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좋아했다. 눈부신 햇살, 쨍하고 환하고 반짝이는 한여름의 낮과 밤을 모두 사랑했었다. 올해 나는 여름을 좋아할 수 없었다. 더워도 너무 덥고 습했던 2024년의 여름, 더워서 온몸에 진이 빠진다는 어른들이 말을 체감하며 처음으로 거실 소파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그렇게 노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기가 쫙쫙 빨리던 여름을 지나 이제야 사랑하게 된 10월의 어느 날, 마흔두 살의 중년 여인네가 있었다.
와우, 이리저리 거울을 돌려봐도 지루하고 지겨웠다. 언제부터 이렇게 구려진 거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시시때때로 슬쩍슬쩍 거울로 들여다본다고 바뀌는 건 없다. 거울 속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본 자로서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럴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한다.
중년 여성의 외모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옵션이 존재한다.
1. 피부과: 기미가 살짝 올라오긴 했지만 딱히 하고 싶은 시술이 있는 건 아니다.
2. 성형외과: 가장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겠지만 뭘 하든 아플 것이고 아픈 건 여전히 무섭고 싫었으며 예뻐지기까지 지난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 피부과와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어디를 꼭 집어서 고치고 싶은 부위가 있는 것도 않다. (까다롭다, 까다로워)
기다림, 비용, 고통 없이 즉각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달라질 수 있는 건... 머리였다.
생각이 다다르자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 당장 싹둑 시원하게 자르고 싶다. 단골 미용실의 원장님께 예약을 하려고 하니 마감이 되었다고 한다. 커트는 디자이너의 기술에 크게 영향을 받기에 커트 장인인 궁 원장님이 (오늘) 불가하다는 소식을 듣자 한껏 부풀었던 기대가 한순간 바람 빠진 풍선처럼 휘 사그라들었다. 아쉽지만 그래도 난 오늘 꼭 머리를 하고 싶다. 허락된 시간은 한 시간 남짓, 둘째가 돌아오기 전 이 미션을 완료해야 한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미용실들을 알아보니 한 군데가 가능했다. 10분 후로 예약을 하고 옷을 입고 뛰쳐나갔다.
"처음 오셨죠? 어떻게 해 드릴까요?"
"네. 후기에 원장님이 단발이랑 쇼트커트 장인이시라고 해서 예약했어요."
"감사합니다. 원하는 스타일 있으신가요?"
"이런 느낌이요. 사실 딱 정한 건 아니에요. 원장님께 물어보고 진행하려고요."
"두 스타일이 다른데 똑 단발보다는 층이 있는 게 어울리실 것 같아요. 앞머리도 조금 내고요."
"앞머리는 기르고 싶은데, 자르는 게 나을까요?"
"네. 개인적으로 앞머리 있는 게 더 잘 어울리실 듯요. 다른 거 또 원하는 게 있으실까요?"
"아... 사실은 지금 스타일이 너무 지겨워서, 예뻐지고 싶어요. 흐흐흐 어려운 미션이쥬?"
"여름 지나면 많이들 그러세요."
"그럼 원장님이 알아서 해 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짧은 머리 장인이라는 원장님의 커트가 끝나고 드라이까지 마쳤다. 예상보다 커트 시간이 길어져 첫째에게 둘째를 부탁하게 되었지만,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무려 이 십여 년 만에 자른 단발머리는 가볍고 산뜻했고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었다.
즉흥적으로 간 미용실에서 커트 장인 원장님을 만나, 이렇게 마음에 드는 스타일까지 얻다니...!
고민만 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원래의 동기는 흐려지고 행동력은 떨어진다.(나 같은 경우)
일단 저지르고 수습하자고 마음을 먹었더니 작은 일에 고민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그만큼 만족감이 높아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