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을 때 소설을 챙겨서 카페에 가고, 고민이 생기면 도서관에 가서 관련된 책을 찾아 읽는다. 육아도 그랬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육아서를 찾아 읽었다.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키워야지 생각했고, 책과 현실은 달랐지만 육아의 방향을 잡을 수 있어서 안심이 됐다. 아이 초등 입학을 앞두고는 초등학교 관련책들을 부지런히 읽었다. 책의 결론은 비슷했다. 학원에 의지하기보다는 아이를 실컷 놀게 하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울이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놀이를 하다가도 중간중간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 가는 것도 좋아했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세 시간도 거뜬히 책을 읽었다. (물론 만화책이 대부분이었지만.) 공부하는 습관도 자리를 잡아갔다. 초등학교 1학년 동안 꽤 많은 실랑이 끝에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것을 챙기기 시작했다. 주간계획표에 공부할 목록을 적고 공부를 다한 날에는 뿌듯하게 도장을 찍었다. 처음에는 공부하기 싫다던 울이였지만, 학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2,30분이면 끝내고 놀 수 있으니 그것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계획대로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초1 겨울방학부터였다. 이제 1학년 공부가 다 끝났으니 수학 심화 문제집을 한 번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배웠던 것이니 힘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아이에게 1학년 최상위수학 문제집을 내밀었다.
이거 1학년이 푸는 거야. 문제가 어렵지만 울이는 이제 2학년이니까 풀 수 있을 거야.
어려운 문제를 끈기 있게 풀면서 해내는 성취감을 맛보기를 바랐다. 엄마의 착각이었다. 아이는 문제를 풀다가 막히거나 틀리면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냈다. 틀린 것을 다시 풀어보자고 하면 울음을 터뜨렸다.
모르겠어, 어렵다고. 1학년 문제인데 왜 이렇게 어렵냐고!
울이가 푼 최상위문제. 풀기 싫어서 꾹꾹 연필을 눌러서 답을 썼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풀 수 있는 문제인데, 정답을 코앞에 두고 생각을 멈추는 게 아쉬웠다. 차분하게 읽고 풀면 좋겠는데 계산 실수로 문제를 틀리기도 했다. 아이는 문제가 틀릴 때마다 속상해했고, 최상위수학 문제를 푸는 날에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는 1학년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다고 자책하고 있었을 텐데, 미처 알지 못했다.
울고불고 한 끝에 최상위문제집 1학년 1학기를 겨우겨우 풀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 2학기 문제집은 멈추기로 했다. 아이가 기뻐했다.
우연히 읽게 된 "국어머리공부법"이라는 책을 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동안 어려운 문제를 풀게 하면서 아이의 수학 공부 정서를 나쁘게 만들고 있었다. 초1, 2학년 때는 수학에 자신감을 가지고 즐겁게 접하는 게 좋다고 한다. 엄마의 욕심으로 심화 문제를 들이밀고 아이를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고, 조금만 더 끌어주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쉬운 문제들을 풀도록 하는 게 맞는 걸까.
아직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어렸을 때 심화 문제를 풀어봐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아이의 자신감을 꺾지 않도록 기본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한다. 내 아이는 내가 잘 알 텐데, 선택이 어렵다.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 수 있도록 끌어주고 싶은 엄마 욕심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 거겠지. 아이를 믿고 조금 더 기다리고 지켜봐 주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학습 방법을 고민하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울이에게 필요한 건 엄마의 사랑과 응원이다. 지금 나는 아이가 문제를 풀다가 짜증내고 울면 그만 두라고 뾰족하게 다그치는 엄마다. 울이를 칭찬해 주고 지지해 주는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고 맡은 일을 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그걸 놓치고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눈빛에 하트를 가득 담아 아이를 바라봐야겠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아이와 나의 관계니까. 아이를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자고 다짐해 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