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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ug 03. 2024

이후에도 우리는 그랬다.

이렇게 친구처럼, 옆에서 지켜 보며 살아도 되는 거지?


아파트 단지 안에 햇살이 비춰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 동의 창문에서 집 안의 전등들이 하나 둘 켜지고 있는 게 보인다.     



아파트 단지 근교 도로에서 헬멧을 쓴 채 스쿠터를 타고 달리고 있는 화정의 모습이 보인다. 스쿠터는 아파트 단지 입구 쪽으로 들어 서고 있다.                         




진주는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한 손으로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눈을 감았다 떴다. 침대 아래서 뭔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 무심히 내려다 보다가 진주는 어이가 없단 듯 미간을 찡그렸다. 

침대 옆 바닥에서 태오가 잠들어 있었다. 양복 상의를 이불 삼아 전날 입고 있던 양복 바지와 와이셔츠, 넥타이 그대로 걸친 채 잠들어 있었다.

진주는 소리 안 나게 침대에서 조심히 내려와 태오를 피해 깨금발로 방을 나가려다 다시 바닥에서 잠자고 있는 태오를 내려다 봤다. 진주는 침대에서 이불을 살며시 걷어내 태오에게 덮어 주고는 방문을 나가며 소리 안 나게 방문을 천천히 닫았다.          

방문을 나온 진주이 시선에 거실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 진화가 들어 왔다. 식탁 위를 보니 와인병들과 먹다 남은 안주들, 빈 와인 잔 3개가 놓여 있었다. 

진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발소리를 안 내려 조심하며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손에 갈아 입을 외출복과 속옷을 챙겨 나온 진주는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화정 혼자 타고 있었다. 스쿠터 헬멕을 그대로 쓰고 있는 화정의 손에는 반찬통 같은 게 가득 들어 있는 큰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

화정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화정은 다른 한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못 말리겠단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다 왔어.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고 있다고, 언니.“     


”애들 매운거 싫어 하는데 맑은 해장 국물로 잘 챙긴 거지?“     


”내가 애들 취향을 몰라? 언니는 새삼스럽게. 한가득 잘 챙겼고, 영수증도 잘 챙겨 놨으니 반찬 값이나 정확하게 입금해 줘.“     


”누가 공짜로 달래? 언제는 내가 반찬값 안 줬니, 얘는“     


화정은 전화를 끊으며 웃는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화정은 빠르게 내려서 진주의 집 대문에 들고 있던 큰 봉지를 걸어 놓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문이 다 닫히기 전에 재빠르게 엘리베이터에 탔다. 바로 핸드폰으로 진주, 진화, 진실에게 문자로 사진을 전송했다. 문자도 덧붙여 전송했다.     


‘늬들 어제 퍼 마셨니? 왠일로? 새벽부터 네 엄마가 해장국에 반찬 좀 대문에 걸어놔 주래서 대문에 걸어 놨다. 챙겨들 먹어. 돈은 네 엄마가 내기로 했으니까! 다음에 퍼 마실 땐 이 이모도 좀 불러라. 어째 매번 늬들끼리만 마시니?’                         







진주가 욕실에서 나오는데 진실이 한솔이 방에서 나왔다. 진주는 거실과 부엌 쪽을 둘러 봤다.     


”내 서류 가방 어딨니?“     


진실은 말없이 현관 쪽으로 가는가 싶더니 진주의 서류 가방을 갖다 주었다. 진주는 식탁 의자에 서류 가방을 내려 놓고 가방 안을 살폈다. 

진실은 조용히 식탁 위를 치우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니? 이태오 저 인간이 왜 여기 있어?“     


진실은 진주를 쳐다 보지 않고, 식탁 위를 치우며 조용히 대답했다.      


”형부가 언니 업고 집에 왔어. 왔다가 보이는 대로야.“     


진주도 서류 가방 안을 들여다 보느라 진실을 쳐다 보지는 않았다.       


”누가 너희 형부야?“     


”뭐, 언니한테는 이제 남편이 아니지만 우리한테는 아직 형부네.“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던 진화가 깼는지 진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주는 소파에서 몸을 반 일으켜 진주와 진실을 쳐다 보고 있는 진화를 쳐다 봤다. 

진주는 뭐라 더 말을 하려다 말고 서류 가방을 챙겨 현관 쪽으로 갔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현관 바닥에 부스럭부스럭 뭔가 내려 놓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대문 닫히는 소리도 들렸다.

