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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May 05. 2024

그림이라는 위로

태백의 한 카페에서 받은 '그림의 위로'

1. 한 카페에서 아이들을 보며
2. 위로는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아


1. 한 카페에서 아이들을 보며

태백에 갔다. 사실 정선에 가는 길에 태백을 들린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나라의 독립서점과 북카페를 다녀보고 포스팅도 해볼까 해서 일부러 태백에 간 것이다. 네이버로 검색했는데 <시시한 책방>이라는 곳이 꽤나 괜찮아 보였고 정선 가는 길에 그 일대를 둘러보는 게 여행지로도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0이 넘게 혼자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다. 멀리 가 본 적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난다. 물론 군대도 갔고, 어학연수도 가봤고, 지방의 친구 결혼식도 가봤다. 하지만 그건 여행은 아니었다. 어떠한 목적이 있는 이동이었다. 이번처럼 순수하게 혼자 어디를 가보자는 생각은 처음으로 하게 되었고 결심하고 실행에까지 옮긴 것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멀리까지 찾아간 태백의 독립서점은 문을 닫았다. 네이버로 분명 영업 중이라고 떠 있는데 닫았다. 또르륵...U_U... 아쉽지만 주변에 다른 곳을 찾았다.


 근처에 조금만 올라가니 <꽃 피는 봄날>이라는 카페가 있었다. 고즈넉한 마을에 참 잘 어울리는 카페라는 생각이 들었다. 텀블러를 내밀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자 친절한 사장님께서 금세 커피를 만들어 주셨다. 텀블러를 내게 전달하면서 진한 거 좋아하면 샷 추가해 준다고 하셨다. 이게 한국인의 특징인지 모르겠는데 반사적으로 "괜찮아요^^"가 튀어나왔다. 근데 사실 난 진한 거 좋아한다. ㅋ.ㅋ 뒤늦게 '아, 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으니 그냥 그렇게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앉아서 보니 그 카페가 참 좋았다. 전반적인 여유가 좋았다. 지방을 다닐 때마다 아이들을 보면 더 반갑다. 저출산이라고 하고 지방 도시가 사라질 위기에 있다고 하니 그곳에 다니는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들을 보면 신기하면서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 카페에도 남매 둘이서 들락거리는 게 보였다. 카페 사장님의 자녀분인지까지는 모르겠다.


마침 내가 이번 여행에서 선택한 책은 <그림이라는 위로>였는데 이 책과 딱 맞는 분위기였다. 칼 라르손의 그림이 보였다. 스웨덴 작가로서 가족의 그림을 스냅샷처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족에 대한 추억을 그리는 것이 인생 최대의 작품이라고 말한 그는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에 반해 항상 행복하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본인이 성인이 됐을 때는 그 불우함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경제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가족 분위기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도망간 경험한 그였기에 가족과 잘 지내는 게 삶의 목표였는지 모른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을 보는데 서울에서 감상했을 때와는 다른 묘함을 느꼈다. 낯선 곳의 낯선 카페에서 익숙하고 편안한 기분을 받았다. 어쩌면 그게 '위로'라는 것일까 싶었다.


2. 위로는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아


그 카페에서 칼 라르손의 그림을 보며, 그리고 카페를 드나드는 그 아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지어졌던 미소. 우리가 흔히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아'라고 하는데 나는 이 순간만큼은 '위로는 멀리 있지 않는 것 같아'라고 치환하고 싶었다. 위로를 받는 방법은 많이 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기부를 하면서, 애인과 사랑을 나누면서, 아니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그 따뜻함을 채울 수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인위적이다. 절대 그것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단지 우리의 행위가 들어가거나 그러한 마음이 들게끔 끌어내는 어떤 매체가 있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내 속 내를 털어내서 위로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냥 오늘의 긴 하루를 비 오는 창문을 보며 위로받을 수도 있다. 태백의 한 카페에서는 후자의 위로를 받은 것 같다.


사실 한 평생 혼자 여행 한 번 다니지 않은 내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 자체가 그 위로라는 것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었나 싶다. 단순한 심심함, 무료함, 도파민 부족, 재미 추구 등 때문에 여행을 선택했다기에는 설명이 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삶에 지쳤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예전에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어떤 기분이 드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사실 답할 수가 없었다. 그냥 답답함인데 그것이 고통인지 외로움인지 슬픔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 내 답이었다. 상담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고, 원인을 모르니 그 답답함은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잠깐이지만 태백의 카페에서는 그 순간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림과 환경이 주는 힘이 그런 것일까 싶었다.


여행의 모든 것이 좋을 필요는 없다. 한순간의 기억과 장면으로도 그 여행이 충분히 충만해질 수 있다. 홍콩 여행을 2번 했는데 또 가고 싶은 이유는 다른 게 없다. 프렌치토스트와 동윤영을 마시고 싶어서다. 그 만족감이 너무 컸다. 이번 여행은 지금 리뷰를 쓰는 이 책과 그 카페가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역시 행복이라는 게 그리고 위로라는 게 멀리 있지 않은가 보다. 글은 많지 않고 작가에 대해 필요한 정도의 딱 한 페이지 분량이라 좋았다. 책이지만 읽는 것이 아닌 보고 느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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