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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Jan 30. 2024

세 번째 연습: 이 마라톤 연습의 목표는 무엇인가

목표 없는 노 젓기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달리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더 많은 달리기 연습을 하면서 그간 나에게 있었던 일들과 나 자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마라톤 연습을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나는 목표가 없다. 언제나 그래왔고 항상 그런 편이다. 목표를 잡고 나아가는 법이 없이 그냥 되는대로 방향성만 잡고 요리조리 휘젓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 틈에 내가 원하는 쪽에 가있기도 하고 얼렁뚱땅 잘못 휘어져 간 적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그쪽도 나쁘지 않은 결과였던 것 같다. 사실 목표가 다 무어냐, 인생이 목표한 대로 되지도 않는데 정확한 키포인트를 잡고 갔다가는 실망할까 봐 두렵다. 두루뭉술하게 껴안고 가는 편이 더 좋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두루뭉술이 나에게 화딱지를 안겨준 것이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니 세부적인 계획이나 디테일이 떨어지고 제대로 된 그림이 완성될 리 만무했다. 제대로 된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니 화가 났고 좌절스러웠다.


  달리다가(아니 사실은 걸었을 것이다.) 또 생각한다. 제대로 된 그림이 아니라면 정말 의미가 없었던 걸까? 이런 붓 터치는 사실 쓸모가 없는 것이었을까? 걷는 시간이 더 많은 마라톤 연습은 의미가 없는가? 추상화는 알아보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스스로 순간을 의미 있게 그려냈다면 그 자체의 터치만으로도 아름다운 그림이고, 내가 정성을 다했다면 그것은 정성을 다한 마라톤이다. 굳이 세밀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그림의 가치에 대해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의 여러 작품들에 대해 생각한다. 깨닫기가 오래 걸렸지만 나는 실로 다작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일이 내가 아니고, 육아가 내가 아니다. 일을 평가하는 사람은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육아를 평가하는 사람은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상담 선생님이 늘 말씀하시던 것인데 귓바퀴로만 듣다가 중랑천을 거닐며 드디어 고막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간 일에 치여, 육아에 치여, 방치되었던 '나'의 그림을 그리면서 요즘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너무 많은 시간을 다른 작품 하는 데 많이 썼다. 물론 육아라는 것에 들인 정성은 단 한 톨도 후회하지 않는다. 더 들일 수 있었대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게 사실이 아닐지언정 나는 언제나 매 순간 내 상황에서 최선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일'을 보는 사람에게는 나의 '일' 작품만 보여주면 될 일이다.


  마라톤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뛰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더 많다. 중랑천에 나가 연습하는 시간보다 어영부영 못하게 되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걷거나 달린다. 틈이 날 때 나가면 된다. 걸어도 그만, 뛰어도 그만이다. 나와 적당히 타협을 보면서 이 시간을 즐긴다. 차가운 공기도 이제 얼마 안 남았고, 처음 보는 작은 새들의 움직임도 잘 기억하고 싶다.


물 위를 걷는 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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