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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Apr 19. 2024

광고 페스티벌 기획전(1)

“아니, 대산에는 웬일로?”          

영진이 연아에게 묻자, 연아는 대답 없이 빙긋이 웃고 있었다. 오후 7시, 요즈음은 조금 한가해졌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며칠씩 비우고 여행 갈 정도는 아니다.           

“영진 씨, 보고 싶어서 왔지. 어찌 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연아의 말에 이번에는 영진이 대답 없이 웃었다. 연아한테서 달콤한 향수 냄새가 맡아졌다. 청바지에 셔츠 차림은 여태껏 보아온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풍기고 있었다. 연아는 올해로 15회째를 맞는 『대한민국 광고 페스티벌 기획전』 사전 준비차 내려온 것이다. 이 행사는 혁신적 광고 메시지를 발굴해 광고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매년 개최하는 것으로 연아는 광고 선진화와 창의적인 메시지를 발굴했다는 협회의 인정을 받아 PCO로 참여하게 되어 앞으로 1주일간 일행들과 같이 이곳 호텔에 머무르며 기획 단계에서부터 행사의 마무리까지 맡아 진행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대산은 참 낭만적인 도시군요.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요!”          

연아가 호텔 창밖을 보며 말했다. 눈웃음도 희미하게 떠올라 있다. 호텔 창밖으로는 세찬 파도가 하얗게 넘실대고 있었다.          

“그렇지. 플러스로 다양한 맛의 진미 또한, 느낄 수 있을 거야.”          

연아가 대산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경이었으니 3시간쯤 전이다. 그리고 호텔에 도착해 곧바로 영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가자. 저녁부터 먹어야지.”          

“아니. 우리 여기서 시켜 먹어요. 시간이 아까워....”          

영진의 옆으로 몸을 바짝 붙이며 연아가 말했다. 그러고는 영진의 입술에 키스를 한다. 영진도 연아의 입에서 뻗어 나온 달콤한 혀를 빨았다. 벌써 연아의 입에서는 거친 탄성이 나오고 있다. 영진은 가슴이 세차게 뛰었고 얼굴이 화끈거려 심호흡을 한번 했다. 예상치 못하게 연아가 대산시로 온 것이다. 그동안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기는 했지만 직접 내려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오랜만에 연아의 웃음 짓는 모습을 보니 영진의 가슴도 편안해졌다.          

“같이 씻어요?”          

연아가 바지를 벗고 나서 영진의 얼굴을 두 손을 감싸고 말한다.          

“영진 씨 얼굴을 보니깐 모든 근심 걱정이 다 풀리고 행복해져요. 아무리 어려운 일  도 해낼 것 같은 힘이 솟아나요!”          

영진이 셔츠와 바지까지 벗었을 때 연아가 옷을 하나씩 받아 들고 옷걸이에 걸었다. 팬티만 입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할 때 문이 열리더니 연아가 벗은 알몸으로 들어왔다. 젖가슴과 숲이 다 드러났다. 영진은 샤워기를 들어 연아의 몸을 향해 장난스레 물을 뿌렸다.     

연아도 웃으면서 몸을 숙이고는 영진의 팔을 잡았다. 물을 머금은 연아의 몸은 물방울이 “또르르” 떨어져 내려 오일을 바른 듯이 반들거린다.     

순간, 연아는 고개를 들고 얼굴을 붙였다가 혀를 내밀어 영진의 입안을 조심스럽게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보고 싶었어. 영진 씨”          

“나도 보고 싶었어.”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쉴 새 없이 쏟아져 온몸을 적시고 있다. 연아의 왼쪽 가슴 바로 위에 작은 점 하나가 박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렇게 잠시 알몸으로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여자의 아름다운 몸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고 했던가? 물론, 몸의 아름다움 보다는 마음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고 값지다는 말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연아의 몸은 분명 축복이리라.      

