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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ug 02. 2024

난 사랑한적 없어. 그래서 이혼한거야!

결혼 허락 안해 주면 죽을 거란 기세로, 제일 시끄럽게 결혼한 진실이었다


태오는 침데 위에 진주를 내려 놨다. 그리고 침대 옆에 주저 앉았다. 꽤 힘들었다는 듯 양 어깨를 풀어 주듯 움직여 보였다. 그러더니 지그시 침대 위의 진주를 쳐다 봤다.     


”새로 입사한 에이스 강진주 변호사입니다.“     


처음 동기로 아버지 법률 회사에 입사해 회식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하던 진주의 똑부러진 당당함이 생각났다. 그때는 아무도 태오가 이태상 법률 회사 대표의 아들이란 걸 모를 때였다. 

태오는 그때의 진주 모습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태오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형부 나오세요.“     


밖에서 진화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태오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조심스레 진주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태오는 방 문 앞에 서서 다시 침대 위의 진주를 지그시 쳐다 보더니 방 불을 껐다. 조심스레 방문을 닫아 주고 나갔다.                         




”아빠.“     


잠옷을 갈아 입고 욕실에서 막 나온 한솔이가 젖은 머리를 펄럭거리며 태오에게 뛰어 왔다. 태오는 웃으며 한솔을 두 손으로 번쩍 안아 올렸다.     


”역시 울 아들 이 아빠 닮아서 인물이 훤해. 벌써 씻었어?“     


태오는 금새 장난스럽게 힘든 표정을 지으며 태오를 천천해 내려 놨다.      


”울 아들도 그새 무거워졌네.“     


한솔은 씩 웃어 보이더니 진화가 식탁에 뭔가를 부산하게 차리고 올려 놓는 걸 봤다. 한솔은 태오와 이제 막 욕실에서 나오는 진실에게 ”전 먼저 잘게요.“라고 인사를 하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문을 닫으며 태오에게 윙크도 했다.     


”진실이도 얼른 와 앉아. 형부도 앉으세요.“     


태오는 벽시계를 쳐다 봤다. 밤 12시가 다돼 가고 있었다.      


”이 시간에? 나 집에 안가고?“     


진화는 식탁 의자에 먼저 자리 잡고 앉으며 뭔 소리냐는 듯 태오를 쳐다 봤다. 진화는 두 팔을 벌려 집 안을 가리켰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러세요? 우리 원래 이렇게 새벽까지 잘 마시고 놀지 않았었나요?“     


”그러긴 했지.“     


태오는 망설이다 진화의 맞은 편 자리에 앉으며 손가락으로 진주의 방을 가리켰다.     


”저 분한테 당하기 전에는?“     


진실은 진화랑 태오를 번갈아 쳐다 보며 한솔의 방을 노크 하고는 슬며시 방 안으로 들어 갔다. 방문이 살짝 열려 있었는데 한솔의 잠자리를 챙겨 주는 거 같았다.

진실은 금새 한솔의 방에서 나와 방문을 닫아 주더니 냉장고를 열어서 안을 살폈다.

식탁엔 와인 병 2개랑 마른 안주만 간단한게 차려져 있었다.      


”안주 만들게?“     


진화는 기대하는 반가운 목소리로 진실을 쳐다 봤다. 진실은 내동실과 냉장실에서 부스럭부스럭 몇 개의 재료를 꺼내더니 싱크대 앞으로 다가가 도마와 칼을 꺼냈다. 찬장에서 넓은 프라이팬을 꺼내 인덕션 위에도 올려 놓고 불을 켰다.      


”응.“     


진화는 빠르게 재료를 손질하고 프라이팬이 던져 넣는 걸 잠시 쳐다 보다가 태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나만 빼고 여기 둘 다 당하고 온 거네요?“     


진화는 한 손은 진실을 가리키고, 한 손은 태오를 가리켰다. 태오는 침을 삼키며 진실을 조심스레 쳐다 봤다. 

진화는 와인병을 들고 마개를 따더니 태오의 잔에 먼저 와인을 따라 줬다. 다음으로 태오가 와인병을 건네 받아 진화의 잔에도 따라 주고, 진시의 잔에도 따라 놨다.          


”그래도 당하고 온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서 고마운데? 막내 처제랑 나랑 같이 한 풀이라도 할까?“     


진실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조리를 했다. 태오는 조금 뻘쭘하지만 애써 웃는 얼굴로 진화와 잔을 부딪혀 건배를 했다.     


”형부는 아직도 언니의 손아귀에서 못 벗어 나고 있지만, 글쎄요. 쟤는?“     


진화는 눈짓으로 진실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진실은 어느 새 다 만든 안주를 접시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 놨다. 진화 옆에 자리 잡고 앉아 태오가 따라 놓은 와인을 아무 말 없이 조금 마셨을 뿐이다.     


”아니 왜 다들 내가 아직도 저 분을 뭐, 그런다고 생각하지?“     


”누가 또 뭐라 했어요?“     


”한솔이가!“     


태오는 대답해 놓고 머쓱하고 웃긴지 소리없이 웃었다. 그리고 단숨에 남은 와인을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난 저 분이 무섭거든. 그 누구도 나한테 줄 수 없는 감정을 참 유일하게 많이 주는 분이지.“     


”그게 바로 형부가 언니 손아귀에서 못 벗어나는 이유잖아요? 쓰리도록 인정하기 싫은 사랑을 무서움으로 가장한?“     


진화의 말에 태오는 부정도 긍정도 못한 채 씁쓸하게 웃기만 했다. 그리고 진화가 다시 따라 주는 와인을 받아 들었다.

진화는 금새 와인 병을 건네 받아 자신의 잔에 태오가 따라 주는 와인을 받았다. 그리고 진실의 어깨에 어깨 동무를 했다. 너도 한 마디 하라는 듯 진실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고 쳐다 봤다.      


”울 막내도 그 난리를 치고 결혼했는데, 그 깊은 사랑에 당하고 와서 아무 말이 없는 거야?“     


태오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슬며시 진실과 진화를 힐끔 봤다. 진실은 아무 표정이 없었다. 속을 알 수강 없어 보인다. 진화는 그런 진실의 속이 당연히 아주 큰 상처로 상심해 있다고 생각해 당연한 대답이 나올 거라는 표정으로 위로해 줄 준비를 하는 몸짓이었다. 대답이 나오자마자 꼭 안아줄 기세였다. 그런데 뜻밖의 답이 건조하고 단호하게 들려 왔다.     


”난 사랑 같은 거 안 했어.“     


태오는 와인을 두 모금채 들이키다가 헛기침을 할 뻔 했다. 진화는 뜻밖의 대답에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이냐며 벙찐 얼굴이 돼 진실의 어깨에 둘렀던 팔을 빼냈다. 진화는 진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봤다.     


”사랑 같은 거 안했다니? 우리 세 자매 중에서 네가 제일 목숨 걸 듯 난리치며 결혼 했었잖아.“     


하지만 다시 들려 오는 진실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단호하고,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듯 딱딱하고 건조했다.     

”난 사랑 같은 거 한 적 없어. 사랑 한 적 없었으니까 이혼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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