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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19. 2024

밤의 풍경과 무기력과 새벽의 관계

새벽을 선택한 이유

새벽 기상과 낮잠

  인체의 신비일까. 일어난 지 10시간 후면 나른해지고 잠이 솔솔 몰려온다. 나에게는 그 시간이 오후 2, 3시 즈음이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잠이 너무 쏟아지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거나 아예 침대에 누워서 시원하게 자고 일어나기도 한다. 일찍 졸음이 찾아오는 것은 새벽기상의 단점이면서 내 몸에게 수고했다고 토닥여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 휴일에는 오전 10시에 다시 잠들어서 오후 1시에 일어나기도 했다. 남편은 낮잠을 푹 자고 나서 기운이 펄펄 넘치는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그렇게 피곤해하고 낮잠을 3시간씩 잘 거면, 그냥 아침까지 푹 자는 게 어때?

  가끔은 남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밤의 풍경

  육아를 하기 전에는 아이들이 9시면 자는 줄 알았다. 막상 아이를 키워보니 재워야 하는 시간이 오면 서로가 예민해졌다. 침대에 누워서 바로 잠이 들면 좋으련만 밤만 되면 자꾸 물을 마시러 나가고 뜬금없이 응가를 하러 갔다. 늦은 밤, 슬그머니 거실에 나가 드라마를 보고 맥주도 한 잔 하려 했던 호젓한 계획은 포기해야 했다. 아이들은 누웠다가도 볼일을 만들어내서 자꾸 거실로 나갔다 왔고, 침대에 누워서도 쿵쿵 몸을 움직이거나 오후 1시의 에너지로 꺄르륵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품을 하는 걸 보면 잠이 오는 게 분명한데도, 잠을 이겨내라는 특명을 받은 듯 쉽사리 잠들지 않았다. 언니는 동생이 먼저 잠이 들면 대화의 대상을 엄마 아빠로 바꾸었다.

  엄마아빠, 자?

  아니.

  그럼 퀴즈 내줘. 잠이 안 온단 말이야.

  그럼 5개만 하고 자는 거야.

  퀴즈가 끝난 후에도 아이는 말했다.

  엄마, 잠이 안 와.

  잠이 안 와. 잠이 안 와. 잠이 안 온다는 말이 두려워지는 밤. 하품을 쩌어억 하면서도 울이는 계속 말을 걸었다. 말만 멈추면 바로 잠들 수 있을 텐데. 아이들 중 한 명이 먼저 잠들면 밤의 풍경이 그나마 평화로워지지만, 둘 다 깨어 있으면 우리의 밤은 울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어른들은 피곤하고 예민해져서 결국 화를 터뜨렸고,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밉다고 울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방법을 바꾸었다. 아이들에게 '잘 자, 좋은 꿈 꿔.'와 같은 두세 마디의 말을 건네고 나는 얼른 잠이 들었다. 처음부터 먼저 자려고 계획한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다가 하루분의 배터리를 다 써버리면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들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잠든 것을 알고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하다가 금세 잠이 들었다. (가끔 내가 잠든 후에도 울이와 꿍이는 1시간 넘게 이야기하고 놀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무기력

  어느 순간부터 울적해졌다. 힘이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는 건 원래 재미없는 것이라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행복한 일상이고 감사한 날들인데 만족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그러면 안 된다고 탓했다. 다시 또 우울해졌다.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울감을 떨쳐내고 싶었다.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육아를 하는 엄마들일수록 더욱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시간을 어디서 가져와야 할까. 아침에는 등원 준비, 출근 준비로 단 몇 초도 아쉬웠고, 출근 후에는 일하느라 바빴고, 퇴근 후에는 아이들을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뒷정리를 하고 내일 준비를 해 놓으면 힘이 다 빠졌다. 무엇인가를 새로 할 여력이 없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생각을 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버티다가 쏟아지는 잠과 이불의 유혹을 떨치고 조금이라도 밤을 이겨내는 것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벽의 짜릿함

  평소 일어나는 시간은 6시였다. 출근 시간에 너무 쫓기다 보니 빨리 준비하라고 아이들에게 화는 내는 날이 많았다. 시간이 여유로우면 나아질 거라 생각하며 30분 더 일찍 일어났다. 생각보다 30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아침밥을 하고 등원 준비를 하다 보면 금세 7시가 되었다. 여유로움을 맛보려면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5시로 시간을 맞췄다. 일어나기는 힘들었지만 막상 일어나고 나면 뿌듯하고 기뻤다. 시간이 생기니 명상을 하거나 해야 할 일을 미리 준비할 수 있어서 아주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휴직 중인 요즘도 새벽에 일어나려고 한다. 따스한 이불과 달디단 잠을 포기한 보상은 새벽의 고요함을 만나게 된다는 것. 캄캄한 새벽. 모두가 잠들어 있을 것 같은 시간.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불빛들.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함에 마음이 설렌다. 시간이 충분하다는 여유와 조금씩 비워지는 분주한 마음들 그리고 하고 싶었던 것으로 하루의 시작을 채운다는 것에 감사함이 생긴다.

  


  덧. 엄마의 새벽 기상은 아이에게도 전달되나 보다. 아침에 깨워야 겨우 일어나던 울이가 한 달 전부터 스스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알람을 듣지 않고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날 때도 있다. 이른 시간에 눈을 떴을 때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문틈으로 스미는 불빛을 보고 거실로 나온다. 엄마가 노트북을 타닥거리고 있으면 방해하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책장에서 읽고 싶은 책을 조용히 꺼내본다. 스스로 일어나고 싶어서인지 알람을 5분 간격으로 4개를 맞춰놓았다.

  동생 꿍이는 깨우지 않으면 아침 9시가 넘을 때까지 푹 자는 아이다. 등원준비를 하려고 깨울 때마다 더 자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아마 8살이 되면 언니처럼 스스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달콤한 기대를 걸어본다.



이미지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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