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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May 12. 2024

육질은 부드러워

인육을 먹는 사회가 된 충격적 디스토피아

1. 모순덩어리 인간의 합리화란
2. 너무 무서웠다. 현실적이어서


1. 모순덩어리 인간의 합리화란


지구에 있어서는 안 될 생명체가 600만 년 전에 생겨났다. 지금 형태(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으로 잡기도 한다. 45억 년 지구의 나이를 24시간이라고 가정하면 이 생명체는 밤 11시 58분에 출현했다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나온다. 사실 이 생명체가 나타나기 전까지 지구라는 곳은 평화로웠다. 뭐 평화롭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 면역 기능이 활발히 작동 중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24시간을 잘 살아온 지구가 불과 2분 전부터 큰 몸살을 앓고 있다. 바로 인간이라는 동물 때문이다.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돌연변이는 여느 생물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자아와 고도화된 지능이 그것이다. 그동안의 다른 개체가 신체적 능력의 탁월함만 키워가려 했다면 인간은 그 열세를 자아와 지능으로 극복했다.


개인적으로 이 자아의식과 지능이라는 2가지를 같이 지니고 있다는 게, 인간에게는 축복일 수 있겠으나, 지구에게는 저주였다고 생각한다. 자아는 자신에 대해 의식하고 사고를 주관적으로 하는 것인데 이게 지식과 잘못 결합할 때 답도 없는 일이 생긴다. 자기 합리화가 바로 그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게 인간이다. 정말 하다못해 과학적 진실이라고 하는 것도 어떻게 분석하는지에 따라 그 내용이 정반대가 된다. 예를 들어 커피의 효능도 도대체 건강에 좋다는 건지, 안 좋다는 건지 헷갈린다. 그때그때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다르다.


<육질은 부드러워>는 그런 모순덩어리 인간들의 끝판왕을 보여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동물이 바이러스가 걸려 동물을 식용으로 쓸 수 없는 세상에서 동물성 단백질이 필요한 인간이 선택한 방법은 인육 섭취다. 어떤 이는 이 소설을 읽고 작가처럼 채식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동물을 먹는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비판에 집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것은 소설 속 세상을 합리화한 인간에 so gross한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소설을 읽어보면 진짜로 동물성 바이러스라는 게 발생했는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았을 때 인간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지도 사실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설 속 세상에는 그러한 믿음이 뒤덮여있고 사람들은 인육을 먹는 방법을 강구한다. 얼마나 모순적이며 자기 합리화의 극치 아닌가.


2. 너무 무서웠다. 현실적이어서


소설을 읽으면 너무 징그럽고 무섭다. 인육 공장과 정육점에서 어떻게 (사람)가축이 식용으로 가공되는지를 보여주는데 비록 글이지만 비위가 약한 나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작가가 한 이 상상이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동을 그대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러하며, 사람을 가축보다 못하게 대했던 과거 노예 제도를 생각하면 인간의 잔인성이 소설보다 못하다고 말하기 힘들 것 같다. 그런데 이 소설 속 세상에서 노예 제도는 금지되어 있다. "노예라니 야만적이야."라는 한 등장인물의 대사는 사람가축을 별도로 키우며 인육을 먹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소리인가 싶다.

주인공은 이런 디스토피아를 회의적으로 보는 인물이다. 아이가 있었지만 아이가 죽고 난 후, 그 트라우마 때문에 아내와 별거를 하며 지낸다. 예전 동물이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동물원에서 몰래 커가는 강아지들을 우연히 보며 지금의 황량하고 메마른 도시를 경멸한다. 물론 이런 주인공에게도 반전이 있는데 생각해 보면 주인공은 인육을 만드는 공장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에서 눈치챘어야 한다. 싫지만 어쩔 수 없다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전형적인 자기 합리화 인간의 모습이었다.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이미 세속화된 종교의 모습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 종속인지 알 수 있다.


너무 재밌게 읽었고 흥미로웠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인데 그걸 소설로 이렇게 묘사하고 풀었다는 게 신기했다. 영화로 나와도 굉장한 인기를 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TV 시리즈 제작이 확정됐다고 한다. 그런데 잔인한 장면들이 많기 때문에 제대로 표현하려면 영화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재 때문에 거부감이 들 거 같다는 분들은 인육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동물로 바꿔서 상상하면 될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잔인하구나 싶을 것이다. 물론 개인마다 자신에게 제일 마음 편한 논리의 합리화를 하며 그렇게 잘 먹고 잘 살고 있겠지만 말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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