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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Feb 13. 2024

다섯 번째 연습: 파워워킹으로 완주하기

우울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어제 또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서인지 명치 끝이 묵직하게 아프다. 걷기로 하자! 파워워킹으로 완주하는 게 오늘의 목표야!

음악과 바람을 느끼면서 걸으려고 해도 다른 날과 다르게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자꾸만 잡생각이 떠오르고 어제의 우울감을 반복해서 되짚고 또 되짚는다. 자칫 잘못했더라면 버스에 치였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퍽 답답한 게 스포츠 브라 때문인지 내 우울감이 여기서 탁 걸려서인지 정말 모르겠다. 집 정리도 안 하고 나왔는데 하루쯤 안 해도 괜찮겠지. 글은 언제 쓰지. 팔로우는 늘었을까. 파일도 보내줘야 하는데 사람들이 기다릴까. 단톡방에 답장도 해야 하는데.


정말 귀하게도 가까이서 아직 털갈이를 하지 않은 아기 오리를 만났다. 가끔 홀로 떨어져 있는 아기 오리들을 보면 걱정이 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그렇다. 낙오가 된 건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앞으로 합류할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혼자 유유히 수영을 하며 먹이도 먹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호접지몽처럼 아기오리에 나를 대입하게 된다.

점심을 뭐 먹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속이 아프니 샤브샤브 같은 것을 먹을까 아니면 김치가츠나베를 먹을까, 햄버거를 먹을까. 햄버거 먹고 싶은지는 2주나 됐지만 찬 음식이라 먹으면 별로 안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명절연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었으니 김치가츠나베로 얼큰하게 밥도 말아먹고 싶은데 매울까 봐 걱정이 되고. 샤브샤브는 새해 들어서부터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지만 건강하고 맛있는 걸 어쩌지. 당현천으로 빠지는 길로 가면 떡볶이집도 갈 수 있겠네. 아니다, 떡볶이는 많이 안 땡기네. 먹어도 밀가루라 안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대접하는 느낌도 안 나.

오늘의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우울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짐을 느낀다. 나를 짓누르고 있던 어떤 것이 움직인 것 같은 변화를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우울은 가벼워지는 걸까? 이렇게 나의 우울을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내가 방법을 하나 발견해 낸 것 같은데? 대단해!


반환점에 다다라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아이코, 발 밑을 조심해야겠다. 맨날 사진 찍던 그 자리가 튤립 구근이 있던 자리였구나. 푸르른 싹들이 옹기종기 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몽글하다. 계절의 변화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간질인다. 돌아가는 길에 외투를 벗어 허리춤에 묶는다. 맨투맨 한 장만 입어도 걸을 수 있는 날씨. 불과 몇 주 전에는 입김이 마스크 속에서 얼어서 달리기가 어려웠는데. 중간중간 마련해 둔 벤치마다 어르신들이 앉아 계시고 테이블이 있는 광장 같은 곳은 이미 중랑천을 바라본 채로 만석이다. 아름다운 이 나라의 사계절.

사실 나에게 이번 봄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이다. 인생에서 1년 그렇게 길지 않고 작은 점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알 수 없어서 두렵고 걱정이 가득한 봄이다. 갓난아기도 없고 우리 반 어린이들도 없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며 지낼 수 있을까? 그러면 조금은 나아질까? 따뜻한 봄이 나를 위로해 주기를 기다려본다.

1시간 45분. 파워워킹으로 10km를 완주한 오늘의 기록이다. 나쁘지 않은데? 조금만 뛰면 1시간 30분 안에는 들어오겠는데? 어제 엄마가 힘들면 안 해도 된다고 꼬셔서 포기할 뻔했는데, 나, 할 수 있겠는데? 해봐야지, 뭐든. 해봐야지, 어떻게 되든. 해봐야지, 그냥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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