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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ug 11. 2024

버거운 빈자리

미련이나 사랑 때문에만 빈자리가 느껴지는 건 아니다.


진주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 라운지와 복도를 지나쳤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사무실로 걸어 들어오긴 했다. 그런데도 왜 뒤통수가 따끔한 느낌이 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진주는 책상으로 다가가 서류 가방을 내려 놨다. 의자에 앉으면서 한강실 이사의 사무실을 힐끔 쳐다 봤다. 아직 안 온 거 같았다. 진주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근데 내가 왜 이래야 하지? 좀 쪽팔린 거지, 잘못한 건 아니잖아?’     


진주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진주는 벨소리에 괜스레 놀랬다. 발신자를 보니 한솔이었다.      


”솔, 학교 갈 시간 아냐?“     


”지금 가고 있어. 엄마 괜찮아?“     


”안 괜찮을 일 있어?“     


진주는 서류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 했다. 그러나 얼굴은 창피해서 죽겠다는 표정 가득이었다.                              




”그런데 왜 한솔이 얼굴도 안 보고 아침밥도 안 먹고 나갔어? 엄마 아침에 한솔이 얼굴 안 보고, 아침밥 안 먹고 나가면 일 망친다며?“     


진실은 한솔에게 책가방과 실내화 가방을 건네 줬다.      


”알았어. 아빠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말고.“     


한솔은 전화를 끊고 책가방과 실내화 가방을 받아 들었다. 먼저 학교 입구에 와 막 보라를 들여보내고 있던 보라 엄마가 한솔과 진실을 힐끔힐끔 쳐다 보고 있었다.      


”한솔아.“     


한솔은 학교 안으로 막 들어가려다 돌아 봤다. 보국이와 하늘이가 뛰다시피 한솔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얘들아, 뛰지 말고.“     


”안녕하세요.“     


뒤따라오던 보국 엄마와 하늘 엄마가 학교 입구 앞에 있던 진실과 엄마들에게 인사를 했다. 보라 엄마도 보국 엄마와 하늘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진실은 인사만 하고 뒤돌아섰다. 신호등 앞에 서서 뒤에서 학교 얘기며 학원 얘기 등을 하는 엄마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보라 엄마는 엄마들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안 그런 척 힐끔힐끔 진실을 곁눈질 했다.

저만치 모퉁이에서 그런 진실을 숨어서 쳐다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진상이었다. 모자를 쓰고 힙시트로 유리를 품에 안은 채 숨어서 진실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실이 길을 건너다 신발이 벗겨지려 해 넘어질 뻔하는 진실을 보며 숨어 있던 모퉁이에서 순간 몸을 빼며 다가갈 뻔도 했다. 그때 유리가 가만히 있다가 뭐가 불편한지 칭얼대기 시작했다. 진상이 조용히 달래보는데 급기야 울음을 터트렸다.

진실을 길을 거의 다 건너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울음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봤다. 진실이 몸을 돌리는 것을 본 진상이 다시 몸을 숨기는데 진실의 곁눈질 하던 보라 엄마가 그 모습을 봤다.

진실이 돌아 봤을 땐 그 곳에 아무도 없었다. 진실은 멍하게 가만히 서 있었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졌다. 보라 엄마는 진상이 재빨리 몸을 숨긴 곳을 목 빼고 쳐다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실은 차가 클랙슨을 울려대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얼른 길가로 올라가 섰다. 진실은 다시 소리가 들렸던 듯한 곳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유리가 우는 소리 같았는데...“     


보라 엄마는 진실과 진상이 몸을 숨긴 곳을 번갈아 쳐다 봤다.                         





뒤 자석 카시트에서 유리가 울고 있다. 진상은 진실이 평소 틀어 줬다는 아기 동요를 틀어 본다. 유리의 울음소리 속에서 운전대를 잡고 신호를 확인하느라 예민하게 긴장돼 있었다.

