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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Apr 19. 2024

광고 페스티벌 기획전(2)

광고기획 기업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국내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는 각자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번 『대한민국 광고 페스티벌 기획전』에는 국내외의 120개 업체에서 참여한다. 유망한 광고 기업들이 성장의 기회를 얻기 위해 연대하고 교류하는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연아는 광고계에서 떠오르는 샛별로 알려져 있다. 뛰어난 순발력과 논리 정연한 업무 처리, 외국 유학 경험으로 마인드 자체도 글로벌했다. 물론, 그녀의 미모 또한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한 것은 자신을 믿어준 최종윤 부사장 때문이다. 이번 기획전 PCO의 대표도 상징적으로 그가 맡고 있다.          

“보람도 가질 수 있고 메리트도 있을 거야.”          

기획전 PCO 현장 책임자로 회사에서 자신을 지목했을 때 망설이던 부사장이 연아에게 한 말이다. 연아가 부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책상에서 무엇인가를 쓰고 있던 종윤이 일어나서 웃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등 뒤의 창으로 햇살이 비추고 하늘은 청명했다. 이제 둘에게는 의례적인 격식 따위는 생략해도 된다. 확실한 친구 사이가 되었으니깐 말이다.          

“너무 뜻밖이라 할 말이 없어요. 그리고 잘할 수 있을까 엄두도 나지 않고요.”          

“무슨 소리야? 난 연아 씨의 능력을 잘 알아. 광고계의 떠오르는 별이 아니면 누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겠어?”          

“광고뿐만 아니라 다방 면에서 유능하신 분들이 많이 있어요.”          

“아주 좋은 커리어가 될 거야.”          

부사장실을 나설 때 종윤의 등 뒤에 머물던 9월의 화사한 햇살이 이제는 연아에게 용기를 주듯 넉넉하게 비추며 함께 따라나섰다.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오늘 아침. 연아는 모처럼 만에 몸도 마음도 개운하다. 영진은 저녁에 다시 오기로 하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갔다.      

어젯밤의 일이 꿈 같이 느껴지고 달콤한 신혼처럼 행복하다. 영진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자신의 몸의 미세한 조직들이 살아 꿈틀거리고 어느새 아래가 젖어들었다. 아침부터 연아의 몸과 마음이 상쾌한 이유이기도 하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오늘 하루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커다란 캐리어를 챙겨 직원들과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에는 대산 광고협회 관계자를 만나 현지 스태프 구성도 의논하고 열차 역과 공항에서 호텔까지의 셔틀버스 운행 방안도 협의를 마쳐야 한다. 그리고 시설, 장비 수준점검과 지역협회의 역할, 초청 내빈 참석 여부 확인과 리스트 작성, 행사장 조성 관련 세부 사항도 구체적으로 의논하고 결정을 해야 한다. 할 일이 태산이다.  

“일정이 잡히는 대로 대산 시청에도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연아의 시선을 받은 대산시 광고물 협회장이 말을 잇는다.          

“지난번에 협회에서 요청한 내용 중에 보충할 것도 있고.... 저쪽에서도 우리에게 건의한 것들도 있어요.”      

“그 목록도 준비해서 주실 거죠?”          

“예. 당연하죠.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물론 시청과 컨택되었고요?”          

“그럼요.”          

“그럼 가서 만나 봐야죠.”          

얼굴이 환해진 협회장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대산시협회 소속 임원들과 상견례 겸 오찬을 함께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협회장은 자신도 광고 일을 하고 있지만 지금 민트색 정장을 입고 머리를 위로 올린 젊은 여인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업무를 챙기며 자신에 찬 모습을 보니 스스로 위축감이 들었다.          

“최 팀장은 리스트 컨펌 좀 해 줘. 그리고 서울에 이메일로 보내주고....”          

“예 알겠습니다.”           

팀장이 낮게 그러면서도 신속하게 대답했다. 최 팀장은 광고대행사 창립 멤버로 처음부터 연아와 같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그녀의 장점은 젊은 나이에 비해 신중하고 현명하며 패기도 있었고 돌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미리미리 대비하는 스타일이다. 연아는 처음부터 그런 최 팀장이 마음에 들어 기쁜 마음으로 픽업했다.     

연아와 영진은 저녁에 다시 만나 산책 삼아 해안가를 여기저기 다녔다. 오로지 오붓한 둘만의 저녁 시간을 만들기 위해 낮동안은 부지런하게 일을 했다. 처음 부사장으로부터 PCO 제안을 받았을 때 걱정도 했지만, 막상 개최 장소가 대산이라는 점에서 영진과의 재회를 생각하니 가슴 설레는 기분이 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료 준비를 하면서 평소보다 더 들뜨고 흥분된 듯한 연아의 생소한 모습에 같은 공간에서 일하던 직원들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만, 최 팀장은 어젯밤 늦은 시간에 업무 보고차 연아의 객실을 찾았을 때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반겨주던 남자 옆에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던 연아의 모습을 보았기에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둘은 생선회로 유명한 회센터에 앉아 현수교 행태로 지어진 대산의 랜드마크로 평가받는 수안 대교의 현란한 야간 조명을 바라보며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어제와 또 다른 연아의 모습이다. 미니스커트에 캐주얼 셔츠다. 영진이 오늘 처음 만났을 때 위아래로 여러 번 훑었다.          

“아이, 참”          

눈을 흘기는 시늉을 한 연아가 앞쪽에 앉더니 웃음 띤 얼굴로 묻는다.           

“왜요.? 다른 사람 같아요?”          

영진이 입에 침을 바르고 말했다.          

“응. 그래서 꼬셔볼까 작정하고 있었는데 연아잖아....”          

“바람둥이 맞네....우리 영진 씨! 도대체 정체가 뭐야?”          

