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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Feb 21. 2024

죽다 살아 나오며

당연한 건 무엇도 없다, 그게 똥일지라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다. 귀 뒤, 목덜미, 겨드랑이에서 열이 후끈 오른다. 얼마가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휴지걸이 위에 휴대폰이 있지만 왠지 지금 이 자세를 유지해야만 할 거 같다. 체감상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만은 분명하다. 앞배, 옆구리 등 손가락이 닿을 수 있는 배의 곳곳을 꾹꾹 누르고 비틀고 난리를 치치만 피부만 빨개지고 분노만 쌓일 뿐 조금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왜??? 도대체 왜???????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야?? 나한테 왜 이래!!!!!!!!!!!!!

대답을 들을 수 없지만 너무나 간절히 알고 싶다. 제발 이유를 알려줘, 앞으로는 안 그럴게.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한다. 힘이 풀린다. 겨우 손을 뻗어 휴대폰 시계를 보니 4시, 4시........??? 1시간이 넘도록 좁은 변기 위에서 홀로 사투 중이다. 무섭다. 영영 나오지 않을까봐.







엄마, 아빠, 할머니, 동생, 친구들과 눈물범벅인 채로 포옹하고 작별인사를 하고 또다시 눈물 한 바가지 흘리는 친구와 엄마의 슬픈 눈을 마주하자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진 채 탑승한 런던행 비행기였다. 화장실도 친구들과 함께 가던, 온전히 옆사람에 의지하던 내가, 철저히 나 홀로, 것도 연고 하나 없는 영국에서 지낼거라 했을 때 믿지 못하거나 걱정되는 마음에 말리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렇게 인생 첫 독립은 영국 런던에서 시작되었고 스물 한 살의 여름, 반짝거리는 햇살과 딱 좋아하는 온도로 날 맞이한 런던 히드로공항(Heathrow Airport)에서, 직감했다. 나는 이곳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 도착 첫날부터 설렘, 행복함, 즐거움과 신남을 만끽하던 런던에서의 나날들이었다.  



1주일이 넘게 화장실을 못 갔다는 걸 알아차린 건 하필, 기다리고 기다리는 첫 펍데이(Pub day)였다. 펍이 영국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익히 들어 알고 있기에 꼭 참석하고픈 행사였다. 골목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펍은 각각의 특색과 전통을 지니고 있었고 사교와 친목의 장이자 저녁 문화의 중심인 만큼 기대가 매우 컸다. 수업이 끝나고 펍데이 시작까지는 꽤 여유가 있어 친구들과 근처에서 놀다 가려던 계획이었는데 살살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제야 21년 인생을 통틀어, 언제 어디서나 1일 1 비움, 가득 채운 다음 날은 2번 넘게도 갔다 오던 기특한 나의 장 활동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힘주어 짜내고 있고 시간은 어느덧 2시간 가까이가 흘러 있었다. 더 이상 쥐어짜 낼 힘도 바닥나던 순간, 묵혀있던 그것이 드. 디. 어. 내 몸을 빠져나왔다. 와... 이토록 시원하고 상쾌하고 후련하고 개운하다니... 출산 경험이 없을 때였지만 그 당시에는 감히 맞먹을 만한 감격스러움, 벅참, 감사함까지 온몸을 타고 내려왔다. 똥이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다는 절망스러운 사실 끝에서 나는 살아 돌아왔다. 기나긴 혈투 끝에 맛본 승리라 더 값지고 귀했기에 오늘의 배움을 꼭 기억하리라 다짐했다. 잔소리해 주는 엄마가 곁에 없던 첫날부터 생전 입에도 안 대던 콜라를 물대신, 머핀과 스콘과 초콜릿바를 밥대신 처먹은 대가였다.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화장실에 들어올 때조차 이런 진리를 깨닫고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말이다. 땀에 젖은 머리가 신경 쓰였지만 다행히 펍의 조명은 밝지 않아 가뿐하게 잊고 신명 나게 첫 펍데이를 즐겼다.






런던 Oxford Street 어느 화장실에서의 처절한 사투 이후, 이십 년 만에 두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차전자피, 다시마, 바나나, 알로에 등 식이섬유가 많은 식품으로 이겨내 보려 했지만 영 시원치 않은 날들이 2주가 흘렀다. 변비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주변 지인들의 추천으로 푸른 **, 변비약, 쾌변환까지 섭취했는데 그때뿐이었다. 어디를 가나, 무엇을 먹든 '그' 생각만 났다. 이렇게 먹는데 도대체 너는 어디에 있는 거니? 몸 밖으로 나오지 않는 똥들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아, 물을 소홀히 했었다. 매일 공복에 따뜻한 물을 마셔왔는데 어느 순간 물대신 아아로 하루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스쳐 지나가며, 따뜻한 물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조급했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미지근한 물 마시기, 더 걷고 움직이기 등 기본으로 돌아간 생활은 다시 내게 기특한 장을 보내주었다.


똥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더럽게 들리겠지만 나는 그랬다. 채워 넣기보다 훨씬 중요한 건, 비우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제대로 비우는 것, 이걸 해내는 과정이 삶이리라. 입에 달다고, 익숙하다고, 좋다니깐, 남들이 다 하니깐, 유행이라고, 돈이 된다고, 있어 보이니... 생활과 상태를 파악하지 않은 들여보내기만, 채우기에만 급급하다간 결국 일이 난다. 물대신 콜라와 아아마셨던 나처럼. 




오늘 아침도 개운하게 시작한다.
쾌변이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위대하다.
오늘 나는 뭐든지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펍(Pub) 영국에서 발달한 술집으로, Public House의 약자이다. 영국의 펍(pub)에서는 주로 맥주를 많이 마시지만 그 밖에도 음료, 간식,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도 있는 대중적인 장소로 당구 등 오락거리도 있으며 수업 후나 퇴근 후 들러 친목을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영국 전역에 많이 있어 지역별 수제 맥주를 맛볼 수도 있고, 특히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함께 보며 응원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펍(pub)은 영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장소 중의 하나다. 런던시내에서 근무하는 비즈니스맨도 점심식사는 펍에서 할 정도이며, 서민의 휴식처이자 사교클럽에 속한다. 프랑스인들이 거의 매일 카페(café)에 가듯이 펍(pub)은 영국인들의 사랑방이자 간이술집, 선술집 정도에 해당한다.


출처: 위키백과,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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