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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Jun 02. 2024

나만의 필사책: 어린 왕자

읽었으면 써봐야지! 손글씨를 쓰다 보면...

1. 엄마, 아빠의 손글씨 기억나나요?
2. 은근 스트레스가 풀려



1. 엄마, 아빠의 손글씨 기억나나요?

일하다 보면 가끔 어른들이 직접 손으로 쓴 글씨를 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다른 게 아니라 글씨체가 너무 예뻐서다. 경조사 때 엄마, 아빠가 봉투 뒤에 쓴 글씨를 보면 왜 이렇게 글씨가 예쁜 거야?라고 매번 감탄을 안 할 수가 없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부모님의 서명받아오라고 하면 우리가 보았던 어른 글씨가 딱 그대로 있어 반갑다. 특히 남자 어른들에 특유의 힘 있는 글씨체는 참 신기할 정도다. 재밌게도 글씨에서 남자는 남자다움이 있고, 여자는 여자다움이 느껴진다.  회사 팀장님급 분들에게 여쭤보니 그때는 컴퓨터가 없어서 글씨를 잘 쓰는 게 능력이었다고 한다. 줄 맞춰서 예쁘게 잘 쓰면 그것도 업무 능력에 포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회사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어른들은 일상생활에서도 글씨를 중시한다. 글씨가 자신의 마음을 혹은 인격을 나타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진짜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예부터 명필은 우대받았다. 또, 배움의 척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다. 글씨 잘 쓰는 사람이 공부도 잘한다? 혹은 공부 잘하는 사람이 글씨를 잘한다? 순서가 어떻든 어른들은 글씨 잘 쓰는 것을 좋아하고 어렸을 때부터 글씨 잘 쓰라는 교육도 종종 받았다. 요즘은 확실히 덜 한 것 같다. 우리 세대 학부모들을 보면 일단 본인들부터 글씨를 삐뚤삐뚤이다. 본인이 떳떳하지 못하는데 아이에게 강요할 수도 없으며 사실 글씨를 잘 쓰는 게 뭐가 그리 대수인가 싶은 마음이 크다.

이 모든 게 어느 순간 타자가 손글씨를 대체하게 되면서부터 인 듯하다. 이제는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볼펜이나 연필로 필기를 하는 거의 없다. 회사에서 하는 손글씨도 사실상 메모나 끄적거림 정도에 불과하고 밖에 나가서는 내 이름을 사인하는 정도가 전부다. 그래서 각 잡고 글씨 한 번 써보려면 예전에는 글씨를 곧잘 썼는데 되게 안 써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안 써봐서 그런 것이다. 사실 메모 같은 것도 나중에 타이핑을 위한 자료이거나 중요한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표시 정도 해두는 것이니 엄밀하게 '진짜' 글씨를 쓴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2. 은근 스트레스가 풀려

<나만의 필사책: 어린 왕자> 앞에 붙어 있는 부제는 '마음을 다해 쓰는 글씨'다. 앞에 메모 같은 것을 '진짜' 글씨는 아니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메모에 마음을 담아내지는 않지 않나. 혹시 최근에 마음을 다해 글씨를 써 보신 분? 이렇게 인터넷상의 포스팅이나 SNS 말고 직접 손글씨로 써 본 기억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손글씨는 마음을 다 할 수밖에 없다. 타자처럼 한 번 쓴 것을 쉽게 지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중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몰입하고 나면 은근 기분이 좋다.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래서 일부러 손글씨 동아리에 가입하는 직장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일기를 쓰거나 다이어리를 꾸미는 것도 좋지만 이는 능동성이 상당히 필요한 작업이다. 그리고 작문을 안 해본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창작해야 하다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 때문에 필사를 하는 것의 최대 장점은 특별하게 어떤 것을 배울 필요도, 내 안의 어떤 능력을 꺼내 발휘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동아리 같은 것을 참여하는 것에 부담이 없다. 시간 내서 따로 연습하지 않아도 되며 대인 관계가 불편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크게 엮일 것도 없다. 손글씨를 쓰는 순간은 오로시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최근에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었는데 내용이 너무 좋았다. <어린 왕자>라는 책은 참 신기하게도 두껍지도 않은 데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그리고 읽는 시기에 따라서 느껴지는 메시지가 다르다. 이번에는 철도원 에피소드가 꽂혔다. 내가 생각하기에 필사를 하기에는 정말 좋은 책이고 충분히 필사를 통한 완독도 가능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실로 꿰매는 사철 제본 방식으로 만들어서 수평으로 쫙 펴지기에 글씨 쓰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을 것이다. 총 279쪽이기에 하루에 1페이지씩 쓴다고 하면 1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필사를 하기에는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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