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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천붕지통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by O Ri 작가


박형사는 식탁 위를 손으로 뒤적였다. 관리비 독촉장, 건강보험료 독촉장, 보험료 실효 예정 통지서, 등이었다.

박형사는 ‘그럼, 그렇지.’ 싶었다. 강형사가 들어 왔다.


“뭐에요?”


“뭐겠냐?”


강형사는 독촉장들을 뒤적여 보이더니 ‘에휴.’ 했다.


“뭐래들?”


“뭐, 일자리 구하려고 되게 애썼나 봐요. 애라면 아주 끔찍했다더라고요. 사람은 괜찮았나 봐요. 애도 착하고. 부모님은 돈 얘기 때문에 불편해 연락 안 한 지, 뭐 몇 달 됐나 보더라고요. 문자는 몇 번 왔었는데 답장도 안 하셨대요.”


박형사는 거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굉장히 깔끔한 성격으로 보인다. 인테리어 리모델링도 하나 안 된 방 두 개짜리 집에 월세로 살면서 매일 청소를 해댄 거 같다.

거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박형사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비밀번호도 해지해 놓은 거 같다. 연속으로 울리는 문자들이 전부 카드 갑과 대출 독톡 메시지인 것 같았다.

박형사는 침대 방으로 들어갔다.

피를 흘리고 있다. 정유의 손이 지연의 손으로 꼭 쥐어져 있다. 정유 몸 위로 엎드린 채 누워 있는 지연의 얼굴이 눈물 자국이 얼룩덜룩하다.

침대 시트에 핏물이 퍼져 있다. 정유의 가슴과 배를 지연이 그 위에 엎드린 채 껴안다시피 하고 있다.

접이식 과도는 칼날에 피가 묻은 채 침대 밑에 떨어져 있다.


“야, 넘겨. 가족들 장례식이라도 해 주라고. 나올 것도 없어 보이는데.”


박형사는 큰 소리로 거실에 대고 말했다.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지연과 정유를 보는데 형준이가 생각나는 건 왠지 모르겠다. 씁쓸하고 안쓰러운데, 슬퍼지려는 얼굴을 애써 감추는 표정이다.





승기는 눈물이 흘렀다. 지연이 힘들다고 했었다. 배고프다고 했었다. 도와줄 형편이 안 돼 서로 톡 주고받으며 제발 잘 버텨 주기 바랬다. 핸드폰 발신이 다 정지된 상태라 수신이 끊기지 않길 바라며 연락은 돼야지 했었다.

엄마는 지아빠 닮아 꼴 보기 싫다며, 4년째 연락 끊고 산 지연의 모습을 영정 사진으로 이제야 본다. 솔직히 지연이 아빠를 완전 빼닮지 않았다. 승기는 거의 엄마의 성향을 많이 닮았지만, 지연은 엄마 반, 아빠 반, 그리고 3분의 1은 지연다운 곳이 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지연을 아빠 닮았다며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구박했다.

영정 사진에서 지연은 웃고 있었다. 정유도 웃고 있었다. 이제 초등 고학년인 정유다. 정유라면 끔찍하기만 한 지연이 정유가 굶는 모습에, 정유를 고생시키는 자신의 모습에 얼마나 절망하고 스스로를 비난했을지 안 봐도 안다.

아빠는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지연의 결혼식 때도 아무도 안 우는데 혼자 눈물을 흘리던 사람이 이젠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승기는 아이들 문제로 서울로 이사를 했지만, 지연은 여전히 엄마 아빠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40년을 산 동네다.

사람들이 은근 숙덕거리며 다녀간 뒤 장례식장은 한가해졌다. 엄마는 멍하니 앉아 있고, 아빠는 테이블 앞에 앉더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아무 말 없이 앉아서 당연하다는 듯이 입으로 떠 넣었다.

승기는 맞은편에 앉아 소주병을 땄다. 속이 불편해서 음식은 넘어가지도 않을 거 같았다.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 한 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아무 말 없이 밥을 퍼먹는 아빠의 모습에 속이 울렁거리며 승기의 두눈이 촉촉해졌다.


