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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움 Nov 27. 2024

만약에, 혹시는 없다, 일단 Go!

"잠깐 통화 가능?"

"이사님! 가능해요."

"밖인 거 같으니 먼저 물어볼게. 다음 달(10월)부터 일 가능한가 해서. 근무 조건은 최대한 그대 시간에 맞춰볼게."

"아...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기간은요?"

"사람 뽑힐 때까지 해주면 제일 좋고."

"12월에 저희가 2주 정도 여행을 가서요."

"그건 당연히 갔다 와야지."

"저는 시간이 가장 관건이라. 시간만 맞으면 최대한 근무하는 쪽으로 결정할게요."

"오케이, 고마워. 가능한 시간대 알려주면 내가 부사장님이랑 상의할게."

"네, 감사합니다."



2019년 9월 추석 연휴였다. 전 직장 상사였던 Y 이사님으로부터 취업 오퍼를 받았다. 하고 싶은 마음 반, 아이들 등하원과 놀이터 및 학원 라이딩 일정 등 이런저런 상황을 생각하니 포기하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풀타임 근무라면 누군가(조부모 or 시터 이모님)에게 아이들을 부탁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제는 엄마께 더 이상 아이들의 돌봄을 부탁할 수는 없었다. 






첫째를 낳고 4개월 만에 복직하며 엄마와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복이의 육아를 친정엄마가 해 주시는 쪽으로 결정하였다. 그렇게 엄마는 행복이를 5년 동안이나 봐주셨다. 다정하고 섬세하고 헌신적인 친정 엄마의 밀착케어 덕분에 정말 수월한 워킹맘 생활을 했었다. 엄마는 첫 손주인 행복이의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열혈 양육자이자 아이가 원하는 건 최대한 들어주는 친절한 할머니였고, 손주의 바른 성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어떻게든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만능 해결사였다. 그리고 언제든 같이 놀 수 있는 배려심 가득한 친구였다. 아이와 보내는 1분 1초도 엄마는 허투루 보내지 않았고 몸으로 마음으로 놀아주셨다. 오죽하면 엄마인 내가 친정엄마한테 적당히 쉬면서 봐 주시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할머니의 이토록 충만한 사랑과 정성을 듬뿍 받은 행복이가 쑥쑥 커가는 동안 친정 엄마는 늙어갔다. 하루가 다르게. 


일과 육아를 한다는 핑계로, 워킹맘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구실로, 엄마의 노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또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난 어느 퇴근길 저녁, 엄마를 마중 나가겠다는 행복이를 업고 아파트 입구에 서 계신 엄마를 만났다.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에 죄책감 비스무리 한 감정들이 피로한 몸과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투가 툭 나와버렸다.


"엄마, 애가 업어 달라고 계속 업어 주면 어떡해? 할머니 허리 아프다고 안 된다고 하면 되지. 가뜩이나 허리도 안 좋으면서. 그러다 더 심해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제발 엄마, 그러지 마!" 

"............"

엄마는 말이 없었다. 엄마에게서 행복이를 뺏어 들다 시피 안고 걸어가다 절뚝이며 걷는 엄마의 모습에 무너졌다. 젊은 내가 잠깐 안고 업어도 손목, 허리, 등, 어깨 안 아픈 데가 없는데 할머니는 오죽했을까. 허리도 안 좋은데 딸이 뭐라고 할까 봐 말도 안 하고... 매일 손녀딸을 안고 업고 낮잠을 재웠던 것이었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엄마에게 더 이상 양육의 무게를 떠넘기지 않기로. 






50.1%. 일단, 그냥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만약에 아이들이 아프면..? 혹시 그날 일정이 겹치면...?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고개를 흔들며 막아냈다. '민약'과 '혹시'는 지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근무 시간을 정리하여 Y 이사님께 보냈다. 풀타임 근무 시간에 한참 못 미치는 아르바이트 수준의 시간이었지만, 감사하게도 회사에서는 근무 시간을 조정해 주었다.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다양한 변수들을 예견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불가능한 이유를 대지 않고 아무튼, 일단, 앞 뒤 재지 말고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더니 여하간 일이 진행되었다.  



일단 저지르고 수습하기.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여 너무 많은 시간을 고민하는데 쓰지 않기로 결심한 게. 그렇게 둘째 사랑이 출산 이후 2년 만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몇 달 정도로 예상했던 근무 기간은 2년이 되었고 '아무튼 시도해 보기', '그냥 시작하기'의 중요성을 깨달은 귀한 경험이었다.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공은 영원하지 않고 실패는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계속하는 용기가 중요합니다. _ 윈스턴 처칠
도전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_ 윈스턴 처칠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기회를 의미한다. – 오프라 윈프리
도전은 시작하는 순간부터 가치가 있다. – 헬렌 켈러
모든 대단한 일은 작은 시작에서 비롯된다. – 데모크리토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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