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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ug 02. 2024

각자 다른, 동상이몽 결혼과 이혼

너는 그랬니? 나는 아닌데, 네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더라고 그건 아니지



진상은 잠든 유리는 내려다봤다. 아무리 봐도, 어디를 봐도, 진실을 많이 닮아 있다. 

진상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한테 사랑을 원했어? 우리 그런 사이 아니였잖아! 그냥 같이 살아 보자, 너나 나나 벗어나고 싶은 사람과 장소에서 벗어나 그냥 살아보기로 한 거였잖아? 그런데 갑자기 무슨 사랑 타령이야? 나는 약속대로 벗어나 너랑 살았지만, 너는 아니였잖아! 넌 벗어자니도 못했고, 그것 때문에 나만 더 고통스럽게 했잖아! 우리 사이에 처음부터 사랑은 아니였잖아!“     


기가 막히다는 듯 너무나도 명백하고 건조하기만 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소리쳤던 진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상은 막 흐르려는 눈물을 손으로 거칠게, 재빨리 닦아 냈다. 유리에게 눈물이라도 흐를까봐 아예 흐르는 눈물을 단호하게 막아 내는 몸짓 같았다.


진상은 유리의 이불을 조심스레 정리해 주고,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불꺼진 방을 나갔다. 밖에서 조용히 문이 닫혔다.                          




거실에 나온 진상은 텅빈 거실과 부엌을 잠시 서서 둘러봤다. 거실 천장에만 간접 조명등이 켜져 있었다. 부엌은 불이 꺼져 있었다.

거실은 소파만 댕그라니 놓여 있고, 한쪽 벽에 벽걸이 TV만 걸려 있었다. 다른 벽들은 뭔가를 걸었던 못 자국만 남아 있고 전부 휑하게 비어 있었다. 

진상은 냉장고 문을 열고 소주 한 병을 꺼냈다. 찬장에서는 소주 잔 한 개를 꺼내 식탁 의자에 앉았다.  거실의 간접 조명만 비추이고 있는 불이 꺼진 부엌 식탁에 앉아 혼자 잔에 소주를 따르고, 혼자 잔을 비웠다.                              





태오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난감했다. 와인 잔만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헛기침을 했다. 진화와 진실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말할 틈을 찾는 눈치기도 했다. 

태오는 눈치만 살피며 자신의 와인 잔에 있는 와인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진화 앞에 놓여 있는 와인 병을 슬며시 손에 들고 다시 자신의 잔에 와인을 따랐다. 

진화는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냐는 표정으로 진실을 대 놓고 뚫어져라 쳐다 보고 있었다. 이미 진실 쪽으로 몸도 틀어져 있었다. 

진화는 속이 타는지 와인잔을 들고 단숨에 마셔 버리더니 와인잔을 탁하고 소리나게 식탁 위에 나려 놓았다. 태오는 조용히 진화의 잔에 와인을 따라 놓았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니? 네가 사랑 없이 결혼을 했었고, 사랑 없이 이혼을 했다?“     


진실은 표정 하나 흔들림이 없었다. 시종 일관 알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진실은 태오나 진화와 다르게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너무나도 덤덤하게 와인잔을 들어 와인 한 모금을 마시더니 그대로 식탁 위에 내려 놓았다. 식탁 의자에 허리를 펴고 기대어 앉더니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 그게 맞아.“     


”맞다고? 그게 맞다고? 그걸 누가 믿어?“     


진화는 기가 막히다는 듯 또 다시 와인 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빈 와인 잔만 식탁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 놨다. 

태오는 또 조용히 와인 병을 들어 진화의 빈 잔에 와인을 따라 놓았다. 자신이 낄 타임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와인을 한 모금, 한 모금 천천히 여유 있게 마시며 진실과 진화를 슬며시 힐끔 거리기만 했다.     


”아니지. 나처럼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사랑이 사라져서 이혼 했다라고 해야지 맞는 거지? 안그래? 안그래요, 형부?“     


진화는 그제야 태오를 쳐다 봤다. 태오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다 목에 걸리 뻔 했다. 입술을 다문 채 반 헛기침을 하듯 킁킁 거려야 했다. 

태오는 ‘내 말이 맞죠? 맞다고 해요, 얼른.’이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진화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꼭 사랑해서 결혼하고 사랑이 식어서 결혼해야 하나, 사랑해도 이혼할 수 있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사랑하지도 않는데 결혼 했고,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이혼한 거라는 진실의 말은 정말 당황스럽긴 했다.

아니, 뭐 재벌가 친구들이나 가끔 결혼도 비즈니스로만 생각하는 친구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긴 하는 거 같다. 하지만 그건 상위층에서 발생하는 그들만의 세계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단 한 자리수의 퍼센트지라고만 생각했다.      


”뭐.“     


태오는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 그런 거겠지? 둘째 처제 말이 맞는 거겠지?“     


태오는 진주가 잠들어 있는 방문을 괜스레 쳐다 봤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 준 적 없던 진주는 자신을 사랑해서 결혼했었던 건지 궁금해졌다. 갑자기, 하필이면 이 타임에 그게 궁금해졌다. 만약에 진실이 했더 말처럼 진주도 사랑 없이 결혼 했고, 사랑이 없었기에 단 한 번의 오해로 단번에 이혼을 해 버린 걸 아니겠지 하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사랑한다고 한 번만 말해 줘봐.“     


진주에게 프로포즈 하며 어린애처럼 응석부리는 태오에게 진주는 딱 한 마디 했었다.     


”결혼한다고 하는 거 보면 몰라? 너랑 결혼하겠다고 대답했음 답은 된 거 아냐?“     


딱 그 한 마디만 했었다. 태오는 그래, 진주라는 여자한테는 낯간지러운 사랑이란 말이 제일 하기 힘들 뿐인 거라고 생각하며 결혼했고, 결혼 생활을 유지 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진실의 대답을 듣고 나니 설마 진주도 저런 생각이었던 거라면 나는 어떡해아 하는 거지 싶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태오는 와인잔을 들어 와인을 들이키더니 잠시 두 눈을 감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닐 거라고, 진주는 그런 건 아니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싶었다.

태오가 혼자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진화는 쟤는 정말 우주인이라는 표정으로 진실을 쳐다 봤다 말다 하며 와인 잔에 연거푸 와인을 따라 마셨다.

진실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와인을 천천히 틀이키고 있었다. 어느새 각자의 생각들에 대화가 없어진 셋의 침묵 사이엔 와인만 남게 됐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와인 병 두 병이 깨끗이 비워지는가 싶더니 또 다시 와인 두 병이 높여졌다. 그리고 그 와인 두 병도 어느 새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태오는 어느 새 조용히 진주의 방으로 들어가 진주가 잠들어 있는 침대 옆 바닥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진화는 거실 소파 위에 발 뻗고 누워 잠들어 있었다.      


진실은 언제 한솔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 건지, 한솔이 잠들어 있는 침대 옆 바닥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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