“맛있어?”


아빠는 대답이 없다. 승기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맛있냐고?”


아예 대답을 안 하기로 작정한 거 같다. 쳐다보지 않기로 작정한 거 같다. 승기는 소주잔에 다시 소주를 가득 따라서 한 번에 입으로 털어 넣었다.

빈속이 뜨끈 거리고, 따끔거리면서 왠지 화가 났다. 왠지 부화가 치민다. 아무도 원망하면 안 되는데, 아무도 원망하고 싶지 않은데 지연과 정유의 영정 사진을 보니 원망이 된다.

승기는 들고 있는 소주잔에 힘을 주었다. 있는 힘껏 힘을 주며 집어 던졌다.


“그러게 좀 도와주지 그랬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팔려고 내놓은 거 있으니까 빌려달라는 건데 뭘 그리 꽉 쥐고 앉아서 외면했어. 누나가 언제 아쉬운 소리 잘하는 사람이야? 나나 하지. 그 새끼 땜 빚 떠안고 겨우겨우 빈도 반 이하로 줄여 놓고, 이혼하면서 누나 돈 뺏어가 사업한답시고 그 새끼랑 놀아나는 사람들이랑 아빠가 뭐가 달라? 그 새끼 낯짝이 어찌나 두껍고 뻔뻔한지, 끝까지 지밖에 모르고 판사한테도 날뛰는데, 그 개새끼 때문에, 끝까지 힘들었던 누나잖아. 정유밖에 모르는 누나, 살고 싶어서 진짜 발버둥 친 거는 알아? 이제 시원해? 나도 죽어 줄까? 사업 망해서 빌빌대는 나도 죽어 줄까? 그래야 아빠 마음이 편하지?”


승기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끝까지 밥그릇과 국그릇을 싹싹 비우더니 아무 말 없이 일어났다. 지연과 정유의 영정 사진을 눈물은 안 흘려도, 멍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벽에 기대앉은 엄마 옆에 앉았다. 아빠는 엄마 옆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허리를 꽂꽂이 벽에 기대듯 앉아 덤덤하게 영정 사진을 올려다 본다.

승기는 썩소를 지었다. 고생 없이 키워 준 부모다. 내가 못나서겠지, 내가 부족한 탓이겠지, 아무도 원망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그랬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

다시 조문객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있다.

승기는 벽시계를 쳐다봤다. 두 눈이 살짝 충혈돼 있다. 밤 12시가 넘어서고 있다. 조문객들도 다 가고 장례식장은 조용해지고 있다.


“저기요. 저, 저기, 저분들이 뭘 먹고 있어요.”


부엌에 혼자 남아 있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얼굴색이 파래져서 들어왔다. 아주머니는 손가락으로 영정 사진 쪽을 가리키고 있다. 영정 사진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파르르 떨리고 있다.

승기는 벌떡 일어나 혼이 나간 얼굴이 돼 식당으로 갔다. 아빠는 아주머니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식당으로 갔다. 멍하니 앉아 있던 엄마까지 승기 뒤를 따라, 대체 무슨 일이냐는 듯 식당 안을 쳐다봤다.

다들 숨이 멎었다.

시체처럼 창백하고 마를 대로 마른 초췌한 모습의 지연과 정유가 테이블에 앉아서 걸신들린 듯이 먹고 있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나를 물려 그러더라고요. 무슨 귀신 같기도 하고, 요괴 같기도 하고, 아휴, 망측해라.”


뒤에 슬금슬금 다가와 몸을 숨기듯 서 있는 아주머니가 몸서리를 쳤다. 승기와 아빠와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벙하게 서 있는데, 아주머니가 몸서리를 치면서도 앞으로 슬며시 나왔다.

