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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Jan 21. 2024

제4의 벽

예술에 다가가며 자신을 찾아가는 박신양의 명징한 기록

1.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권리
2. 인생의 본질에 가닿는 과정


1.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권리

인간은 표현하고 싶어 한다. 표현하지 못하면 병이 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진실을 알지만 말하지 못한 갓장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대나무숲에서 이를 속시원히 말하고 나서야 병이 낫는다. 어떤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이 표현을 하고 나니 속이 뻥 뚫린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동화에서 더 재밌는 포인트를 봤다. 바로 대나무숲의 행동이다. 임금님의 비밀을 갓장이가 알게 되고 그 비밀을 이제는 대나무숲이 배턴 터치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나무숲도 그 비밀을 혼자만(사실 혼자는 아니지만) 알게 되니 참 힘들고 병이 나지 않았을까? 내 생각에는 아마 그랬던 것 같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힘들어 대나무숲도 바람이 불 때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표출한 것이다. 그 결과는 임금님의 신하들에게 대나무가 모두 베이는 고통을 안게 되지만 대나무가 자라나면 다시금 내뱉는다. 베이는 고통을 알면서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표현의 욕구는 죽음보다 강하다.​

화가 박신양과 철학자 김동훈의 <제4의 벽>은 인간의 표현에 대한 생각과 철학을 담은 책이다. 일반적으로는 이러한 주제는 '표현의 욕구'적 측면에서 얘기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표현의 권리'라고 표현한 게 새로웠다. 욕구와 권리는 엄연히 다른 말 아닌가. 표현의 욕구는 '임금님 귀'처럼 참지 못하고 표출하는 느낌이 강하다면 표현의 권리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우로서 이미 많은 것을 이룬 박신양이지만 배우이기에 자신을 오롯이 표현하지는 못했던 시간을 보냈을 테고, 이제 미술과 글로 그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2. 인생의 본질에 가닿는 과정

그럼 박신양은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초반에는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한다. 예술은 어려운 길이라 칭하며 어려운 문제는 어렵다고 인정하자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파헤치려 한다. 그런데 읽다 보면 예술에 깊숙이 다가가려면 결국 '나' 자신에 대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내'가 없는 예술은 결국 허공 속의 표현으로 끝나는 셈이다. 그래서 <제4의 벽>은 계속해서 박신양이 예술의 이치와 본인의 성찰을 번갈아가며 사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은 이 모든 것은 인생의 본질에 가닿는 과정으로 보인다. 인생의 본질을 미술이라는 행위를 통해 찾아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화가 박신양에게는 미술의 결과물보다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무대와 스크린, 방송을 통해 연기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연극과 같은 것은 과정이 곧 결과물이며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꾸준히 그러한 삶이 몸에 밴 화가 박신양에게는 어쩌면 미술행위의 과정에도 상당한 중요성이 실림이 당연해 보인다. 평택의 엠엠아트센터에서 관람객이 오는 속에서도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는 모습 자체가 일종의 행위예술과 같았다. 어쩌면 배우라는 오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박신양이 화가로 변했을 때 행위예술가적 모습을 보이는 것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화가의 교집합=행위예술가.

사실 지금까지 이 책과 박신양 님에 대한 설명은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기에 이 책에 쓰인 의도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인간에게는 표현의 권리가 있다고 했고 이 책을 읽은 바로는 박신양 님은 이러한 다양한 표현과 의견에 일리 있다고 수긍할 것만 같다. 박신양의 최대 장점은 스크린에서도 그림에서도 자신의 색깔이 명징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순수한 것도 같고, 그만큼 고심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읽다 보면 박신양의 고민을 풀어간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계속해서 대입해 보게 된다. 그 사유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이 책을 통해 박신양, 김동훈과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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