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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진 Oct 29. 2024

주말이 두려워

주말.

얼마나 달콤하고 매력적인 단어인가. 모든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일주일 내내 기다린다는 그 주말. 나 역시 월요일부터 주말만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살던 사람이었고, 일요일 아침(?)부터 극심한 글루미 선데이에 시달리던 사람이었다. 버선발로 마중이라도 나가야 할 귀한 손님 주말.


세쌍둥이와 함께 집에 돌아온 이후로 그런 주말이 오는 것이 두려워졌다. 주말에는 산후도우미 이모님들이 나오시지 않기에, 금요일 오후 5시부터 월요일 아침 9시까지, 64시간을 남편과 나 둘이서 아이들을 봐야 다. 잠은 언제 자고 밥은 언제 먹 수 있을까.


나는 잠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타고난 집순이에 주말에는 밖으로 나돌기보다는 집에서 잠자기를 즐겨했다.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슬로건 아래, 집안에서도 부지런히 움직이기보다는 슬금슬금 꿈지럭거리기를 더 좋아했다. 평일을 유난히 힘들게 보내고 난 후엔 주말 내내 밥도 먹지 않고 겨울잠도 아닌 주말잠을 자기도 했다. 그래야 새로 시작되는 평일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다시 해 낼 수가 있었다. 나는 그 무엇보다 ‘잠’의 욕구가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세쌍둥이를 낳고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평일 아침, 이모님들이 오시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길게 이어 자지는 못했다. 점심 먹지 않고 쭉 잔다면(남편은 그렇게 했다) 더  수 있었겠지만 유축 때문에 중간에 한 번은 일어나야 했고, 모유를 위해선 점심 한 끼라도 제대로 먹는 것이 필요했다.

 

오후 5시, 이모님들이 가시면 음 날 아침 9시까지 남편과 둘이 아이들을 보았다. 저녁밥은 한 명씩 돌아가며 먹었지만, 그것마저 제대로 먹을 순 없었다. 2명 이상이 동시에 우는 순간 혼자 먹던 식사도 멈춰야 했다. 아이를 달래고, 밥을 먹이고 역류방지를 위해 안고 있다 보면 한 시간 기본으로 훌쩍 지나, 밥은 다 식어 말라버리고, 입맛은 이미 다 떨어진 후다. 잠은 아이들 앞에서 잠시 조는 것 외에 제대로 자지 못다. 남편과 돌아가며 교대로 자기로 했지만, 둘 이상 깨서 울 때엔 자러 들어간 사람도 다시 나와야 했다.


그래도 이모님들이 계셨기에 그런 밤들을 견딜 수 있다. 낮에 침대에 누워 편하게 조금이라도 자고, 점심 한 끼라도 남이 차려준 상에 앉아 여유를 부리며 먹을 수 있었다. 이모님들은 아이들 목욕도 다 시켜 주셨고, 빨래도 해주셨으며, 집도 깨끗하게 청소해 주셨다. 하지만 주말에는 그 모든 걸 나와 남편이 다 하면서 아이들도 돌보아야 다. 


세쌍둥이를 데리고 온 후 처음 맞는 토요일 오전 9시. 낮이 길어 아침은 진작에 우리를 찾아왔지만 이모님들은 오시지 않았다. 하늘하늘 살랑이는 새하얀 시폰커튼을 뚫고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거실 안으로 쏟아다.

세쌍둥이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이사 온 곳이 지금의 이 1층 집이. 아이 셋을 동시에 키우는 것도 힘이 들 텐데, 아랫집 눈치까지 보며 아이들을 못 뛰게 할 순 없다는 생각이었다. 마음껏 뛰어 놀라고 이사 온 곳이었지아이들은 아직 누워만 지낸다. 목도 잘 못 가누지 못한다. 고, 자고, 싸는, 기본적인 욕구에만 충실한 이 아이들언제 커서 뛰어다닐까. 세 명의 아이들이  집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는 편지려나? 더 힘들어지려나? 애초에 편할 때라는 건 없는 걸까?


커튼을 열어 창 밖을 내다본다. 도로 위는 한산하다. 다들 시외로 나갔나 보다. 짙은 회색의 아스팔트 위로 어지러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아, 지금은 한 여름이지. 집안에서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눈을 돌려 집 안을 바라. 아이들은 이제 막 셋 다 잠이 들었다. 밝은 여름의 햇살을 받으며 자고 있는 세 아이의 얼굴은 평온해 보인다. 그 앞에 남편이 쓰러지듯 누워 순식간에 잠들어 다. 나도 소파에 가만히 누워본다. 에어컨서늘하고 차가운 바람이 내 팔에 와닿려앉는다. 그 서늘함 사이로, 시큼한 아기 토 냄새와 달짝지근한 분유와 고소한 모 냄새가 스며든다. 눈을 감는다. 아이들이 제발 길게 자 주면 좋겠다.


늘 그렇듯 아이들의 고요는 오래가지 않다. 한꺼번에, 또는 돌아가며 세 아이들은 울고, 싸고, 먹고, 토를 하고, 잠이 온다고 보챘다. 아이들 빨래는 순식간에 한 바구니를  가득 채웠고, 기저귀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27리터의 용량이 가득 찼다.(모유를 주로 먹은 아이들은 한 명당 하루에 똥만 6~8번씩 다)


아이들은 밤보다 밝은 낮에 잠들기를 더 어려워했다. 밤에는 안 그러던 아이들이 낮에는 무조건 자신들을 안으라고 큰 소리로 계속 울었다. 아이는 셋인데, 어른은 둘이다. 항상 누군가는 둘을 동시에 안아야 고, 말 낮 내내 둘을 동시에 안고 어야 했다. 그렇게라도 자 주거나 울음을 그치면 다행이었다. 혼자만 안기겠다 난리를 부리며 울면 답이 나오지 않았, 아이들은 대체로 혼자만 안기길 원했다. 래서 아이들은 자주 울 수밖에 없었다.

한명만 편하게 안아줄 수 없어 미안해


주말 동안 밤낮없이 그저 졸면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이틀을 그래도 어떻게 버냈다. 편과 나의 눈은 퀭하고, 초점을 잃었다. 오고 가는 대화도 없다.


월요일 아침 8시 55분, 드디어 벨이 울린다. 주말 동안 너무 울어 더 이상 나올 눈물이 없을 줄 알았건만, 월패드에 찍힌 그분들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오른다.

 

다시, 평일이다.

이틀 내내 씻지도 못한 몸을 먼저 씻고, 침대에 얼른  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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