진실은 현관 쪽으로 가 화정이 놔 두도 간 큰 비닐 봉지를 들고 와 식탁 위에 내려 놓았다.      


”이모 왔다 가셨어?“     


”응, 일어나. 형부도 깨워. 우리 끼리라도 해장해야지.“     


진화는 두 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켜는가 싶더니 몸을 일으키더니 뭔가를 찾는 듯 거실 여기저기를 살폈다. 진실은 식탁 위를 깨끗이 치우고 화정이 갖다 놓은 반찬과 국으로 상을 차리다가 진화가 거실을 이리저리 돌며 뭔가 찾는 걸 봤다. 

진실은 알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젓더니 냉장고 옆 협탁 위에 놓인 진화의 핸드폰을 가져다 줬다. 진화는 진실이 건네는 핸드폰을 받아 들며 배시시 웃었다.     


”역시 우리 막내 뿐이야.“     


진실은 식탁 위에 마저 상을 차리고 수저를 놓았다.     


”어떻게 언니 둘다 술만 마시면 자기들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를 몰라. 형부 깨워, 나는 한솔이 깨우게.“     


”알았다, 알았어.“     


진화는 진주 방으로 슬며시 들어가고, 진실은 한솔의 방으로 들어 갔다. 


잠시 후, 진주의 방에서 진화와 양복 상의 재킷을 손에 들고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태오가 따라 나왔다. 진실과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는 한솔도 거실로 나왔다.     


”이한솔, 잘잤어?“     


”응, 아빠 어제 여기서 잤어?“     


”응. 네 엄마 옆에서 잤지.“     


태오는 기분 좋게 웃으며 한솔에게 다가가 무릎을 구부리고 한솔의 볼에 뽀뽀를 했다. 한솔은 그런 태오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진주 방 쪽을 힐끔 쳐다 봤다.     


”엄마한테 안 혼났어?“     


태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윙크를 해 보이더니 한솔에게 비밀 얘기라도 하듯 한솔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가 아빠 이불 덮어 주고 먼저 나갔어. 이왕이면 출근도 같이 좀 하지. 그지?“     


한솔은 참 딱하다는 듯 태오를 쳐다 보며 한 손으로 태오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진실과 진화는 그런 한솔을 내려다보며 귀엽다는 듯 웃었다.     


”한솔아. 학교 가려면 세수하고 밥 먹어야지?“     


한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실과 욕실로 들어 갔다. 진화랑 태오는 식탁 앞에 앉았다. 태오는 속이 쓰린지 한 손으로 위 배를 쓰다듬었다. 

태오는 먼저 수저를 들고 국을 한술 떴다. 시원하고 좋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으며 진화를 쳐다 봤다.     


”이거 이모님표 맞지?“     


진화는 웃으며 수저를 들고 국을 떠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밥과 국을 떠 먹으며 진화의 눈치를 살피는 듯 했다.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진화는 그런 태오의 시선을 느꼈는지 걱정하지 말라는 듯 한 손을 내저어 보였다.     


”언니 별말 없이 나갔어요. 걱정 마세요.“     


그러더니 태오를 딱하다는 듯이 쳐다 봤다.      


”형부는 언니가 그렇게 무서워요?“     


태오는 씩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화는 그런 태오가 참 쓸쓸하고 안돼 보였다. 

화정 이모네 반찬 가게 맛을 아직도 잘 기억하는지 맛있게 국과 밥을 먹고 있는 태오를 잠시 쳐다 봤다. 진화는 피식 웃더니 다시 국과 밥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그때 욕실에서 진실로가 한솔이 나와 식탁으로 와 자리 잡고 앉았다.

태오는 자신의 옆에 앉은 한솔을 보며 너무 좋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태오는 한솔의 수저를 챙겨 들고 밥을 퍼 한솔의 입에 넣어 주었다. 한솔을 오물거리며 태오에게 수저를 달라는 듯 한 손을 내밀었다.     


”나 이제 초등학생이야. 혼자 먹을 수 있어, 아빠.“     


”알지. 우리 한솔이 옆에서 밥 먹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너무 좋아서.“     


태오는 한솔을 쳐다보며 바보 같이 활짝 웃어 보이며 한솔에게 수저를 내밀었다. 한솔은 수저를 받아 들고 알아서 밥과 국을 챙겨 먹으며 대답했다.     


”응, 나도 좋아.“     


진실과 진화는 그런 태오와 한솔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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