영진이 비누를 손에 들고 연아의 몸에 비누칠을 해주었다. 배를 문지르고 등을 문지르고 그리고 숲을 문질렀다. 미끈한 감촉과 함께 짜릿한 쾌감이 번졌다. 이내 연아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리고는 두 팔로 영진의 허리를 감아 안는다.          

“우리, 그만 나갈까?”          

샤워기의 꼭지를 잠그고 영진이 말하자 연아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밝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살짝 끄덕인다.     

각자 타월을 하나씩 들고 서로의 몸을 구석구석 정성을 들여 닦아 주었다. 몸의 열기가 서로 닿을 때마다 가슴이 뛴다. 물기를 다 닦고 둘은 침대 위로 올랐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연아의 아름다운 동산과 숲의 언덕과 골짜기가 모두 드러났다.          

영진은 서두르지도 않았고 연아는 기교를 부리지도 않았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연아는 눈을 감은 채로 두 다리를 벌리고 두 팔로 영진의 어깨를 세게 쥐었다. 영진은 천천히 연아의 몸과 하나가 되었다. 그 순간 연아가 입을 딱 벌리면서 신음을 뱉는다. 이미 연아의 샘에는 뜨거운 온천수가 콸콸 넘쳐 계곡을 따라 흐르고 있다. 드디어 영진이 본격적인 허리를 움직일 때 처음에는 입을 다문 채 신음을 뱉던 연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거친 탄성을 쏟아낸다.      

“아~~~ 영진 씨. 너무 좋아”를 헛소리처럼 되뇐다. 순간 눈을 뜨고 있어도 초점은 흐려져 있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결말이 나왔다. “아아~~~”머리를 뒤로 젖힌 연아가 만세를 외치듯 크게 소리쳤다. 영진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절정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때 연아가 눈을 똑바로 떴다. 허리를 움직이던 영진이 연아와 시선이 딱 마주칠 때 온몸의 에너지가 하늘로 솟아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유독 더 뜨거웠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남는 법. 폭발은 잠깐이지만 섹스의 여운은 오래 남는다.”         

연아가 침대에서 일어나려다가 도로 누웠다. 온몸에 힘이 다 빠져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의 기분은 상쾌하고 맑았다. 오늘은 호흡도 잘 맞았고 자세도 좋았다. 이미 서로의 몸을 너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만남은 운명인 것 같아.”          

연아가 룸에서 디너로 양고기 스테이크를 먹으며 영진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KTX 안에서 영진의 옆자리에 처음 앉아 눈이 마주치던 그 순간부터 “어. 이 남자?”하는 느낌이 있었다며 어쩌면 전생에서 둘이 부부로 살았다가 다시 환생해서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단다.          

“그렇다고 영진 씨 외모가 내 맘에 쏙 들었다는 것은 아니야....”          

그 말을 하고선 영진을 보며 웃었다. 연아는 다른 사람과 만나 죽고 못살기로 연애도 해봤지만, 영진과의 첫 만남에서 자신이 반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은근히 호감이 갔으며 처음 보는데도 마치 오랫동안 사귄 사람처럼 편하고 불편한 느낌이 없이 좋았다. 살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사람은 영진이 처음이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고 그러니깐 점점 아픔이 많아지고 진솔해지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거짓말과 거짓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결국은 외줄 타기 하듯 위태로워지다가 둘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고 이별을 맞이하며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영진에 대한 서운함이 어찌 없었겠는가? 곁에 있지는 않지만, 보고 싶을 때 달려오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었다. 그러나, 그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같은 마음이겠지.” 하며 그를 이해하려고 했었고 그러다가 날이 갈수록 더 사랑하고 그리워지게 된 것이다.          

“대산에서 만큼은 나 외롭게 하지 마!”          

연아가 영진의 얼굴을 빤히 보며 다짐을 받듯이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시선을 받은 영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경윤을 만난 이후 여자를 안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며칠 전 정미를 만나긴 했지만, 그녀의 몸을 탐하지는 않았다. 정미에게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둘의 섹스는 또 다른 문제였다. 이제는 정미를 친구처럼 대할 생각이다.      

