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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별이 아니어도.

실낱 같은 그 희망 하나로 애써 울먹이는 맘, 타일러 가면서

by O Ri 작가


“하, 여기서 제일 날씬한 년이 왜 이리 무거운 거야?”


성미와 고은은 축 늘어진 정연의 몸을 땅바닥에 겨우 눕혔다. 둘도 헉헉대며 그 옆에 드러누워 버렸다. 밤하늘을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본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별도 거의 보이지 않는 거 같다.


“물에 젖었잖아. 온몸이 물에 젖은 애를 들쳐업고 저길 걸어 왔는데 그럼 안 무겁겠냐?”


성미와 고은은 킥킥거리고 웃었다. 웃기지도 않는데 그저 이 상황이 우스워서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을 상황이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살려 놓고 나니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웃음이 나왔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 때론 기적 같은 말 / 사랑, 마른 땅에 피는 꽃 / 지나서야 하는 말 / 달빛 울음 같은 말 / 손에 닿지 않아 믿기 힘든 말 / 그 말이 우릴 여기까지 데려왔죠.”


창문을 다 열어 놓은 펜션 안에서 흘러나오는 TV에서의 노랫소리가 밤하늘과 겹쳤다. 두 눈으로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두 귀로 흘러 들어오는 노랫소리는 왜 또 지랄같이 감미로운지 알 수 없다.


“사랑이 우릴 여기까지 데려온 건가? 누구지?”


성미는 누운 채로 고개를 뒤로 깍듯이 넘기더니 펜션 거실에 틀어져 있는 TV 화면을 쳐다봤다.


“참 크게도 틀어 놓고 나갔었네, 저렇게 큰데 다들 잠들었다고?”


“어, 신승훈이다.”


성미와 고은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신승훈이었다.


“살아 있네?”


고은은 성미의 어깨를 자신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럼 죽었겠냐? 무슨 미친 소리야?”


성미는 괜히 두 손으로 자신의 옷을 초라하게 느껴지는 표정으로 매만졌다. 그리고 괜히 옆에 축 늘어져서 눕혀 놓은 정연과 그 옆에서 노래 음을 허밍으로 조용히 따라 해 보고 있는 고은의 모습을 훑어봤다.

학교 다닐 때, 아이들 앞에서 신승훈 노래를 열창 했던 고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은도 노래를 곧잘 잘하는 편이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수업이 지루해지거나, 시간이 남거나, 특활 활동 시간에 고은을 앞에 세우곤 했다. “노래해. 노래해.”를 다 함께 외치면 고은은 못 이기는 척하며 신승훈 노래를 열창해 주곤 했다. 부드럽고 감성적으로 울려퍼지는 고은의 목소리가 그때는 멋있었다.

그때는 그랬는데, 성미는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쟤네들은 왜 저 나이에도 빛나냐? 내 나이 마흔이 넘었지만, 쟤네들보다 10살이나 12살이 어린데도 후줄근한데.”


고은은 피식 웃었다.


“그러네. 우리도 어릴 땐 저들처럼 참 꿈이 컸는데. 뭐했다니 여태, 쟤들은 나이 오십 넘고 육십에도 빛나는데.”


고은은 또다시 피식 웃었다. 괜스레 씁쓸한 표정으로 온몸이 물에 푹 젖어 혼절해 눕혀져 있는 정연을 내려다봤다.

정말 열정적인 아이였다. 생각도 많고, 글도 잘 쓰고, 목소리도 예뻐서 성우나 아나운서 해도 되겠다 싶었었다. 하지만 정연의 꿈은 작가였다. 유명한 작가가 돼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머물고 싶다고 했었다. 왜 하필이면 사랑이냐고 물었었다. 정연은 사랑이 사람의 모든 걸 다 담고 있다고 했었다. 설렘, 서로를 향한 미소, 일상에 대한 희망, 위로, 버티게 하는 힘, 매달림, 갈구, 집착, 살고 싶어지는 끈, 지킴, 눈물, 포옹, 욕망, 질투, 경험, 추억, 선물, 삶의 빛과 그늘, 갈등, 증오, 행복, 울분, 익숙함, 지겨움 등 사랑에 인생과 인간의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다고 했었다.

고은은 정연 때문에 처음 알았었다. 사랑이란 것에 그렇게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걸.

그런데 오랜만에 TV에서 들려오는 신승훈의 노래 가사에서 사랑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가. 사랑이 우리를 이 나이까지, 여기까지 데리고 와 살고 있음을 알게 해 주는 걸까.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이든 끝까지 살아봐야 함을 깨닫게 해 주는 걸까.

성미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성미는 핸드폰 모니터를 고은에게 일부러 보여줬다. 발신자가 ‘무슨 말이 필요하니? 이 웬수야’였다.

고은은 어이가 없어서 또 다시 피식 웃었다.


“어, 왜? 남편아?”


“술 마셨어?”


“아니, 시작도 못 했다. 왜? 애들은 재웠어?”


성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옆에 눕혀 놓은 정연을 내려다봤다. 살짝 입맛도 다셨다. 그러고 보니 시원하게 한 잔이 간절한 듯 보였다. 고은은 옆에서 쳐다보고 있다가 무겁게 몸을 일으켜 활짝 열려 있는 창문틀을 넘어 펜션 거실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귀찮은 듯 했다.


“애들이 엄마들 얼굴 보고 자면 안 되냐고 해서.”


“봐? 뭘 봐. 그냥 재워. 정연이는 씻고 있어. 화장실 갔다고. 고은이는 잠간 편의점 갔어. 나 혼자 있다고. 그냥 얼른 재워. 내일 아침에 영상 통화 하자고 하고. 끊어.”


