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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Apr 19. 2024

연아의 꿈

“어디 가시나 보죠?”          

아파트 거치대에서 자전거를 꺼내 올라타고 막 페달을 밟고 있는 연아를 보며 낯익은 얼굴의 경비원이 웃으며 물었다.           

“예, 마트 좀 가려고요.”          

연아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매일 인사를 나누고 명절에는 꼭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드렸다. 사흘 전에 내렸던 눈이 녹아 땅이 질척거리지만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있는 오후다.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인 만큼 자연 친화적인 생활은 물론, 산책로까지 있어 만족스러운 힐링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연아는 왠지 겨울 풍경은 잎 진 몸으로 추위를 견디는 플라타너스 가로수처럼 앙상하고 허전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도심 속 겨울은 빛과 조명으로 겉만 요란하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여유로운 낮 시간대임에도 아파트에는 주차된 차량이 많이 있었다. 아무래도 매일 사용하는 출퇴근 차량은 아닐 것이다. 연아가 아파트 입구에 있는 마트에 다다를 무렵 소형차가 비스듬히 앞쪽에 멈춰 서 있었다. 미처 차를 발견하지 못한 연아는 자전거를 멈추지도 속도를 줄이지도 않은 채 그대로 차량과 충돌했다.           

“뭐야? 이 여자, 씨발,...... 열받게 하네.”          

차의 주인은 작은 키의 땅딸막했다. 눈은 가늘게 찢어져 있고 근육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팔뚝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문신까지 새겨져 있었다. 겨울인데도 반팔티를 입고 굳이 문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제 딴에는 가오 잡으려고 하는 행동이리라.     

외모만 보면 무서운 인상이다.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그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지나던 사람들이 큰 교통사고라도 난 줄 알고 금세 모여들어서 웅성거리고 있다.           

“이봐요! 차를 박았으면 먼저 사과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니요?”          

두어 번을 불러도 대꾸가 없자 그 사내는 큰 소리로 연아를 불렀다. 그제야 비로소 연아는 자전거로 상대 차를 박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척 당황해하며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려온다.          

“죄송해요. 제가 깜빡했어요. 다른데 정신이 팔려서.....”          

상대의 위압감에 연아는 세상에서 가장 애처로운 표정, 도움을 원하는 간절한 눈빛으로 대답을 했다.      

상가에 새로 개업한 반찬 가게에 잘 어울리는 예쁜 채널 간판에 눈길이 끌리는 바람에 잠시 정신이 팔린 것이다.          

“반찬 잘하는 예쁜 누나”          

한때 호평받던 드라마 제목을 차용했지만 간판 디자인만은 세련되고 특이했다. 아마도 주인의 안목인지 제작자의 센스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기 드문 수준이다.”는 생각을 하다 그만 서 있는 차를 미처 보지 못했다. 그리고 자전거를 차에 부딪힌 것도 잊은 채 휴대폰을 들고 간판 사진만 찍고 있었으니 차 주인은 제정신이 아닌 여자로 생각했을 것이다.          

연아는 상대 남자가 강짜를 놓으면 어쩌나 싶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럴 때 최선은 무조건 자세를 낮추며 허리를 숙이는 것이다.          

“죄송해요. 제가 딴생각을 하느라 미처 못 봤습니다.”          

다행히 차가 훼손된 곳은 없었다. 남자는 담배에 불을 지피며 보험접수를 하니 어쩌니 하다가 현금 보상 얘기를 꺼냈다.           

“개소리하지 말고 돈이나 좀 주슈. 10만 원이면 될듯한데....”           

연아는 보험이니 하는 귀찮은 절차는 모두 생략한다는 전제하에 지갑에서 10만 원을 꺼냈다. 사실, 차는 수리할 필요도 없었지만, 괜히 귀찮은 일을 질질 끌고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연아의 직업은 정확히 말하자면 AE이다. 유신건설 산하의 광고대행사를 대표하며 광고주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한편, 크리에이티브, 매체, 조사 등의 업무를 조정한다. 그리고 기업 이익을 제공하면서 광고대행사의 적정 수익을 도모하는 역할도 해야 하기에 평일 야근은 불사하고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또한, 단 몇 초 안에 승부를 결정해야만 하기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창조해야 그들만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일상은 온통 일이며 언제나 스탠바이가 되어 있어야 했다. 얼핏 보면 노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흔히, 광고인의 삶은 ‘워크’가 ‘라이프’를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연아는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고 외국 명문대학에서 유학까지 마치고 대기업은 아니지만 제법 그쪽 계통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지금의 회사에 취직했다.      

