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보였다. 나는 눈이 부셨다. 꿈일까? 현실일까?
"아이라도 잠시 가 있으면 안될까요?"
아빠의 표정은 그늘진 채 굳어 있다.
이를 악물고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애원하고 있는 유진의 마지막 매달림이었다. 두 눈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아내고 주저 앉을 듯 간절해 보였다. 몇 달 동안의 굶주림과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아이만은 어떻게든 먹이며 버텨온 시간 때문인지 얼굴은 이미 반쪽이다.
"힘들겠다. 네 엄마가 허락 하겠니. 미안하다."
유진은 그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안 그래도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 무너질 대로 무너져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두 개의 카드사에 연체 된 금액이 각각 50만원씩이다. 대출 회사의 연체는 금융 기관에 공개되기 직전이다. 핸드폰은 이제 다 끊기게 생겼다. 유진의 명의로 다시는 통신사 가입도, 개통도 힘들거라고 했다.
카드사들은 외부 업체로 일을 이관 시키며 압류에 들어갈 거라고 했다. 너무 애를 먹이는 빌라는 팔리지도 않고, 정부의 계속 되는 부동산 대책 때문에 그나마 희망이었던 매매도 살 길을 열어 주지 못하고 있다.
집을 비워줘야 하는 날은 3주도 안남았다. 갈 곳이 없다. 정말이지 길 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아이라도, 아이라도 가까운 부모님 댁에 맡기고 싶었다. 몇 달 동안의 굶주림과 고통 속에 있는 딸과 손자가 불편한지 연락을 하지 않으셨다. 찾아와 보지도 않으셨다. 들여다 보는 거 자체가 걸끄러우신 거 같았다.
유진도 눈치 껏 연락하지 않았다.
이혼 하는 순간에도 주택 담보다, 상대가 긁어 놓은 현금 서비스에 할부다, 본인의 사업 전화 위약금에, 본인이 계약해 놓은 에어컨 할부 상조 가입에, 2억 가까이 되는 빚을 떠안아야 했다.
법적 정리후 1년 동안 정말이지 열심히 그 빚들을 겨우 4천 얼마만 남게 만들어 놓은 건데, 항상 후회한다. 재판까지 갔으면 재산 분할은 커녕 위자료 받고 끝나야 하는 소송이었다. 아이랑 살 길만 있었음 재판까지 갔어야하는 싸움이었다.
"알겠습니다. 알아서 할게요."
유진은 더는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아이만이라도 좀 맡길 수 있을까 싶었던 마지막 절망감으로 매달린 거였다.
"혹시 있잖아. 힘들면 잠시 아빠한테 가 있을까?"
"싫어, 절대 싫어."
유진은 아이 만이라도 길거리에 나앉는 걸 막기 위해 정말 힘들게 어렵게 꺼내본 얘기였다. 정말 힘들게 상처 받으며 이혼한 그 놈에게 아이를 보내볼까 하는 생각 자체가 유진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유진은 아이랑 떨어져서 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에게도 그것만은 너무 받아들이기 힘든가 보다.
유진도 솔직히 보내기 싫었다.
아이가 물건도 아니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게 하는 짓은 처음부터 안 한다고 다짐 했었다.
그 놈이 아이에게 어느 정도 맞춰 주고 아이의 감정을 쓰다듬어 가며 케어할리 없다. 모든 게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 방식대로만 상대를 힘들게 했던 놈이다. 오죽하면 아이가 이 상황에도 그 놈한테는 절대 가기 싫다고 저럴까.
남동생 입에서는 유진을 더더욱 무너뜨리는 단어가 나오고 말았다.
"그 놈한테 보내는 게 싫으면 고아원 알아 보는 건 어때? 지금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까. 아이라도 살리려면"
유진은 그 단어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날카롭고 뾰족한 무언가가 가슴 안을 다 할퀴며 상처 내고 있는 듯 아팠다.
어떻게든 지켜 보려고, 살아 보려고 계속 이력서를 내고 있었다. 처음으로 당근 앱을 통해서도 지원하고 있다. 전세자가 있는 빌라도 직접 게재해 놨다. 뭐든 해결책을 찾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하루하루 이건 죽느니만 못하다, 이렇게는 도저히 더는 못 살겠다 싶으면서도 그래도 아이를 위해 있는 힘껏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고아원이란 단어 다시는 입에 올리지마."
유진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상황상, 나름 생각해서 한 말이겠지 싶으면서도 가족들의 거절과 가족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에 더는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아무 해결책도 찾지 못하는 길목에서 이렇게까지 버텨야하나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십번은 들었다.
