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세쌍둥이 육아에 적응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처음보다는 덜 우는 것 같았다. 둘, 셋을 한 번에 먹이고 재우는 것도 처음보단 많이 나아졌다. 가끔은 아이들을 눕혀 놓고 남편과 동시에 밥을 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자신감이었을까, 자만심이었을까. 힘들어도 이 정도면 해볼 만하잖아, 자못 스스로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나와 남편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이들은 이전엔 없던 짜증과 울음을 한꺼번에 몰고 왔다.
달래도 달래 지지 않았고, 잠도 잘 자지 않았으며, 밥도 잘 먹지 않았다. 잠시의 쉴 틈도 우리에게 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울기만 했다. 안아서 달래 보려 해도 달래 지지 않았다. 어른 둘에 아이는 셋. 1대 1로 안아줄 수만 있어도 나았을 것이다. 혼자 안긴 아이는 그래도 울음이 덜했으니. 하지만 둘이 동시에 안긴 아이들은 혼자만 안으라고 더 크게 울부짖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둘이 동시에 안기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내 품에 안겨 소스라치게 우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송곳처럼 내 귀에 박혔다. 송곳은 귀를 지나 뒷목으로, 머리로 갔다. 머리에 송곳이 여러 개 박혀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제정신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불가능했다.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이성이라는 것이 없어져 버렸다. 영혼은 이미 내 몸을 빠져나가 이 집 밖으로 나가버린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현실이 아니었다.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어둠의 소용돌이가 나를 밑도 끝도 없는 바닥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차라리 소용돌이에 빠지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했다. 눈물이 끝도 없이 흘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 내가 어떻게 해도 이 아이 셋은 계속해서 울겠지. 그 상황에서 나와 남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아이들을 하나, 둘씩 안고 같이 우는 일 밖에 없었다.
너무 성급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제도 모르고 감히 내가 세쌍둥이를 다 키워낼 수 있다고 자만했던 것 같았다. 세쌍둥이를 키워낸다는 건 애초에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애 셋을 다 낳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한 번도 세쌍둥이를 키우는 것이 쉬울 거라고 예상한 적이 없긴 했지만, 그 예상조차 쉽고 가벼웠던 것 같다. 시댁, 친정 그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내가 무슨 배짱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싶었다. 이 아이들을 키울 자신이 없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혼란스러웠다. 남편도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둘 다 그런 생각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한참을 울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다 안 낳았으면 어떻게 했을 건데? 그때 의사말대로 수술이라도 했어야 한다는 거야?'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 자신에게 소름이 끼쳤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이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포기할 수 없다. 다시 그때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이 아이들을 다 낳을 것이다. 그런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할 일이었다.
다시 눈물이 났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이들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이 아이들을 두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아이 셋이 동시에 잠든 귀한 새벽, 핸드폰을 뒤적이다 임신 전 남편과 갔던 제주도 여행 사진을 발견했다.
그 해 겨울, 아기가 너무 가지고 싶었던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아기 생각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아기만 보여도 서글퍼졌고, 그 아기들의 부모들이 부럽고 얄미웠다. 무얼 봐도 재미가 없었고, 어딜 가도 우울했다. 그 정도로 나는 어서 빨리 아기를 가지고 싶었다. 아기가 없는 나의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결혼 전부터 항상 아기는 세명을 낳고 싶었다. 아기는 꼭 셋을 낳고 싶다고 여기저기 얘기를 하고 다녔다. 하지만 결혼이 너무 늦어졌고, 나이 때문에 셋은 무리니 둘이라도 꼭 낳자싶었다. 그런 내 마음이 가 닿은 걸까. 나는 나의 원래 소망대로 아이를 셋 낳을 수 있었다. 그것도 한 번에.
소원을 이루었다면 응당 행복에 겨워야 하건만, 나는 왜 매일매일을 지옥같이 느끼고, 깨지 않는 악몽같이 느끼고 있는 걸까. 지금의 이 상황에 감사해하지는 못할 망정 왜 이렇게 괴로워하고만 있을까.
한참을 울다 마음을 다잡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나의 소중한 아기들.
엄마가 앞으로는 예뻐만 해 줄게.
엄마가 그동안 정신이 나갔었나 봐."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아무리 힘든 날이 찾아봐도 다시는 아이들을 낳은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성급했다고, 생각이 짧았다고 생각하는 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