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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Apr 19. 2024

친구 "김종호"

“기획전 준비 때문에 너무 피곤해. 그동안은 정신없이 바빴어.”     

“오늘은 일찍 좀 쉬어야겠어.”           

오늘은 덤벼들지 말라는 얘기다. 경윤이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고 앉아 근 한 달 만에 자신의 오피스텔을 찾아온 종호의 나신을 보면서 말했다. 그녀의 몸에 걸친 것은 당연히 알몸 셔츠다. 흔히 모에 요소와 섹시 요소를 둘 다 잡는 복장으로 집에서 즐겨 입는 복장이다. 언제 봐도 고혹적인 경윤의 몸이다.     

하얀 허벅지와 팬티가 살짝 드러났다. 방금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와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고 있던 종호는 경윤을 한번 흘낏 쳐다보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질펀하게 놀 야릇한 상상을 하며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 둘은 언제든 서로의 집을 거리낌 없이 왕래하며 허심탄회한 심경을 얘기하기도 했다. 오늘 종호는, 마음으로는 경윤을 끌어안고 싶은데 그동안 고생을 한 탓인지 아랫배는 홀쭉 들어갔고 얼굴은 패인 것처럼 수척해 보여 안쓰러움에 도저히 안을 수 없었다.       

“그러자.”           

종호가 순순히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늘은 단지 친구의 얼굴만 본다고 생각을 해야겠다. 녹초가 된 경윤을 위해서는 자신이 섹스를 참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경윤을 가장 잘 아는 남자이자 친구다.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경윤이 간지러운 듯 목을 긁어대던 종호를 향해 웃으며 다시 물었다. 성격도 좋고 마음 씀씀이도 다 좋은 편인데 섹스는 조절이 안 된다며 평소에도 상대의 감정이나 몸 상태와 상관없이 자기 꼴리면 덤비는 위인이기 때문이다.          

“아니. 거짓말이면 내 불알을 떼라”           

머리를 저은 종호가 차분하게 말을 했다. 오늘은 축 늘어진 경윤을 보니 생각이 사라진 것이다. 제 딴에는 분위기를 잡는답시고 고급 양주까지 미리 준비해 온 그였다.        

“너 여기 오기 전에 다른 데서 몸 풀고 왔어?”          

경윤이 일어서면서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하품을 하면서 물었다. 나른한 피로가 몰려온다.      

“아니. 꼴리면 손가락 장난질이나 하지 뭐.”          

두 달 전 나이트에서 만난 여자와 딱 두 번 잤는데 그 여자가 자존심도 없는지 매일 전화 연락이 온다고 투덜대며 “어떻게 하면 떼 낼 수 있을까?” 고민 중이라고 오늘 낮에 얘기했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안주 좀 따로 챙겨줘?”          

그렇게 말한 경윤은 거실 탁자에 마른안주와 술을 세팅하고 있는 종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아냐 괜찮아.... 충분해....먼저 자, 내가 적당히 챙겨서 한잔 마시고 잘게”      

“너무 많이 마시지 마....그럼, 나 먼저 잘게.”     

종호의 볼에 살짝 입술을 갖다 대며 말했다. 자신이 어떻게 되든 말든 눈곱만치도 헤아리지 않고 껴안을 궁리만 하던 철부지가 오늘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경윤이 앞에서 설설 기고 있다.     

김종호.      

경윤의 대학 동기로 그의 부모님은 대산시에서도 소문난 큰 냉면집을 운영해 경제적으로는 넉넉한 편이다. 다만, 가계를 이어받을 작정인지는 몰라도 목숨 걸고 취직해서 스스로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지금껏 하지 않는다. 다만, 사진 찍는 취미를 가졌기에 틈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서는 게 직업이라면 직업이다.     

그리고 백수인 주제에 좋은 팔자를 타고나서 인지 직장인 경윤에게 한 번도 계산을 맡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옷은 꾀죄죄하게 입고 다닌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결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만나서 가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무덤덤한 인생 중에 하나의 낙이라고 서로가 생각하고 있다.          

“우리 만난 지 얼마나 되었지?”           

“십 년? 그쯤 되었지.”          

“나. 많이 늙었지?”          

“아냐. 아직 예뻐. 우리 대학의 퀸카가 어딜 가겠어. 오히려 지금은 우아해졌다.”          

“빈말이라도 고마워. 그런데 난 왜 이렇게 살까?”          

“뭐가 어때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마.”          

영진과 이혼하고 다시 싱글이 되었을 때 종호는 경윤을 위로해 주느라 자주 만났었다.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은 경윤의 바람대로 종호는 2박 3일 동안 남해안 일대를 같이 여행하기도 했다.     

