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하늘처럼 축 쳐진 목요일 오후를 들뜨게 만드는 카톡이 왔다.
“주말에 친정 가서 고구마 가져올 건데 필요하신 분?”
“저요!”
“10kg 지?”
“그럼요.”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고구마’의 수확 소식이었다. 동네 언니의 친정 부모님네 텃밭에서 오는 이 고구마는 애초에 판매 용이 아니었다. 고구마를 좋아하는 손주를 위해 텃밭 한쪽에 손주 줄 만큼만 키울 작정이셨다. 그러던 어느 늦은 여름, 고구마 수확 량이 제법 늘어 내 생각이 났던 동네 언니가 맛보라고 가져다준 게 인연이 되어 처음 만났다. 워낙 고구마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제초제, 농약을 일절 치지 않고 정성껏 키운 친환경 꿀고구마의 맛은 기가 막혔다. 신선도, 식감, 당도, 풍미 등 고구마를 선별하는 어떤 기준을 들이대도 합격이었다.
“언니, 고구마 살 수 있어요?”
“지난주에 가져다준 거 다 먹었어?
“네, 진즉 에요.”
“고구마 진짜 좋아하는구나. 엄마한테 물어보고 연락할게.”
적극적인 구애 덕분에 나는 그 해 남은 고구마를 구매할 수 있었다. 나는 이 고구마를 일품 고구마로 불렀고, 일품 고구마를 맛본 사람들은 예외 없이 추가 구매를 원했다. 요청 건수는 점점 늘어났다. 소규모였던 고구마 텃밭은 열화와 같은 성원과 함께, 그 크기가 처음의 몇 배로 커졌다. 언니네 ‘일품 고구마’의 완판 신화는 쭉 이어졌다. 맛있는 데다 건강에도 유익한 음식은 누구나 좋아하니까.
그렇게 삼 년째, 언니네 친정 부모님 표 ‘일품 고구마’는 나의 월동 준비 필수품이 되었다.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현관 앞에 택배 박스가 놓여 있다. 박스를 여니 어여쁜 고구마들이 하나하나 정성스레 담겨 있었다. 어르신의 넉넉한 인심과 정성,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 선물 상자였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고구마가 상처 입지 않도록 배달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 준 동네 언니는 수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후숙을 해야 단맛이 올라올 거라며 맛있게 즐기는 팁을 전해 주었지만, 일주일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나는 바로 고구마를 씻었다.
포근포근 부드럽고 달콤한 고구마를 엄마 표 김치와 먹으니 진실의 미간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와 김치의 조합으로 1차를 마무리하고 다채로운 맛을 위해 이번에는 마요네즈를 꺼내 왔다. 달달한 꿀고구마와 고소한 마요네즈는 환상적이었다. 마무리는 치트 키(Cheat Key_ 게임을 유리하게 하려고 만든 문장이나 프로그램)인 땅콩버터와의 한 상이다. 크리미 하고 풍성한 풍미의 땅콩버터를 크게 한 스푼 더하니 이런 게 행복이지 싶었다. 살짝 목이 멜 때 차가운 우유 한잔을 마신다. 완벽한 마무리였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고구마 박스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조금만 먹을까 싶다가도 먹고 싶을 때 마음껏 먹기로 생각을 바꿔 본다. 이렇게 맛난 고구마를 만나게 되어 행복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