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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May 19. 2024

어린 왕자 The Little Prince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데... 블랙 에디션은 못 참지!ㅎㅎ

1. 슬프네, "자신이 있는 곳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라니...
2.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와


1. 슬프네, "자신이 있는 곳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라니...

소제목은 철도원이 어린 왕자에게 한 말이다. 보통 <어린 왕자>를 읽은 사람들은 이 소설에서 가장 꽂히는 부분은 여우가 언급하는 것들이다. '길들여진다'는 표현이나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구절들이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읽을 때는 이상하게 철도원의 저 대사가 와닿았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기 때문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40이 넘은 이후로 내 삶에 크게 만족하지를 못한 것 같다. 불혹이라는 용어부터가 왠지 남달라야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이 첫 번째이며, 30대 혹은 그 이전에는 그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보였는데 지금은, 수확까지는 아니어도, 그 수확물 있을 지도 불문명해 보이는 게 두 번째다.

학부 때 전공했던 직업도 아니다. 아직 내 집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이게 내가 내 삶을 만족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실패한 것이 아닐까, 라고까지 생각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철도원에 따르면 앞에 세 가지를 이룬 사람이라도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아니 그보다 더욱 성공한 사람, 억만장자가 된 사람도 그렇지 못하고 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니 이게 불행한 건지 그래도 다행인 건지를 모르겠다. 원래 인간이 다 그렇지 않나. 내가 망한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만 망한 게 큰 타격인 것이다. 내 주변이 모두 노예라면 왕이 부럽지 않다. 그러나 나 혼자만 그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억지 논리일지는 몰라도 그래서 철도원의 말이 참 위로가 되었다. 사실 문맥상 철도원은 그런 위로의 뜻으로 어린 왕자에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무것도 쫓아가지 않는 사람들의 비목적성 삶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서로 간의 접점이 없는 비인간적 사회 실태를 소설적으로 푼 것으로 보인다. 요즘에는 진짜 사람들이 만족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특히 골프 하는 분들을 보면 (죄송하지만) 딱하다. 필드에 나가서 자기 실력에 대해 기분 좋게 오는 분들이 잘 없다. 항상 부족한 것만 보이고 본인의 에버리지보다 못 쳤다고 하소연한다. 그 정도면 기본 타수를 좀 높여서 생각하면 좋겠는데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항상 못 쳤다고 불만족한다. 그래도 기분 좋은 것 딱 한 가지. 나는 못해서 내 실력은 불만족스럽지만 나랑 같이 골프 한 동료들을 이겼을 때. 즉 내가 못해도 남을 이기면 기분이 좋다.



2.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와

<어린 왕자>는 참 재밌는 책이다. 그 재미난다는 것은 읽는 사람의 시기와 상황에 따라 이 소설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철도원 에피소드는 사실 이 얇은 책에서도 가장 비중이 떨어지는 에피소드에 해당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은 사람에게는 지금의 에피소드가 머리에 사라져 있는 경우도 많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어떤 사람은 어린 왕자가 결국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는 경우도 있다. 보아뱀 그림이 너무 강렬하여 [어린 왕자 = 모자로 보이는 보아뱀] 공식이 생길 정도였지만 결말은 잘 몰랐다. 사실 저자 생텍쥐페리는 보아뱀과 관련해서는 일반적인 편견을 뛰어넘으라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에게 또 다른 편견을 심어주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 순수하게 보이기 위한 지식이 쌓인 것이다.

암튼 철도원 에피소드는 비중이 크지는 않다. 그런데 나는 이번만큼은 가장 인상 깊게 봤다. 지금의 나도 과연 만족하지 못할 삶인지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게 됐다. 전공은 살리지 못했지만 취미로 이렇게 글도 쓰고 있고, 부자는 아니지만 여행 정도 가는 것은 문제없으며, 애인이야 대신 여러 사람과 썸을 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 아닌가. 누군가 봤을 때는 내 삶이 부러울 수도 있는데 우린 항상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쩨쩨하다. 그리고 지나치게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삶을 판단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른 사람이 내 삶에 특별한 영향을 주거나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나 혼자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SNS와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철도원 에피소드가 이번에 꽂혔지만 보통은 여우가 말하는 주제에 감동을 받는다. 그런데 내 스스로 아직 나는 부족하다고 느낀 게 있다. 바로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을 너무 가지고 싶었다는 것이다. <어린 왕자>의 블랙 에디션이라니. 이건 무조건 소장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 그래도 이렇게 새롭고 멋있게 양장본으로 출간된 <어린 왕자> 하나 정도는 품에 안고 싶은 게 사람인 것 같다. 딱 이번만큼만 이 책을 품고, 오늘 이후부터는 어린 왕자에게 받은 순수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ㅎㅎㅎ《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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