 애들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35주를 하루 앞두고 아이들을 낳아야 한다니. 무 억울하고 아까웠다.

35주를 채워 아기를 낳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란성쌍둥이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에 다니던 서울의 A 병원로 가면 된다.



20주 5일. 쌍태아수혈증후군의 탑 W교수님 부드럽고 자신감 넘치는 카리스마로 날 맞아주신다. 세쌍둥이 경험이 지방에 비해 많다 보니 여유 있는 모습이다. 초음파를 보 바로 35주 목표를 잡다. 자궁이 튼튼해 세쌍둥이를 품기에 아주 적합하단다. 세쌍둥이를 임신한 후 줄곧 부정적인 말만 듣다 처음으로 긍정의 말을 들었다. 기뻤다. 먼 곳에 살아 자주 보긴 힘드니 지역병원을 다니면서, 2달 후에 내원하라고 다. 다행이었다. 자주 안 봐도 된다는 건 일란이들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

무엇보다 차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예약시간과 상관없이 대기가 너무 길었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꼬박 하루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32주에 마지막 진료를 본 뒤, 35주 0일 수술날짜를 정 입원 예약을 했다. 기서 낳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일란이들에게 이상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다 병원이다. 더 유명한 병원, 더 유명한 의사. 매력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그게 절대적인 선택기준은 되지 못했다. 집에서 멀고 니큐자리가 항상 부족한 이곳에서 아이들을 굳이 낳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끝까지 이 병원 놓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자연분만에 대한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쌍둥이까지는 자연분만을 할 수 있는 곳이 꽤 많다. 하지만 세쌍둥이는 그렇지 않다. 세쌍둥이 자연분만이 가능한 의사몇 없으며, 그 마저도 다 서울에 있다. S대에 다둥이 자연분만의 신이 계시기에 그곳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거기까지 세 군대의 병원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곳의 교수님도 그분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세쌍둥이를 자연분만으로 받아 주신다.


“교수님, 저 자연분만으로 아이들 낳고 싶어요.”

“왜 그래, 자기야. 그러지 마. 왜 그런 힘든 길을 가려고 해.”

“얼마 전에. H도 자연분만으로 셋 다 건강하게 받아주셨잖아요.”

“그래, 그랬지. 그래도 그러지 마.”


난색을 표하셨지만, 나는 꼭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다.  세쌍둥이 자연분만은 위험한 돌발상황 변수많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의사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의사들도 굳이 세쌍둥이 자연분만을 반기지는 않는다.(S대 그분 빼고)

거기다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첫째는 자연분만으로 출산하고, 둘나 셋째는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첫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나 보다. 임신초기부터 내 아랫배에 횡렬로 누워 자리를 잡고 있던 첫째였다. 언제 머리를 아래로 려 주려나 싶어 아무리 기다려도 요지부동. 끝까지 자연분만만은 안된다며, 그렇게 대자로 뻗어 누운 첫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를 유지했다.


자연분만도 물 건너간 판에, 이곳에서 아이들을 낳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35주를 채우고 싶은 욕심에 나는 다시 흔들렸다.

34주 6일과 35주 0일. 하루. 나는 무엇을 위해 그 하루에 이렇게 집착하는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건 그저, 나의 그릇되고 지나친 욕심일 뿐이. 아이들을 임신한 그 순간부터 35주 만을 바라보며 달려오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친 채, 오로지 그 숫자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그 하루를 위해 나와 아이들 모두에게 무리가 되는 여정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35주의 욕심을 리고 주 다니던 정든 병원에서 34주 6일에 아이들을 출산하기로 결정했다.

곧 만나자!

첫째의 굳은 의지로 비록 자연분만은 못했지만, 첫째에겐 언제나 고마운 마음이 크다. 엄마의 좁은 아랫배에 옆으로 누워, 자궁문을 자극하지 않은 채, 위에 있는 동생 둘의 무게를 오롯이 다 감당하며 버텨준 첫이다. 첫째 딸이 있었기에 나는, 우리 넷은, 무사히 그 모든 시간들을 안전하게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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