며칠전 밤 10시가 가까운 늦은 시간에 자신의 오피스텔을 찾아왔다. 당시 정미는 술에 취해 있었다. 그 전날 밤 정미가 퇴근해 집에 가니 남편이 불같이 화를 내었다. 아들이 학교에서 다치는 바람에 연락했었는데 당시 영진과 같이 있었던 정미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남편으로 입장으로는 최근 그런 일이 점점 잦았다.           

“커피 한잔 줘. 마시고 후딱 가야 해.”          

그리고 커피를 마신 정미가 일어서며 소파에 앉아 있는 영진의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정미의 부은 얼굴에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혼자 울고 있었을 것이다. 영진의 가슴도 먹먹해졌다.          

“내가 너무 욕심이 과했나 봐.”      

언제나 당당한 정미였기에 갑작스러운 행동에 마음이 쓰인다. 아무래도 일이 커질 조짐이 있어 불안한 정미가 행동거지를 조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그것 말고는 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불완전한 존재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바람에 흔들리기도 한다.      

외도란 그런 것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되기도 하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란 없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이리저리 흘러가는 것이다.     

“피곤하지? 내 어깨에 잠시 기대다가 가도 늦지 않아. 좀 나을 거야.”          

다시 소파에 앉은 정미는 힘없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영진은 담배를 물었다.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고 그리고 길게 내쉬었다.          

“자기 집에선 하늘의 별이 참 잘 보여”          

정미가 밤하늘을 보고 말했으므로 영진도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오리온 별이 일직선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쉽게 구별되고 있다.          

“저기 오리온이 보여?”          

“보여요. 저렇게 반짝이는데.... 저 별만 보면 난 영진 씨 생각부터 날 것 같아.”          

오리온은 큰 키에 엄청난 괴력을 지닌 사냥꾼이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기도 한 오리온은 달의 여신이자 활쏘기의 명수인 아르테미스의 연인이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아르테미스의 오빠인 아폴로는 그들의 사랑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아르테미스를 오리온에게서 떼어놓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동생은 오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아폴로는 오리온을 없애기로 마음먹고 오리온에게 금빛의 너울을 씌워 아르테미스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동생에게 일부러 금빛의 너울을 맞출 수는 없을 것이라고 약을 올렸다. 화가 난 아르테미스는 단번에 너울을 명중시켰고, 오리온은 이마에 화살이 박힌 채 죽었다. 아르테미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오리온을 죽인 것을 뒤늦게 알고 비통한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오리온은 죽었지만 아르테미스는 오리온과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했었대.”     

정미가 사랑을 얘기하다가 아주 밝고 아름다운 오리온 별자리를 보며 영진을 보았다.     

괜히 가슴이 저려 왔다. 어쩌면 둘은 이제부터 타인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자신의 입술을 영진 입술에 갖다 대었다. 영진이 마치 답례라도 하듯 그녀의 눈가에 입술을 댔다. 둘이 같이 꿈꾸어온 지난날이 있었다. 고맙게 생각을 한다고 많이 당신을 생각했다며 영진은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랑해..... 사랑해요.....”           

되돌아서 천천히 걸어가는 정미의 뒷모습이 보인다. 긴 그림자가 늘어지고 있었다. 영진은 창문을 열고 담배를 물고는 라이터에 불을 켰다. 언덕 저 위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와 한 번, 두 번, 세 번.... 여러 번 불을 켜야 했다.      

어쩌면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이 우리 사이에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정미에게 언젠가는 꼭 그 말을 해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호텔 룸이다. 식사를 마친 연아가 회사 부사장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한 손으로 영진의 아랫도리를 잡고 장난치듯 위아래로 흔들어 댔다.      

영진과 눈이 마주치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담배를 피우러 방을 나가려는 영진의 소매를 당겨 다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영진이 옆에 나란히 앉았을 때 통화를 끊은 연아가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할 수 있지?”          

그리고는 다시 영진의 몸 위로 말을 타듯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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