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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Feb 20. 2024

여섯 번째 연습: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길

Just keep swimming, just keep swimming

습기를 무릅쓰고 길을 나선다. 안개가 가득하다. 습기 때문에 몸이 무거운 건지, 남편이 외투에 넣어둔 쓸 일 없는 보조배터리 때문에 몸이 무거운 건지 알 수가 없다. 달려 보려고 했지만 좀처럼 가벼운 맛이 나질 않고 뛰어도 걸어도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만 같다. 그래, 이런 날이 있다. 나는 한다고 열심히 하는데 제자리에서 계속 머무르는 것만 같은 날이 있다. 그런 날에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평소에는 가뿐하게 가던 길인데 유난히 저 앞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더 멀게만 느껴지지만 언젠가 도착하겠지 하면서 그저 걷는다.


도착해서 보니 튤립의 싹이 요만큼 더 자라났고 옆에 다른 구근들에서도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튤립이 자라고 있습니다, 청보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개양귀비가 자라고 있습니다 등 그렇게 지나다니면서도 한 번을 보지 못한 안내 종이들을 이제야 만날 수 있었다.


'니모를 찾아서'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니모를 찾으며 당황하는 아빠 멀린에게 도리는 "Just keep swimming"이라며 노래를 부른다. 단언컨대 '니모를 찾아서'와 '도리를 찾아서' 합쳐서 저것이야 말로 인생을 관통하는 명언이라 생각한다. 습기 덕에 정말 'swimming'하는 것 같았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도 가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는 계속 가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의 날씨 덕에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날의 러닝에서는(그날은 시간 관계상 완주하지는 못한 날이었지만) 내가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더 늘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하고 달렸던 것이 나의 달리기를 조금씩 길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1미터씩이라도 앞으로 애쓴다면 우리는 더 앞으로 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언젠가는 내가 이런 힘이 있었구나 하고 알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한 달 정도 러닝을 하면서 실제로 러닝을 하러 나간 날은 절반 정도도 안 될 것이며, 실제로 달린 시간의 비율은 걸은 것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적을 것이지만서도 나의 이런 변화들이, 생각의 깨달음들이 너무나 귀하고 중랑천의 새(bird) 친구들이 너무나 귀엽고 고마워서 운동화를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말이 바로 대회다.




걸어도 뛰어도, 완주하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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