유진은 길거리 한가운데서 멍하게 섰다. 텅빈 눈빛으로 아파트와 신축 오피스텔 건물들이 상가들과 함께 즐비하게 서 있는 거리를 둘러봤다. 도시에서만 자라온 유진에게 이제 도시의 한 복판이 잔인하게만 보였다.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도록 차가울 수 있을까 싶다. 그냥 이대로 쓰러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지쳐 보인다.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유진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데리고 학교 앞으로 걸어갔다. 아이를 데려와야 한다. 유진이 학교 앞으로 시간 맞춰 가지 않으면 아이가 신경쓸 거다.
"오늘은 어땠어?"
"재밌었어. 엄마 오늘은 아이스티 마실 수 있어?"
아이는 학교 끝나고 유진과 정류장 앞 카페에서 아이스티 한 잔을 먹고 버스를 타는 걸 좋아했다. 유진은 아이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주머니 안에 넣어진 손을 꼼지락거렸다. 다행히 오천원 조금 넘게 들어 있다.
유진은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만 삼키며 아이에게 아이스티를 사주었다. 아이가 시원하게 빨대로 빨아 들이는 아이스 티를 보며 그나마 감사했다.
집에 돌아와 아이는 습관처럼 씻고 소파에 편하게 발을 뻗고 앉았다. 친구가 아이의 핸드폰 비를 내주어서 아이는 다행히 하교 후 친구들과 통화도 하고, 같이 게임을 즐기곤 했다. 학원을 전부 끊고 안 다닌지 세달 째라 유진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미안하기만 했다. 엄마로서 자꾸 미안해야하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스럽고, 거울을 쳐다보는 것조차 점점 버거웠다.
유진은 실내복으로 갈아 입고 텅빈 공간이 점점 늘어가는 허전한 집안을 둘러봤다. 아이라도 하루 세까 꼬박 먹이기 위해 이것저것 내다 팔았다. 공기 청정기, 건조기, 아이가 이제 안쓰는 물건들, 선풍기 그리고 더 팔려고 가방에 담고 어설프게라도 포장해 놓은 현관 앞의 물품들.
살려고 죽어라 발버둥치면 길이 열리고 살아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진은 갑자기 밀려 오는 피로감에 아들 발 아래 쪽 소파에 두 다리를 바깥쪽으로 걸치고 누웠다. 몇 일 째 새벽마다 잠이 들지않았다. 이제는 새벽마다 잠들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속상해하고 화나 하는 친한 지인에게는 쓴소리를 결국 들어야 했다.
"그러게 너는 미련하게, 너도 힘들면서 부모님 돈을 왜 빚을 내서라도 갚는 건데. 그런다고 너 배고프고 힘들고 아이 아파지면 누가 알아줘? 부모님이 그 돈 안 갚는다고 생활에 지장 생기거나 집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왜 너는 다른 형제들처럼 그냥 나중에 안정 잡으면 갚는다고 안하고 미련하게 빚을 내서라도 갚아 갚길. 부모잖아. 그러니까 너한테는 네가 힘든데도 아파트 싸게 줬으니 빨리 갚으라 재촉, 좀만 마음에 안 들면 돈 다 안 갚았으니 아직 네 집 아니니까 나가라고 갑질을 하시질 않나. 돈을 그렇게 빚을 져서라도 따박따박 갚는데도 , 팔아서 갚을 거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데도 이 극한 상황에 모른척 하시자나. 인간은 원래 다 이기적이야. 자기 살길, 자기 이익부터 챙긴다고. 제발 정신차려."
유진은 잠이 들었다. 두 눈꺼풀이 더는 유진을 깨어 있게 하기 싫은지 너무나도 무거웠다.
"일어나. 그만 일어나야지."
유진은 얇게 울리는, 노래 소리 같은 목소리에 어렴풋이 잠이 깼다.
"일어나. 나를 봐봐."
유진은 아이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어느 새 잠들어 있었다. 시계를 보려고 상체를 일으키는데 앞에 누가 서 있다. 아니 서 있는게 아니라 얇고 작은 두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은채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지으며 유진을 쳐다보고 있다. 귀여웠다. 큰 두 눈에 얇고 색상이 밝은 캐주얼 정장을 입고 있는, 140cm 정도 되는 키의 마른 여자 아이였다.
"누구니?"
"나는 땅 위에도 있고 땅속에도 있고, 하늘에도 있고, 하늘 아래에도 있지. 한국에도 있고, 유럽 어디에나 있고, 아시아 어디에나 있는 너의 영혼의 소망이자 꿈."
"나의 영혼의 소망이자 꿈?"
유진은 머리 속이 하애졌다. 무슨 소린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두 손으로 두 눈을 비비적 거려봤다. 다시 눈을 떠도 그 여자 아이는 유진의 눈 앞에서 유진을 똑바로 쳐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잠에서 덜깬 건가 싶다. 유진은 다시 누웠다. 아무래도 잠을 더 자야할 거 같았다.
"일어나. 그만 일어나고 나를 봐. 꿈이든 현실이든 지금 네 눈에 보이는 내가 있는 건 맞잖아? 그러니까 그만 일어나. 네가 너무 힘들어해서 나온 거라고. 네가 나 부른 거야."
