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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Oct 16. 2024

사랑은 말야

네가 없어서 우리는 웃을  수 있어, 하루하루 사는 게  버겁고 배고파도




너는 사랑을 해 봤니?


아니

대답하지마, 너는

사랑이란 걸 해 봤을 리가

없어


누군가를 사랑하면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주저리 주러리 그냥

떠들게 돼

그런데 너의 입술은 항상

우리를 향해 잠긴 자물쇠처럼

열려 있지 않았어


누군가를 사랑하면

같이 산책을 하고, 같이

외식을 하고, 같이 여행을

하고, 같이 어딘가를 다니고 싶어

그런데 너의 발걸음은

항상 밖으로만 향해 있어서

우리는 너의 발걸음을 따라 잡아본

적이 없어


누군가를 사랑하면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팔짱을 고 걷게 되고, 손이

자꾸 편하게 너에게로 얹어져

그런데 너의 손은

우리에게 너의 온도조차 느끼게

해 준 적이 없어


누군가를 사랑하면

온 몸으로 지켜 주게 돼

그런데 너의 몸은 마른 나무 가지처럼

우리를 지켜 주지 못했어

곧게 자란 튼튼한 나무는 그 자리에

있거든, 그 자리에서 지켜봐 주고

기대게 해 주는데, 너는

우리가 기댈 어깨조차 그

자리에 있어 주지 않았어


우리는 이제 너를 사랑하지

않아, 우리는 우리끼리 우리의

사랑을 껴안고, 맞잡고,

너를 떠난 거야


우리는 이제 너를 사랑하지

않기에, 너와 마주 보고 싶지

않아, 너와 미주알 고주알 얘기

나누고 싶지 않아,

너의 온도가 궁금하지도 않아,

네가 우리를 지켜 주지 않아도

너는 원래 그렇다고, 너는

옆에 있어도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우리는 그렇게 이제 너를

느껴지지 않는 것에 익숙해


너는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어, 절대로, 너는 앞으로도 사랑

같은 건 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우리는 너를 사랑하지

않기로 했어, 우리는 이제

너를 사랑하지 않아


네가 없어서 우리는 웃을

수 있어, 하루하루 사는 게

버겁고 배고파도, 네가 없어서

우리는 편안히 쉴 수 있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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