항상 그녀의 곁에서 유일하게 만나는 경윤의 친구이자 애인이었다. 학창 시절 종호는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과 은근한 질투를 많이 받았었다.          

경윤은 누구보다도 사랑에 상처가 많은 여자다. 자신이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도 겪었고 영진이라는 좋은 사람과 만나 결혼도 했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혼해 혼자 살고 있다.      

둘이 이혼할 때 누구보다도 반대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종호 자신이었다. 오랜 친구 사이로 그동안 경윤의 스쳐 가는 남자를 몇 명이나 보았던 그도 영진과 사랑할 때만큼의 행복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때 남녀의 사랑이란 육체적인 교감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교감이 사랑하는 사이에서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경윤의 모습이었다.          

다만 경윤은 성적인 욕구가 남들보다 강하다고 해야 할까?     

가끔은 “성욕을 주체할 수 없다.”는 말도 했다. 그래서인지 “원나잇스탠드”도 가끔 하기도 한다. 물론, 원나잇 후에 자책감과 후회도 하지만 절제는 하지 않는다.          

“넌 왜 그렇게 노출이 심한 옷을 고집해?”          

언젠가 종호가 그렇게 물었다. 여성이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다니면 당연히 집적대는 수캐들이 많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내가 잘 보일 수 있는 걸 입는 거야. 장점을 살린다는 거지.”          

자신의 길고 늘씬한 다리, 착하고 여려 보이는 얼굴, 볼륨감 넘치는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강조해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고 경윤이 타락하고 질 나쁜 여자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더 반듯하고 보수적인 편이다. 다만, 연애의 감정과 성욕을 자신이 타인과 밀착되어 가질 수 있는 정서적 행복감과 연인 간의 애착에 있어 더 욕심을 내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없이 아버지 품에서 살아온 자신의 이력과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종호는 생각하고 있다.          

종호는 대학 시절부터 경윤과 단짝이었다. 한때는 죽도록 좋아했지만 경윤의 옆에는 항상 보호자를 자처하는 찐따남들이 죽치고 있었다. 물론, 경윤은 그중의 한 놈과 사랑하게 되었다. 경윤의 열렬하고 뜨거운 사랑을 지켜보면서도 종호는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오래 산 부부들이 헤어지지 못하는 것처럼 온갖 정을 다 쏟았다. 그런 그를 경윤은 “인동초”라며 불렀다.      

물론, 놀리는 것이 아니라 종호의 헌신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던 해 학과 선배였던 그는 경윤을 버렸다. 일찌감치 몸도 마음도 바친 경윤은 평생 그놈만을 믿고 사랑하겠다며 다짐했는데 그가 취직하자마자 보기 좋게 차인 것이다.      

자신을 피해 다니던 그 사람의 직장도 찾아가고 집에도 찾아가서 한바탕 난리를 피울 작정이었는데 종호가 옆에 바짝 붙어 뜯어말리는 바람에 둘이 대낮부터 벌레 씹은 얼굴이 되어 소주잔을 털어 넣었다.           

그날 술에 취해 널브러진 경윤을 감싸 안고 모델로 들어갔지만 경윤은 흐려진 눈으로 “개자식” “개 같은 놈”의 말만 반복해 댔다.     

더 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는 인간으로 생각을 하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느라 힘겹게 숨을 고르는 경윤을 억지로 침대에 눕힌 후 이불을 덮어주자 겨우 잠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아픔과 상처도 클 것이고 허탈함과 상실감이 물밀듯 올 것이다. 그런 경윤의 곁에서 새벽까지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며 종호는 다짐했다.       

“힘센 내가 너를 지켜줄게.”          

“너를 위해서 내 자존심 따위는 내세우지 않을게.”          

아침이 되어 경윤이 눈을 떴을 때 말없이 끌어안고 머리며 등을 쓸어 주며 가만히 안고만 있었다.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난 경윤이 차분하게 말했다.          

“나 하고 싶어. 다른 생각이 안 나게 좀 안아줄래?”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던 종호가 말없이 옷을 벗고 옆에 누웠다.     

대체로 꽃들은 곤충들과 양보 없는 거래를 한다.      

꿀을 미끼로 꽃가루를 묻혀갈 수밖에 없도록 꽃의 모양을 만들었고 크기는 곤충의 몸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빠듯하다.      

그러나 벌깨덩굴이라 불리는 꽃은 한 줄기에 네댓 개의 큼직한 꽃을 달고 있는데, 그 속에는 온갖 곤충들이 들어가 쉬고 있다. 그리고 그 꽃은 굳이 꽃가루 배달을 하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비나 이슬도 피하고 고단한 몸을 푹 쉬었다 가라고 하는 것이다.          

“이젠 좀 아프지 말자 응?”     

“마음 다치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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