“내 정체??? 몰라서 물어?”          

“돈 후앙(Don Juan)과 카사노바(Casanova) 둘 중에 정체가 뭐냐고....?”          

그렇게 묻고는 연아는 생각했다. “세기의 바람둥이”라고 불리는 둘을 양쪽에 세워두고 영진을 올려놓으면 무게의 중심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까?     

두 사람은 숱한 여자를 농락했다는 것은 공통점으로 단순히 여성 편력 숫자만 비교하면 돈후앙이 앞서지만, 그는 ‘난봉꾼’으로 불리는 반면에 카사노바는 ‘매너남’으로 불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돈 후앙은 한 번 상대한 여자는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 않았으며, 여자란 정복의 상대였을 뿐으로 생각했지만 카사노바는 절대로 여자를 버리지도 않았고 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고자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 후앙과 관계를 맺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그를 증오했었고, 반대로 카사노바의 경우는 아무리 다른 여자와 놀아나도 미워하진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180Cm에 가까운 훤칠한 키에 근육질의 몸매와 준수한 용모만으로도 영진은 뭇 여성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직업이 연구원이라는 지적인 면까지 갖추었으며 또한, 여성들에게 감동을 주는 친절한 매너와 재치 넘치는 말솜씨는 바람둥이 조건에도 부합해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영진은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훔쳤던가?      

그가 사랑을 나눌 때 배려하는 몸짓과 나직이 속삭이는 아름다운 말들은 한 번이라도 들었던 여인이라면 아마도 자신처럼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 생각났어 영진 씨! 아마도 당신은 카사노바에 가까울 거야.”          

영진의 시선을 받은 연아는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영진은 굳이 대답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연아의 눈방울이 아기노루의 눈망울처럼 귀엽고 선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우리, 침대로 가”          

연아가 상기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문득 영진의 모습이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마치 10대 소년처럼 앳된 얼굴이다.          

“섹시한데.....”          

연아가 가운을 벗으면서 침대에 올랐는데 가운 밑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을 보며 영진이 말했다.         

“자기 맘대로 해”          

그러면서 빨리 오라는 듯 두 팔을 벌렸다.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다음날 오후, 최종윤 부사장과 전국 광고물 협회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항공편을 이용해 대산으로 내려왔다. 연아와 최 팀장은 행사 준비 때문에 공항으로 마중을 가지 못하고 대산시 협회장이 부사장 일행을 공항에서 맞이해 대산 시청까지 안내했다. 연아는 시청으로 뒤늦게 합류했다. 부사장은 연아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공항에서 시청으로 오는 동안 대산시 협회장이 연아의 업무 처리 능력에 대해 침을 튀기며 칭찬을 했던 것이다.          

“대산시에서 이번 행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글로벌 혁신도시를 지향하는 대산시에서 전국단위의 큰 행사를 개최해 주셔서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잘 오셨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협의장과 부사장 일행이 예의를 차리며 감사를 표하자 이번에는 마른 체격에 학자풍의 시장이 말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곧바로 시청 회의실로 이동했으며 연아가 발표한 행사준비 과정에서 발생된 여러 문제를 하나하나 언급해서 쉽게 물꼬를 터주었다. 또한, 협회에서도 대산시 관련 부서의 요구사항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별다른 이견이 없어 회의장 분위기는 서로 눈치 살필 필요 없이 시종일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준비 잘해주고 있다고 들었어. 몸은 어때?”          

머리를 든 연아와 부사장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부사장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 차분했다.          

“현재까지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산 시청이나 협회에서도 충분히 받쳐 주고 협조하고 있으니깐요.”          

“다행이야. 내가 잘해 낼 거라고 했잖아. 난 내 친구의 능력을 믿어.”          

그러자 옆에 앉은 전국협의회 임광용 회장이 대머리인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얼굴에도 웃음기가 번졌다. 이번 기획전에 대해 언론의 관심도 부쩍 많아졌지만, 보도 내용 또한 기획전에 대한 기대와 호평 일색으로 연임을 준비하고 있는 자신의 재선 가도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그는 사업가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 더없이 좋은 기회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배움이란 것은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끊임없이 나아가지 않으면 뒤처진다. 회사의 경영도 마찬가지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다. 유진 건설은 이제 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다. 광고대행사는 최종윤 부사장의 깊은 뜻과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실상 새로운 창업을 했다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 연아는 너무 잘해주고 있다. 짧은 시간에도 그 이상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모처럼 대산에 오셨는데 하루 정도는 쉬셔도 될 터인데.....”          

연아의 눈이 부사장을 지시한 채 말을 하면서도 대번에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그리고 괜히 얼굴이 따끔거렸다.          

그날 저녁, 일행들은 저녁 비행기 시간을 맞추느라 인근 식당에서 간단하게 회 비빔밥으로 식사를 마치고 급히 자리를 파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부사장은 연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친구, 고맙네. 본 행사 때 만납시다.”          

연아의 손을 잡은 부사장이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이어 말한다.          

“내가 이번에 다시 한번 연아의 능력을 보며 결심을 굳혔어. 우리 회사도 이제 곧 그룹으로 승격할 터인데 앞으로 더 크게 지원할 수 있을 거야.”          

“아무쪼록 지금처럼만 해줘.”          

다시 연아의 목이 메었다. 모든 것은 꿈을 갖는데서부터 첫걸음을 내딛는다. 과연 이 양반은 어디까지 나를 키워줄 것인가?          

사실 연아는 오늘 최종윤 부사장에게 영진을 소개해 줄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친한 친구에게 자신의 애인을 소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벅찬 일은 없다. 연아는 영진으로 향한 그리움으로 인해 눈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으며 또한, 자신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시나브로 영진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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