유진은 누우려다 별 수 없이 다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 여자 아이를 뚝바로 뚫어져랴 쳐다봤다. 유진의 눈에 분명히 보이는 건 사실이다.
유진은 손을 뻗어봤다. 그 여자아이의 옷깃이 만져졌다. 촉감이 느껴졌다. 유진은 '뭐지?' 싶어 얼른 손을 떼고 여자 아이를 쳐다봤다.
여자아이는 재밌다는 듯 연신 미소를 짓고 있다.
"지금 너한테 제일 필요한게 뭐야? 왜 그렇게 죽고 싶어해?"
유진은 그동안 참았던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한숨과 동시에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유진의 한 손은 자신도 모르게 옆에 누워 잠들어 있는 아이의 두 발은 감싸 쥐고 있다.
"배고프고, 힘들고, 하루하루가 지치고 살고 싶은데 사는 게 더 힘들어서."
"그래서 너한테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뭐야? 두 가지만 말해 줄래?"
"돈이랑 집."
여자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 눈빛으로 진지해져서 유진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잠시 유진과 여자 아이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유진은 그 여자 아이의 모습이 꿈인지 현실이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여자 아이는 유진의 그런 표정은 개의치 않았다. 이해하는 듯 했다.
여자 아이는 한참 유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알았다는 듯 다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너 지금 살고 싶지는 않겠다. 너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니."
여자 아이는 유진 옆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쳐다봤다. 아이의 두 발을 감싸 쥐고 있는 유진의 손도 쳐다봤다.
여자 아이는 이제 됐다는 듯 유진을 다시 미소 지으며 쳐다봤다. 그리고 자신의 두 손을 유진의 어깨에 살짝 얹었다.
"지키느라 고생했네. 인간은 다 이기적이던데. 이렇게 힘든데도 너는 지키려고 애를 쓰는구나."
여자 아이는 유진으 두 어깨를 토닥여 줬다. 유진은 갑자기 참았던 오열이 터져 나왔다. 쉽사리 멈추어질 거 같지 않은 오열이 힘들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자, 다시 누워. 누워서 한숨 자. 자고 일어나면 네가 원하는 두 가지가 네 앞에 있을 거야. 그러니 이제 그만 힘들어 해도 돼."
여자 아이는 조심스럽게 유진의 두 어깨를 감싸 쥐고 유진을 다시 소파에 눕혔다. 여자 아이는 유진이 오열하다 잠들때까지 유진을 토닥여줬다. 유진의 반쪽이 된 얼굴이 여자 아이의 마음을 왠지 모르게 슬프게 했다.
여자 아이는 유진이 잠들자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엄마, 엄마 일어나봐. 응? 엄마 얼른 일어나봐. 여기 어디야?"
유진은 살짝 두통이 느껴지는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 쥐며 일어났다. 아이가 유진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유진은 너무 잠을 많이 잤나 싶게 머리에 살짝 두통이 느껴지면서 무거웠다.
"엄마 여기 누구 집이야?"
유진은 아이의 목소리에 두 눈을 겨우 떴다. 텅빈 집이었다. 유진과 아이가 머물던 그 집이 아니라 다른 집이었다.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새집 같았다.
유진은 바닥에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창밖을 봤다. 익숙한 거리였다. 유진은 방안으로 뛰듯이 들어가 다른 쪽 창문도 내다봤다. 유진과 아이가 머물던 집이 있던 건물이 맞은 편에 보였다.
유진은 멍했다. 아이가 유진에게 달려와 유진의 팔을 잡아 당겼다.
"엄마 거실에 있는 저 큰 가방은 뭐야? 엄마거야? 우리 왜 여기 있어?"
유진은 아이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봤다. 아이는 궁금한 거 투성이었다. 유진은 아이의 말에 거실로 나갔다. 유진이 바닥에 누워 있던 곳 바로 앞에 큰 캐리어 가방이 놓여 있다.
유진은 망설이다가 그 캐리어 가방을 열었다. 맨 위에 등기 서류와 캐리어 가득 5만 원짜리 지폐 묶음 들어 있다 유진은 주저 앉아서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어 쳐다만 봤다. 아이는 유진의 얼굴과 캐리어 가방 안을 번갈어 쳐다보더니 등기 서류를 집어 들었다. 뭔지도 모르지만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등기 서류를 넘기고 있다.
"엄마 이름 써 있네."
유진은 아이가 손에 든 등기 서류를 조심스레 빼앗듯이 가져와 서류를 천천히 살폈다. 분명히 소유주가 유진의 이름으로 돼 있다.
"여기 우리집이네."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믿어지지가 않아서 목소리가 허공에 대고 얘기하는 듯 했다. 유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이름이 적힘 등기 서류를 손에 들고 캐리어 안의 돈 묶음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꿈이 아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