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쥐어짜듯 조여오는 두통
“언니 괜찮아요?”
“어, 그냥 머리가 너무 지끈거려서.”
희영은 자꾸 미간이 찌푸려졌다. 집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12분 동안 다리가 4번이나 휘청거릴 뻔했다.
“뭐 좀 먹어야 하는 거 아냐? 날씬한 건 좋은데, 내가 언니 여기서 일하면서 먹는 걸 거의 못 봤어.”
“괜찮아, 생리 때문이야.”
매니저는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 해 보이고는 앞치마를 벗어서 걸어 놓고 가방을 챙겼다.
“난 갈게요. 부탁해요.”
“어, 고생했어. 바이.”
매니저가 가 버렸다. 희영 혼자 남은 가게에서 오랜만에 듣는 라디오 DJ 소리만 차분하면서도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희영은 앞치마를 두르고 잠시 의자에 앉았다. 얼굴의 맨 윗부분인 머릿속이 뭔가로 조여오는 느낌이다. 뇌가 희영의 머릿속을 움켜쥐고 쥐여 짜면서 조이는 느낌이다.
고통스럽다. 어젯밤에 가루로 된 타이레놀을 한 봉 뜯어 먹었다.
머릿속을 쥐어짜듯 조이고 조여드는 그 느낌에 옆으로 누워 쪼그린 채 이를 깨물고 아파하다 겨우 새벽에야 잠들었다.
겨우 잠들어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도 그 고통이 가시지 않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정신을 다잡고 아들을 챙겨 먹였다.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버스로 이동해 학교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고 돌아섰다.
그 길로 열이 올라오는 듯 후끈하게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손가락으로 계속 이마 옆을 눌러 가며 가게로 왔다.
아침이다. 밀려드는 손님들로 바빠질 시간이다.
“라떼 따뜻한 걸로 두 잔 주세요.”
“네, 5,800원 결제 하겠습니다.”
희영은 돌아서서 손님에게 안 보이게 미간을 찌푸리고 이를 꾹 다물고 원두 기계에 버튼을 눌렀다. 원두가 윙, 갈아지면서 퍼지는 커피 향이 희영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평소라면 그 커피 향을 향기 있게 느꼈을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거슬렸다. 콧속으로 갑자기 훅 스며 들어오는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커피 원두의 향이 머리를 더 지끈거리게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란 아이스라떼 한 잔이요.”
희영은 재빠르게 따뜻한 라떼 두 잔을 테이크아웃 용기에 담았다. 손님에게 라떼 두잔을 내드리며, 다음 주문을 계산했다.
“끝났어? 바로 학원으로 가. 차 조심하고.”
희영은 아들과 통화하고 가게를 나왔다. 아들이 학교에서 끝날 오후 2시면 오전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이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 바로 아래,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아들이 다니는 학원이 있다. 이제 초등 고학년인 아들은 학교 끝나자마자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학원 두 개 정도는 혼자서 불편하지 않게 갈 수 있다.
희영은 그동안 집으로 가 청소기를 돌리고, 대충 정리를 한 뒤 점심밥을 챙겨 먹고 아들을 픽업하기 위해 또 걷는다. 하루에 만 보 이상은 걷는다. 걸으며 당근 동네 걷기 앱을 꼭 켜 놓는다.
그런데 오늘은 가게에서 걸어서 10분인 집까지 가는 게 버거웠다. 머리는 계속 지끈거리며 희영의 머리를 조이고 있다.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걷고 있는 두 다리가 조금씩, 한 번씩 휘청거리려 한다.
희영은 주변을 둘러보다 프랭크 버거 간판을 본다. 뭐라도 먹어 봐야 할거 같다. 정지된 주 카드를 쓸 수 없게 돼, 부수적으로 대신 사용하고 있는 통장에 10만 원이 겨우 들어 있다. 아들 먹을 거 하나라도 사 주려고 다른 돈을 안 쓰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참을 수가 없다.
희영은 프랭크 버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한다. 손에 힘이 빠진다. 희영은 다시 힘을 주어 문을 밀친다. 문을 밀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 머리 옆쪽을 꾹 누른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가게 안에 사람이 그리 북적이지는 않지만, 손님이 있는 편이다. 희영은 키오스크 앞으로 걸어가 메뉴판을 찬찬히 살핀다. 제일 가격이 싼 버거 세트에 음료를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바꾸었다. 다행히 추가금은 없다.
희영은 다행히 비어 있는 창가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에 앉아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희영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로 옆 벽에 머리를 어깨 한쪽을 기댔다.
두 팔에도 긴장이 풀리는 건지 힘이 빠지는 건지 축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희영은 그대로 창밖을 쳐다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잠시라도 아무 고민이나 걱정도 없이 머리속을 비우고 싶었다.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하는 생리도 그만 끝났으면 싶다. 몸 밖으로 줄줄 새 나가는 피가 희영의 몸속에 그나마 남아 있는 영양분을 빼앗아 가고 있는 거 같다. 한 몸 버티고 나아가기도 버거운 하루하루에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피는 희영을 여자로서 아직 지탱하게 해 주는 의미나 존재의 가치가 아니었다.