아주머니는 승기랑 아빠랑 엄마에게 보라는 듯, 걸신들린 듯 먹고 있는 정유와 지연에게 아주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갔다. 아주머니는 보란 듯이 승기와 아빠랑 엄마 쪽을 힐끗 쳐다보며 한 손을 아주 조심스럽게 음식에 갖다 대려 했다. 그때 걸신들린 듯이 먹고 있던 지연과 정유가 날카로운 이를 꼭 영화에 나오는 악귀처럼 드러내며 아주머니의 손을 깨물려 했다.


“손대지 마. 우리 거야. 배고파. 춥고 배고프다고.”


지연과 정유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울렸다.

아주머니는 봤냐는 듯 승기와 아빠와 엄마 쪽을 치를 떠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손이 물리기 전에 얼른 손을 빼더니 몸서리를 치며 식당을 뛰어나갔다.

엄마는 멍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승기는 정신을 차려 보려고 머리를 흔들고, 두 눈을 비볐다. 엄마 옆으로 가 무릎을 구부리고 엄마를 겨우 일으켜 의자에 앉혔다.

갑자기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승기는 천장을 쳐다봤다.

아빠는 표정 변화도 없이 지연이랑 정유 쪽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움직임도 없는 거 같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는 표정이다.

승기는 아빠는 혼자 알아서 하겠지 싶어, 지연과 정유 쪽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걸신들린 입안으로 쉼 없이 집어넣으며 씹어 넘기는데 배가 부르지 않아 보였다. 목이 마르지도 않은 거 같다.

승기가 다가가다 흠칫 멈췄다. 갑자기 고개를 돌린 지연이 승기를 노려보고 있다. 그 눈빛은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텅 빈 공백에 살기만 가득 들어 있는 눈빛이었다. 승기는 더 이상 다가가기가 두려웠다. 자신이 항상 누나라고 생각했던 그 누나의 얼굴이 아니었다. 음식을 문 입을 벌리고 내는 으르렁 소리도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영화에나 나오는 좀비의 으르렁 소리 같았다.

승기는 잠시 가만히 쳐다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 뺐다. 그때 승기 옆으로 누군가가 지나갔다. 승기 옆을 휙 지나서 지윤의 앞에 서더니 지윤의 따귀를 때렸다.


“정신 차려. 정신 차려. 그렇게 먹으면 탈 나.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어야지.”


아빠였다. 호통치는 아빠의 목소리가 뭔가를 붙들고 버티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처럼 굵고 절망스럽게 울렸다. 지윤은 바로 아빠의 손가락을 물어 뜯었다. 아빠의 몸으로 달려들려는 걸 승기가 얼른 아빠를 뒤쪽으로 밀었다.

지윤은 음식 앞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거 같았다. 정유도 입에 음식을 가득 문 채 뒤돌아봤다.

천장에서 갑자기 깜빡이던 형광등이 팍 소리를 내며 터졌다. 엄마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 엄마 건들지 마.”


허공에 흩어지듯 퍼지는 정유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흩어졌다.

아빠는 주저 앉았다. 아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꺼이꺼이, 흐느끼더니 무겁고 둔탁한 울부짖음이 됐다.

승기는 그렇게 우는 아빠의 모습을 처음 봤다. 속에서 참고 있던 무언가가 터져 버린 듯 울부짖고 있었다. 혼자 뭐라고 말도 하는 거 같은데 울부짖음 때문에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윤과 정유는 두 손에 든 음식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울부짖는 아빠를 쪼그리고 앉아 노려보더니 서로 쳐다보며 눈짓했다.

천장에 깜빡거리고 있던 나머지 형광 불이 팍 소리를 내며 한꺼번에 터졌다. 동시에 지윤과 정유는 사라지고 없었다. 옆 장례식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어느새 와서 엿보고 있었다.

아빠는 움직임도 없이 바닥에 주저않아 울부짖고 있다.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커다란 괴물이 어둡고 텅 빈 숲속에서 혼자 울부짖는 것처럼, 그렇게 무겁고 둔탁하게 울부짖고 있다.

승기는 지윤과 정유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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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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