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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30. 2024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박우란)』

  아빠 엄마가 손주들을 보러 놀러 오신 지 2주째가 되어간다. 갑자기 방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방문 앞에 서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귀를 기울였다. 아빠가 화가 많이 나셨다.

  왜 내 옷을 마음대로 또 버리는데!

  잘 입지도 않더만. 옷도 늘어지고.

  지난번에도 버리고. 버리기 전에 얘기하라고 했지. 제발 좀 그만 좀 버리라고!

  그까짓 싸구려 옷이 마누라보다 중헌가. 또 뚜드럭(갑자기 욱하는) 성질 나오네.     


  엄마가 아빠 옷을 허락 없이 버린 것이 발단이었다. 어제 아빠가 찾는 것을 보면서도 엄마는 옷을 버렸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아빠에게 사실을 전했다. 엄마에게는 그 옷이 후줄근하고 낡아 보였던 것 같다. 버렸다고 말하면 아빠에게 한 소리 들을 게 뻔하니 모른 척하고 있다가 오늘 얘기를 꺼냈을 것이다.     


  아빠가 화를 내고, 엄마가 눈물을 보였다. 거실 한쪽에 앉아 아빠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말을 하면서도 끓어오르는 서러운 감정을 딸에게 내보일 수 없어 꾹꾹 누르는 것이 보였다.     

  자기 형제들한테는 나한테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한 마디도 못하문서, 나한테는 이래 함부로 해 불고. 내가 나가서 없어져부러야 정신을 차리제.      

  엄마가 안쓰럽고 애잔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쏟아내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는 것은 힘이 들었다. 예전부터 아빠에 대한 하소연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괴로웠다. 엄마의 마음을 풀어드리고 싶으면서도 깊고 깊은 속에서부터 응어리진 마음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화가 났다고 해서 자식이 듣고 있는데 없어져버리겠다는 식의 걱정할 만한 말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후들거리는 마음을 어쩔 줄 몰라했던 그때로.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다. 엄마는 왜 자꾸 아빠에 대한 불만을 나에게 쏟아낼까. 일부러 잘못한 것이 아닌데 수시로 벌컥벌컥 나를 혼내는 것일까. 엄마는 왜 외할머니를 미워할까. 나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줄 수는 없을까. 엄마가 미울 때가 많았다. 엄마가 좋으면서도 원망하는 마음이 자꾸 생겨서 괴로웠다. 지금도 엄마에게 잘해드리자고 마음먹었으면서도 정작 만나면 툭툭 밉게 쏘아대는 말투가 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를 읽으면서 엄마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는 시가에서 미움을 많이 받았다. 아빠는 엄마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엄마는 시집살이를 하면서 외롭고 서러웠을 것이다. 외할머니 역시 딸보다 아들을 챙기고 예뻐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맏이로서 집안일을 하고 동생들을 챙겨야 했다. 8살 때 밥을 안 했다고 빗자루를 들고 뛰어오는 할머니를 피해서 친구집으로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한 번씩 하셨다. 엄마에게는 할머니의 사랑과 돌봄을 받고 싶으면서도 그러지 못한 서운함과 서러움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엄마의 모습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엄마가 일부러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아니었겠구나. 서럽고 괴로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어 자식들에게 토해냈던 것이겠구나.


  엄마의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나서 말했다. 엄마가 많이 속상했겠다고. 그치만 아빠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면 내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엄마와 아빠가 싸우지 말고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엄마는 요즘은 잘 안 싸우는데 갑자기 그렇게 됐다며 머쓱해하셨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엄마에게 무뚝뚝하고 까칠한 딸이다. 엄마는 내색은 안 했지만 내심 서운했을 때가 많았을 것 같다. 친절하고 따뜻한 엄마의 모습을 바라면서 정작 나는 그런 딸이 되지 못했다.


  엄마와 나, 나와 아이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좋은 엄마, 좋은 딸이 되기 전에, 엄마를 엄마로서 나를 나로서 아이를 아이로서 인정해주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겠다. 그러다 보면 지금보다 서로를 더 편안하고 따스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지 출처: 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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