성미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고은이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두 팔로 한 아름 안고 온 캔 맥주를 내려놨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를 집어 들었다. 냉하게 차가워진 맥주 캔을 따서 성미의 입술 앞에 갖다 댔다. 성미는 냉큼 받아 들고 쭉 들이켰다. 살 거 같았다. 뭔가 가슴 속을 시원하게 쓸어내리는 느낌이었다.


“이게 사랑이지. 안 그러냐?”


성미의 말에 고은은 미소를 지으며 성미의 캔에 자신의 캔을 살짝 부딪혀 보이며 혼자 건배를 외쳤다.

누워 있는 정연이 켁켁거렸다. 목에서 시원하게 내뱉지 못하는 기침을 어거지로 토해 내고 있는 듯 괴로워했다. 고은은 두 손으로 정연을 옆으로 밀어 눕히고 등을 탁탁 쳐줬다.

졍연은 켁켁대며 괴로워하더니 힘겹게 눈을 떴다. 두 눈에 제일 처음 담기는 밤하늘이 정연에게 잠시 어둠을 덮어 주었나 보다. 두 눈이 촉촉해지며 꼭 감는데 그 사이로 눈물이 새어 나왔다. 정연이 다시 두 눈을 뜨는데, 옆에 앉아 있는 고은과 성미가 보였다.

정연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 봤다.


“나 왜 여깄어? 나 왜 살았어?”


성미와 고은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동시에 정연을 쳐다봤다. 고은은 조용히 맥주 캔을 하나 따서 졍연의 얼굴 앞에 갖다 댔다. 정연은 가만히 받아 들었다.


“마셔. 네 아들 생각하면서 그냥 마시고 정신 차려.”


성미는 다 마신 캔을 한 손으로 구겨서 내려놓더니 다시 캔 하나를 따서 답답하다는 듯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부모님이 홧김에 죽으라고 했다고 진짜 죽으려 한 거야? 네 아들은? 야, 이 미친년아. 물에는 왜 걸어 들어가냐?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배고파도 그렇지. 너 하나 죽으면 다 끝나냐?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우리 같은 사람들. 그냥 뭐, 이렇게 후줄근하게 사는 거지. 빛나고 싶어도 빛날 수 없는 인생이어도 그냥 사는 거잖아. 혼자가 아니니까 그냥 살아야지 어쩌냐?”


성미는 다 마신 캔을 또 한 손으로 찌그러트려서 답답하고 화딱지 난다는 듯 소리 내며 내려놓았다. 새로 한 캔을 다시 집어 들고 바로 따더니 또다시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마시다가 숨이 차는지 잠시 내려놓고 숨을 골랐다.

정연은 받아 들고 멍하니 내려다만 보고 있던 맥주 캔을 그제야 입에 갖다 댔다. 천천히 들이마시는데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맥주를 마시는 건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삼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성미는 속상하다는 듯 촉촉해지려는 두 눈에 힘을 주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음악 앱에 들어가 신승훈을 검색했다. 아까 TV에서 흘러나왔던 신곡을 찾아 크게 틀었다.

고은은 한 쪽 팔을 정연의 어깨에 올리고 토닥여줬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 때론 기적 같은 말 / 사랑, 마른 땅에 피는 꽃 / 지나서야 하는 말 / 달빛 울음 같은 말 / 손에 닿지 않아 믿기 힘든 말 / 그 말이 우릴 여기까지 데려왔죠.”


신승훈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펜션 마당에 그 목소리가 너무도 감미롭고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고은은 조용하게 허밍으로 그 음을 따라 했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 각자의 꿈으로 모여 앉아 있던 그때의 모습을 일부러 떠올렸다. 그때는 우리도 빛났었다.

고은은 그때의 모습 속에 지금 나이 오십에도, 나이 육십에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별처럼 빛나는 신승훈의 모습처럼 꿈을 이룬 모습을 덧입혀 봤다. 꿈을 이룬 모습으로 셋이 도시의 길거리를 당당하게 함께 걷는 모습을 떠올려봤다. 하지만 금세 그 모습을 구름처럼 흩어져서 다시 지금의 옷차림과 지금의 모습으로 변해 걷고 있었다.

그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은은 새어 나오는 웃음 속에 두 눈에 눈물 줄기를 뺨으로 흘려내리며 눈물을 흘리며 다 마신 맥주 캔을 두 손으로 쥐고 있는 정연을 두 팔로 껴안았다.


“우리 다시 해 볼까? 늦었지만 우리 미쳤다 치고 그냥 다시 해 볼까? 우리도 빛날 수 있는지, 그냥 미쳤다 치고 다시 해 보자. 그리고 일단 살자. 내가 널 못 보내겠으니까 빛나지는 않아도 그냥 살아보자. 응?”


성미도 정연과 고은을 두 팔을 크게 벌려 껴안았다.


“안 빛나면 어때 뭐. 사랑이라잖아. 사랑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잖아. 이 나이에 힘든 순간이 정말 지겹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지만, 뭐 어쩌겠어. 여기까지도 살았잖아. 지긋지긋하고, 후줄근해도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더 가는거지 뭐.”


“실낱 같은 그 희망 하나로 / 평범한 하룰 보내 / 애써 울먹이는 맘, 타일러 가면서”


밤하늘 아래서, 고은과 성미는 정연을 꼭 끌어안고 노랫소리에 눈물을 묻고 있다. 밤하늘 아래서 크게 틀어 놓은 노랫소리에 자신들의 울음소리를 잠시 묻고 있다.








와이파이가 끊겨 노트북을 못 쓰게 되기 전에 단편 소설 하나라도 더 써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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