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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ug 06. 2024

일방적인 미련?

안됐다. 쓸쓸한데 항상 속을 숨기고 능청 맞고 장난스럽게 명랑하다.



도로에 출근하는 차들과 대중교통으로 줄지어 있었다. 진주는 운전대를 잡고 미디어 버튼을 눌렀다. 뉴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 나왔다.

정류장 옆을 스쳐 지나는데 화정이 반찬 가게 앞에서 스쿠터를 정차하고 이제 막 헬멧을 벗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주는 아침에 빈속으로 대문에 걸려 있던 화정의 반찬가게 비닐을 생각했다.      


‘어제 술 마신 건 어떻게 아셨을까, 또?’     


진주는 운전대를 잡고 생각에 잠겼다. 어제 분명히 본인 스스로 술을 한두 잔 마셨다. 순간 필름이 끊기만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방바닥에서 자고 있는 태오를 보고 빨리 집에서 나가자가 먼저였다. 출근 시간에 늦을 거 같기도 해서였다. 그런데 진실에게 서류 가방을 받아 들고 핸드폰부터 확인하는데 제일 먼저 본 게  화정에게 와 있는 문자였다. 순간 얼얼했다. 그러게 안 마시던 술을, 그것도 그냥 한두 잔 마신 게 아니라는 걸 기억했다.      


”다 돌려놔 너를 만나기 전에 내 모습으로 추억으로 돌리기엔 내 상처가 너무 커“     


운전대 잡은 진주의 두 손에 힘이 들어 갔다. 진주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왜 그랬을까 싶은 생각에 진주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노래방에서 태오와 듀엣으로  노래만 반복해 부르던 모습도 생각났다.

진주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진주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짧고 강하게 때렸다. 미치겠다는 표정이었다.                         





식탁을 치우고 있던 화령은 안방에서 넥타이를 매며 나오는 대한에게 다가갔다. 화령은 대한의 넥타이를 바로 잡아 주었다. 그리고 소파 위에 놓여 있던 서류 가방을 챙겨서 건네 줬다.     


”처제 시켜서 애들한테 해장국 보낸 거에요?“     


화령은 별일 아니라는 듯 머리를 매만지는가 싶더니 이상하단 표정으로 대한을 쳐다 봤다.      


”혹시 진실이가 또 문자 보냈어요?“     


대한은 윙크를 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현관 쪽으로 걸어 가며 비밀스럽게 말했다.     


”당신만 딸들하고 비밀 있는 거 아니에요. 나도 있어요.“     


화령은 입을 삐죽이며 현관 앞에 서서 대한이 신발을 챙겨 신고 대문 손잡이를 잡는 걸 쳐다 봤다.      


”이서방 먹으라고 보낸 거에요. 이서방이 화정이 요리 좋아했잖아요.“     


대한은 대문을 열려다 몸을 돌려 화령을 지그시 쳐다 봤다.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충고하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이제 우리 사위 아니에요.“     


”나도 눈치가 있어요. 진주만 끝났다 그러지 이서방은 아직도라고요. 난 걔네 둘은 꼭 재결합 할 거 같단 말예요.“     


대한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화령을 바라봤다. 그리고 부드럽게 타이르듯 말했다.     


”우리 욕심일 뿐이잖아요. 애들에게 맡겨 둡시다.“     


화령은 대한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포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은 그런 화령의 한 쪽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 주고는 대문을 열고 나갔다.

현관 앞에 혼자 남은 화령은 어쩌겠냐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부엌으로 갔다.                         







”어떻게 된 거에요?“     


하기사 손에 종이 백이 들려 있었다. 태오는 말끔하게 새 정장으로 갈아 입은 상태다. 태오는 엘리베이터 층 숫자판만 쳐다봤다. 조금 뻘쭘하고 민망하다는 표정이었다. 애써 아무 일 없다는 듯 무표정을 지으려 하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됐어.  왜 엄마가 또 뭐라하셔?“     


”형이 잘 알잖아요. 뭐라 하셨을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태오가 먼저 빠른 걸음으로 내렸다. 하기사는 저 사람 딱해서 어쩌나 싶은 표정으로 태오의 뒤 모습을 쳐다보며 뒤따라 내렸다.                         






미주는 영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은근 화가 나 있었다. 현관문 앞에서 넥타이를 매만지고 있는 태상을 쳐다보며 손에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태상은 넥타이를 다 매만지고 미주에게 습관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미주는 신경질적인 손짓으로 서류 가방을 태상에게 내밀었다. 태상은 서류 가방을 받아 들면서 미주를 쳐다 봤다.     


”태오에게 또 전화하지 마요. 요즘 중요한 사건 때문에 바쁜 애니까.“     


미주는 이제 막 현관문을 열고 구두를 신으려는 태상의 등 뒤에서 짜증이 난다는 듯 혼잣말 하듯 투덜거렸다.    

 

”그렇게 바쁜 애를 그 애랑 또 붙여 놓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     


태상은 구두를 신고 몸을 돌려 미주를 쳐다 봤다. 미주는 뭐 어쩌라는 거냐는 듯 은근 시선을 피하면서도 꼿꼿하게 서 있었다.     


”이 집에서 그 애를 싫어하는 건 당신 뿐이요. 난 걔네들 끝났다고 생각 안 하오. 태오한테도 나한테도 필요한 얘요. 그러니 ...“     


태상은 잠시 말을 끊고 미주를 쳐다 보고만 서 있었다. 그러더니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못을 박듯 쏘아 붙였다.     


”그러니 다시는 태오랑 그 애를 갈라 놓을 생각하지 마시오.“     


태상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소리나게 쾅하고 닫았다. 미주는 태상이 쾅하고 닫고 나간 대문을 못마땅한 듯 쳐다 봤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태오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막상 통화 버튼이 눌러지지는 않았다.      


”태오에게 또 전화하지 마요. 요즘 중요한 사건 때문에 바쁜 애니까.“     


태상의 무뚝뚝하고도 가시 돋힌 듯 내쏘는 말이 떠올라 신경질적으로 핸드폰 폴더를 닫았다.

이전 19화 이후에도 우리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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