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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진 Jan 16. 2024

꿈의 35주

30주 2일
경부길이 3.2cm
첫째 1465g
둘째 1501g
셋째 1385g
  

32주 2일
경부길이 2.8cm
첫째 1713g
둘째 1793g
셋째 1816g

혈압이 130으로 약간 높게 나왔다. 임신중독증에 걸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이 패턴이면 34주까지는 버티겠다고 했다.


"저 35주에 애들 낳을 건데요?"

"그건 나진님이 원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나도 안다. 내가 35주에 아이들을 낳을 거라 마음먹었다고 해서 무조건 35주까지 버틸 수 있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을 감싸고 있는 양수가 당장 오늘 밤에라도 터질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은 잘 닫혀있는 자궁문이 갑자기 열려 위급해질 수도 있다. 내 배에는 3명의 아기가 들어있다. 어떤 응급상황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쌍둥이 임산부들의 목표가 35주이기는 하나, 사실 35주까지 버티는 사람보다 못 버티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들 대부분의 목표도 35주였으나, 갑자기 양수가 터지거나 자궁경부무력증 등의 이유로 응급으로 아이를 낳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삼둥이 카톡방 동기들이 예정일도 아닌 어느 날, 응급으로 아이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한다. 밤에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거나, 자궁문이 다 열려 더는 버틸 수 없었다는 식이다.

내 배가 점점 불러올수록, 다른 동기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갑자기 아이들을 예정보다 일찍 낳을수록, 나의 마음도 같이 조마조마해졌다.


의학기술이 많이 발달해 조금 더 일찍 세상에 나온다고 아이들에게 무조건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니다. 니큐(신생아중환자실)에서 잘 케어받고 엄마품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대부분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란다. 하지만 인큐베이터는 엄마의 자궁이 아니다. 하루라도 엄마의 배에서 살다 나오는 것이 아이에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엄마의 뱃속에 있는 것이 더 위험한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예외이다.

엄마 자궁에서의 하루는 인큐베이터에서의 일주일과 같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인큐베이터라도 진짜 자궁을 이길 순 없다. 거기다 세상에 일찍 나올수록 갖가지 문제점들을 가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의 몸무게와 건강 상태에 따라 다 다르지만, 조산의 위험도는 보통 25주, 28주, 32주, 34주 간격으로 다르게 본다. 25주, 700g 이하로 태어난 아이들은 50대 50의 확률로 당장 생과 사를 다투어야 한다. 28주, 1kg 이하로 태어난 아이들은 그 작은 몸으로 온갖 수술을 감내해야 한다. 32주만 넘어가도 안정권이다. 34주가 넘어가면 아이들은 무게가 적을 뿐 다른 이상은 없다고 본다. 병원마다 약간씩 기준이 다르지만 보통 35주, 2kg을 넘겨 태어난 아기들은 자가호흡이 가능하다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38주 이상을 엄마 뱃속에서 살다 나온 아이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엄마 뱃속, 따뜻한 양수 안에서 웅크리고 있어야 할 시기에 세상에 나와, 양수가 아닌 차가운 공기를 맞닥뜨리며 아기는 그렇게 세상과 싸워야 한다.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품어도 세쌍둥이는 어쩔 수 없는 조산이다. 하루라도 더 아이들을 내 배안에서 품어주고 싶었다.


“얼마 전에 세쌍둥이 동기가 36주에 제일 큰애를 2.7kg대로 낳았어요. 저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고 싶어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엄마 자궁 찢어질 일 있어요?!?!"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교수님도 36주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닌가 보다. 저번주부터 왜인지 36주까지 체크한 표를 만들어 매번 나에게 주셨다.

정말 버틸 수 있다면 36주까지도 버티고 싶었다.

꿈의 35주를 넘어 36주로?!


버티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30주가 지난 후 나는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힘든 것은 힘든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아이들이 셋다 1킬로를 돌파한 후 이미 아이들 무게만으로도 단태아 만삭무게를 훌쩍 뛰어넘은 상태였다. 거기다 양수도 3인분이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배는 이게 사람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그러면서 내 몸의 모든 장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위가 짓눌려 소화가 되지 않았고, 갈비뼈가 점점 벌어져 너무 아팠다. 아이들은 안 그래도 아픈 뼈를 자꾸만 발로 차 댔다. 이러다가 갈비뼈가 부러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된다. 초록창을 켜 검색을 해본다. 드물긴 하지만 만삭임산부의 갈비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지는 경우도 가끔은 있단다. 임산부이기에 어떤 약도 수가 없어 뼈가 부려져도 그저 참아야 한단다. 무서웠다.

변비와 치질은 덤이요, 폐는 찌그러져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건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숨이 막혔다. 집안에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배는 쉴 새 없이 딱딱하게 뭉쳤다. 손에 항상 핸드폰을 쥐고 진통어플로 주기를 체크한다. 점점 주기가 짧아다. 긴장도와 두려움도 함께 높아진다.


30주 이전, 힘듦의 난이도 계단식으로 상승했다. 삼한사온처럼 삼일 아프고 사일 괜찮던 것이 어느 순간 삼일 아프고 이틀 괜찮다가, 이젠 괜찮은 날 없이 그냥 매일 아프다. 계단은 없어지고 가파른 오르막길만 남았다. 이 보다 더 힘들 순 없다고, 이보다 더 힘든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외쳐보지만, 그런 날 비웃기라도 하듯 매일매일 힘듦이 갱신되고 있었다. 과연 이렇게 힘든 게 정상인 건지 의심스러웠다. 이미 세쌍둥이를 낳은 친구에게 연락해 너도 이 즈음에 이렇게 힘들었었냐고 물어본다. 맞단다. 자기도 죽는 줄 알았단다. 나만 그런 건 아니라 다행이다.

세쌍둥이 임신 동지들과 하루종일 카톡으로 수다를 떤다. 다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하루종일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시기, 힘들 나날을 버티게 해 준 건 팔 할이 삼둥이 카톡방이었다.

숨 쉬기가 너무 힘들어 사 본 산소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동시에 배 안에서 광란의 댄스파티를 즐기던 아이들은 요즘은 축구에 빠진 건지 쉴 새 없이 내 배를 빵빵 차 댄다. 광란의 댄스파티를 더 이상 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차댄 것일까. 30주가 지나자 자리가 비정상적으로 비좁다는 것을 아이들도 느끼는 것 같았다. 원래는 한 명이 들어있어야 할 곳에 셋이 들어 가있다. 한 명한테도 비좁을 나의 작은 배안에. 자리를 위한 싸움이 시작된다. 서로를 발로 밀어내고 차다. 배 안은 그야말로 난리법석, 이런 북새통이 따로 없다.


우리 아들, 많이 좁지? 고생시켜서 엄마가 미안해. 그래도 우리 같이 조금만 힘을 내서 버텨보자. 잘할 수 있지? 엄마도 힘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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