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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진 Jan 30. 2024

지옥을 맛보다

수술 다음 날. 새벽에 간호사가 오더니 소변줄을 뺀다고 했다. 이제 직접 걸어 화장실을 가. 그러면서 이뇨제을 놔준다. 화장실은 나의 병실과는 반대쪽, 저 멀리멀리 밖에 있다.

이뇨제의 작용인지, 주사를 맞자마자 바로 소변이 급해진다.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술 후 처음으로 몸을 일으키기 위해 다리를 침대 밑으로 내려 본다. 그 움직임 만으로도 수술한 부위를 누가 칼로 도려내는 것 같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남편의  팔을 잡고 일어선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머리가 뱅글뱅글 돈다. 겨우 일어났지만 허리는 감히 펼 수 없다. 몸 90로 굽힌 채, 한 발을 떼 본다. 바닥이 도처럼 울렁이며 솟구쳤다내려가기를 반복한다. 내 눈알과 몸 안의 모든 장기들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목에 신 맛이 올라오며 구역질이 난다. 침을 삼키며 겨우 참아본다. 누가 내 배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여버린 것 같다. 참한 기분이 드는 것과 동시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세상에, 이렇게 괴롭다니. 

발을 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온다. 눈에서는 눈물이, 코에서는 콧물이, 입에서는 침이, 온몸에서는 땀이. 다양한 액체를 온몸으로 뿜어내며 처절하게 한발 한발 내디뎌 겨우 화장실에 도착한다. 남편 수발 아래 소변을 보고 일어나는데 몸이 휘청인다. 더 이상은 무리다. 남편이 급하게 휠체어를 끌고 와, 앉아서 병실로 돌아다.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물도 덜 마셨건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요의가 느껴. 그때마다 남편은 휠체어를 타고 가자고 했지만, 걸어야 회복이 빠르다는데 어떻게 그러나. 매번 이를 악 물고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회하는 마음으로 화장실을 다녀온다. 그래도 화장실 갈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게 느껴져 괴로운 가운데서도 희망이 보. 내일은 더 나아질 테니.


수술 3일 차 새벽, 통주사가 끝났다. 아침 6시. 간호사가 지금 바로 소변보고 위층 초음파실로 가. 어제보다 훨씬 쉬울 줄 알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몸을 일으켜 세본다. 걸, 나의 상태는 어제 오후보다 훨씬 더 나빠져 있. 아진다고 느낀 건 무통주사빨이었나 보다. 겨우 링거 스탠드를 잡고 허리 기역자로 숙인 채 조용히 흐느끼며 초음파실을 향해 기어다. 그때 내 옆을 누군가 빠르게 지나간다. 나와 같은 날 입원하고, 나와 같이 어제 수술을 받은 단태아 산모이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당당하고 빠른 걸음으로 잘 걷고 있다. 충격이었다.


다 이 정도로 아픈 거 아니었어? 나만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운 거였어?


"배가 이만했는데, 다 없어졌네."

바람 빠진 풍선 같이 늘어진 내 배를 보시곤 교수님이 웃으며 얘기하신다.

초음파를 보고 피주머니, 페인버스터를 제거한다. 너무 아파하는 나를 보며 항상 씩씩한 것 같더니 왜 이렇게 힘들어하냐는 교수님 말에 나도 모르게 버럭 화 낸다.

"아픈 건 아픈 거예요!!!!"


수술 4일 차 아침. 밥을 뽑으러 위층에 올라가. 어제처럼 울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허리를 겸손하게 숙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기어다. 그래도 어제보단 나은 것 같아 나름 희망찬 상태다. 그때, 나보다 하루 늦게 수술한 산모들이 나는 이미 제거한 피통까지 옆구리에  양손을 주머니에 은 채 직립보행으로 우르르 걸어 들어와 나를 추월한다.


아... 역시 나만 이렇게까지 힘든 거야...?


희망이 다시 절망으로 바뀐다. 참고 있던 아픔이 서러워져 또 눈물 난다. 간호사들이 세쌍둥이 품느라 자궁이 너무 늘어난 상태였다며, 다른 산모들에 비해 회복이 더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나를 위로해 준다.


다행히 1인실이 났다. 바로 방을 바꾸기로 했다. 나보다는 남편이 더 고생 중이었다. 제대로 누울 자리도 없었지만 혼자서는 거동이 불가능한 나를 두고 어디 갈 수도 없었다. 거기다 1인실 안에는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 가는 게 한결 나아졌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배에 힘을 전혀 줄 수가 없어 누워있다 앉는 것, 앉아있다 눕는 것. 기본 적인 움직임조차 남편이 와줘야 했다.

처음 알았다. 재채기를 할 때나 웃을 때, 배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는 걸. 심지어 재채기는 나오기 전부터 배에 힘이 마구 들어갔다. 정말이지 배가 찢어질 것 같아 어떻게든 재채기를 참고 싶었다. 재채기를 한번 하고 나면 여지는 통증에 괴로워 어찌할 줄을 몰랐다.


다리사이에 들었던 피멍이 허벅지 아래까지 다 내려다. 양쪽 허벅지가 보라색, 파란색, 빨간색로 물들었다. 깜짝 놀라 간호사에게 물으니 안에 고여있던 피들이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거라고 했다.


가스가 잘 나오는 편인데도 가스가 차면 배가 너무 아팠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배안에서 가스가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아프면서도 신기했다. 


아픈 와중에 배는 너무 고팠다


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인 걱정을 많이 한 나의 세쌍둥이 임신이었다. 그 정도로 나는 허약하고 연약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아이들을 별 탈 없이 세쌍둥이 만삭까지(하루 모자라지만) 품었다. 힘들어도 씩씩하게 지내온 시간들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 전부가 놀랄 정도로 나는 그 시간들을 정말 잘 견뎌냈다.


참고 있던 그 모든 것들 아이들 낳은 후, 후폭풍처럼 나에게 한꺼번에 몰려다.

아이들을 낳고, 한 달 반 정도 허리를 펴고 걷지 못했다.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 걷는 것은(거의 기는 수준이지만) 2주가 지나서야 가능했고, 혼자 앉고 눕는 것은 3주, 옆으로 돌아 누워 자는 것은 4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3명의 아이를 품느라 늘어난 뼈들과 근육, 틀어진 골반은 통증으로 연결되어 나를 힘들게 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몸은 아직 다 회복하지 못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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