“502번 손님 주문하신 거 나왔습니다.”
희영은 두 눈을 탁자 위에 놓인 영수증으로 돌렸다. 502번이다.
영수증을 집어 들고 의자에서 일어서는 희영의 두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풀어진 긴장을 다시 부여해야 했다.
희영은 네모난 은색 쟁반에 담긴 햄버거 세트를 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자니 괜히 열이 올라올 듯 다시금 의영의 머리를 조이며 쥐어 짜고 있는 두통이 심하게 거슬렸다.
희영은 햄버거를 집어 들고 한 입씩 베어 물었다. 이제 막 튀겨서 뜨끈한 감자 튀김도 하나씩 집어 들고 입에 넣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고단백, 고지방 인스턴트였다. 하지만 지금 희영에겐 되도록 싸면서도 되도록 열량이 높은 먹거리가 필요했다.
희영은 한 입, 한 입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찬찬히 입으로 집어넣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길거리에 우산을 든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고 있다.
햄버거가 희영의 입으로 다 사라질 때쯤 희영의 지끈거리고 쥐어짜듯 고통스러운 머리가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희영은 자신을 괴롭히던 두통의 통증이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하는 빗물과 함께 길거리 아래로 사라지는 듯했다. 우산을 들고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 틈으로 저 비를 온 몸에 그대로 맞으며 남은 통증까지 싹 씻겨 내리고 싶다.
희영은 집으로 걸어왔다. 걸어 오는 내내 비로 인해 차가워진 겨울의 찬 바람을 그대로 들이마셨다. 열이 오를 듯 후끈거리는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햄버거 세트를 먹으며 조금 가라앉은 머리의 지끈거림으로 희영은 갑자기 입맛이 돌았다. 햄버거를 다 먹고 멍하니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핸드폰 배달 앱으로 피자를 주문했다. 치킨도 주문했다. 얼큰한 김치찌개도 주문했다.
치킨은 아들 먹으라고 주문해 주며 옆에서 한 조각이라도 먹고 싶은 걸 참았었다. 햄버거 세트를 입안으로 한 입 한입 베어 물며 조금씩 내려앉는 느낌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러면서 갑자기 허기짐이 몰려왔다.
희영이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땐 배달 음식들이 대문 앞에 줄 서듯 놓여 있었다. 희영은 대문을 열어 한 발로 받치고 배달 음식들을 현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식탁 위에 펼쳐진 피자, 치킨, 김치찌개와 서비스로 온 계란말이를 보며 희영은 왠지 울컥했다. 세 달 넘게 식탁 위에 이렇게 펼쳐진 음식들을 쳐다보지 못했다. 하루하루 ‘오늘은 뭐라고 먹일 수 있을까? 그래도 명절인데, 아무리 전화도 안 받고 톡 답을 안하는 부모라도 어린 손자를 위해 먹을 거라도 대문 앞에 놔두고 가 주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아들 앞에서 애써 허기진 배를 감정으로 움켜잡으며 참았다.
그 여파가 생리 중 머릿속을 온통 쥐어짜는 고통으로 다가올지 몰랐다.
“애 데리고 있으면 돈 들어가서 안 된다 했어. 애 봐 주는게 쉽니?”
“우리집 애들은 왜 그래? 정말 지겨워.”
“자식들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아.”
“네 아빠가 협조를 안 해. 네 아빠 때문에 살고 싶지가 않아. 그러니까 버티기 힘들면 죽든지 알아서 해.”
희영은 허탈한 듯 전하던 남동생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려와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희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식탁 위에 있는 치킨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입으로 베어 물며 이 틈으로 스며드는 육즙과 기름이 조금은 뜨겁게 입안을 메웠다.
희영은 다른 한 손으로 피자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입안으로 한 입 우겨넣으며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울고 싶지 않았다. 배를 채우고 싶다. 허기진 배를, 쥐어짜는 듯 조여오는 두통의 고통을 끝내고 싶다.
이제 통장에 3만 원에서 4만 원 밖에 안 남았을 거다. 아들을 먹이기 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라도 당근에서 지원을 눌러야 한다.
다 먹고 하면 된다. 희영의 허기가, 쥐어짜는 듯 지끈거리는 두통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한 입 한 입 베어물고 나서 하면 된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수저로 갑자기 밀려들어가는 느끼함을 달래기 위해 떠먹는 김치찌개의 얼큰함이 속을 뜨끈하게 뎁히고 있다. 우걱우걱 씹어 넘겨지는 오랜만의 기름기가 위장 속으로 꿀꺽꿀꺽 삼켜지며 허기만 가라앉히면 된다. 쥐어짜듯 조여오는 그 두통의 빌어먹을 고통만 가라앉히면 된다.
그러고 나면 통장을 채울 노동의 시간을 다시 견디게 될 거다.
허기짐으로 비워졌던,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그 붉은 피들로 다이어트하게 했던 통장의 가벼움을 다시 채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희영은 채워야 한다. 위장에 텅 비워져 있던 기름짐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흘러 들어가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