스스로 학창 시절부터 광고인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기초 습관부터 충실히 배웠다. 그리고 두루두루 사회 전반을 살필 수 있는 안목을 지니는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아 지금도 최소 1주일에 한 번은 서점에 들러 책을 사며 공연과 전시장도 두루 찾아다닌다. 이런 곳에서 광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며 미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사람들의 옷차림도 보고 액세서리도 유심히 쳐다보게 된다. 저쪽에서 뜻밖에 자신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는 상대를 발견했을 때 그 당황함이란 어떻겠는가?      

신입시절부터 연아는 “프로페셔널하게 일하자”는 생각을 하며 모범을 보였다. 연아의 꿈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광고를 만드는 것이다. 그 광고는 현실의 일상을 담은 광고가 될 것이다.      

특히 현대는 광고의 홍수에서 산다. 그만큼 광고인들에게는 수요도 많겠지만 반대로 수명도 짧다.      

예전에는 TV나 영화, 그리고 길거리에서만 볼 수 있을법한 광고가 스마트폰의 보급과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의 범람으로 인해 임팩트하지 않으면 지금은 살아남기가 어렵다. 그렇게 살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벌써 37살, 사십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광고하는 사람하고는 절대 결혼 안 할 거야.     

 부담스럽다 못해 무섭다.”          

한때는 연아에게도 모든 것을 전부 공유할 정도로 열렬하고 뜨거웠던 사랑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남자는 외국 유학 시절에 만났던 사람이다.     

그러나, 연아가 지금의 회사에 입사해 일에 파묻혀 있을 때부터 고택의 나무로 된 마루 바닥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듯이 둘의 사이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연아의 마음이 먼저 식었다는 것이다. 당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마음을 더 쏟은 탓이다. 그 남자는 지금까지 연아에게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든 무슨 부처 같은 마음의 사람이었지만 헤어질 때의 얼굴 표정과 감정은 극단적으로 낯설었다.          

“너와 같이했던 세월이 원망스러워.     

 잘 먹고 잘살아라.”          

그러면서 그는 연아의 성격에 대해 무슨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처럼 취급했다. 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 버젓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 후, 연아는 두 번 다시 연애를 하지 않기로 작정했으며 혼자 있을 때 그 남자가 했던 말을 두 번 생각하기 싫어서 틈만 나면 작업실에서 디자인 연구에만 고민하고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이제는 일에만 매달린 것이다.          

광고계에서 많이 알려진 얘기가 하나 있다. 세계적인 카피라이터이자 현대 광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이비드 오길비』의 일화로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어느 날, 눈이 먼 사람 하나가 길가에서 구걸하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나는 장님입니다. 도와주세요.” 하지만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 없이 그를 지나쳤고, 그 장님의 빈 깡통에는 돈이 한 푼도 모이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지나가던 한 사람이 이 모습을 보고 종이에 새로운 문구를 적어주었다. 놀랍게도 이 문구를 본 사람들은 장님의 깡통에 돈을 넣어 주기 시작하는 것이다. 새로 글을 쓴 종이에는 바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아름다운 날이지만, 저는 아무것도 볼 수 없네요. (It i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          

“상품에 가치를 부여해 그것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광고의 본질이다. 지금도 유명인을 내세워 단순한 감성에 호소하는 광고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연아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열정은 결국 제품에 대한 믿음이라고 믿고 광고주의 제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남들보다 더 악착스럽게 공부했다.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를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려는 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스스로 빛이 나는 방법을 찾았으며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아 남보다 빨리 승진도 했고 지금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광고업계에서는 한번 남들에게 뒤떨어지면 따라잡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깐.”     

연아는 기꺼이 마음 놓고 즐거움을 끌어내기 위한 화려한 몸짓만은 참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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