아기 동요를 틀어 줘도 유리의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진상의 얼굴빛이 하애지고 있었다. 백미러로 뒤 자석 카시트의 유리를 힐끔거리며 ”그래, 아빠가 빨리 갈게. 좀만 참자.“라고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보지만 긴장한 듯 목소리가 은근 경직돼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희자는 이제 막 계산을 마친 손님을 내보내며 식당 안을 둘러 봤다. 식당 안에 꽉 찬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얘는 제일 바쁜 시간에 어딜 간 거야?“     


식당 문이 열리고 힙시트로 유리를 안은 진상이 들어 왔다. 모자를 눌러 썼던 탓에 짧은 머리카락들이 땀에 젖은 듯 달라 붙어 있었다. 진상의 품에 안긴 유리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아니, 너는 어딜 갔다 오는 거야? 얘는 또 왜 이렇게 울어대?“     


진상은 아무 말 없이 퉁퉁 대는 발걸음으로 계산대 바로 뒤에 있는 룸으로 들어 갔다. 룸의 문이 거칠게 닫혔다. 희자는 혹시라도 손님들이 쳐다보나 싶어 식당 안을 둘러 보며 룸 문을 열고 뒤따라 들어 갔다.               

진상은 유리를 바닥에 깔린 아기 이불 위에 눕혀 놓고 그 옆에 있는 가방에서 기저귀를 꺼내고 있었다. 희자는 우는 유리 옆에 앉아서 유리의 한 손을 잡고 다그치듯이 달랬다.     


”뭘 이렇게 울어. 그만 울어. 얼른.“     


진상은 기저귀를 갈려다 말고 희자에게 버럭 짜증을 부렸다.     


”애가 우는데 그렇게 혼내듯 다그치면 애가 그쳐?“     


희자는 어이 없는 표정으로 진상을 쳐다 봤다. 진상은 얼른 유리의 기저귀를 갈아 줬다. 그래도 유리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진상은 허둥다며 가방에서 분유 병을 꺼냈다. 그리고 방구석에 놓인 포트에 전원을 켰다.

희자는 으그, 하는 표정으로 유리를 안아 올리려 했다. 진상이 옆에 있다가 그러는 희자의 두 손을 한 손을 휙 밀치듯 쳐 버렸다.     


”아니, 얘가 진짜. 식당 제일 바쁜 시간에 말도 없이 애 데리고 나갔다 오더니 왜 이 애미한테 화풀이야?      


포트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상은 우는 유리를 내려다보다 희자를 노려 보듯이 쳐다 봤다.      


“애는 애 엄마랑 있는 게 낫다고 내가 뭐랬어? 엄마는 손자가 아니라 손녀라고 그렇게 진실이를 구박해 놓고, 왜 애는 못 준다고 그 난리를 쳤어?”     


희자는 기가 막혔다. 진상의 목소리가 룸 안을 가득 매웠다.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희자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밖에서 난처하다는 듯 조용히 말하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유리 울음소리랑 매너저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손님 분들이...”     


희자는 진상을 째려보듯 쳐다보며 화가 끓어 오르는 얼굴 표정을 가다듬듯 한 손을 가슴에 갖다 대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얼른 룸 문을 닫았다.

밖에서 희자가 간드러지게 웃으며 손님들에게 하는 말들이 들려 왔다.     


“아유, 맛있게 드셨어요. 좀 시끄러웠죠. 우리 손녀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울어 대는지, 아휴 죄송해요.”     


진상은 희자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애써 참으며 포트에서 끓어 오른 물과 가방에 있던 보온병의 찬물을 섞어 분유병에 적당히 부었다. 분유병을 막 흔들더니 바닥에 내려 놓고 유리를 품에 안았다.

진상은 유리를 한 팔로 받쳐 안고 다른 손으로 분유병을 들었다. 유리 입에 분유 병을 갖다 대 보는데 처음엔 유리가 입을 열지 않고 계속 칭얼 댔다. 몇 번 그러더니 유리는 분유 병은 입에 물고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진상은 진실의 품에 안겨 까르륵 대며 분유병을 빨던 유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진상의 두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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