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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y 03. 2024

동굴에서 만난 기연



전쟁이었다.


어두운 하늘 위로 시커먼 전투기들이 빙빙 돌며 

표적을 찾고 있었다. 


간혹 폭탄이 떨어지기도 했다. 

내 등 뒤에서도 폭탄이 터졌다. 

긴박하고 초조했다.

나는 무명옷을 입고 있었는데 

긴 치마 때문에 빨리 달리기가 힘들었다. 

내 앞에서는 우리 언니가 치마를 펄럭이며 달리다

몇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빨리 오라고 악을 썼다.

터질듯한 심장을 움켜쥐며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발바닥에 끈적끈적한 뭔가가 묻었는지 

도저히 속도가 나질 않았다. 

바다였다. 

제주도 바다였다. 

백사장 위를 한참 달리다보니 동굴이 보였다. 

입구는 백사장과 이어지고 

끝은 바다로 이어지는 동굴이었다. 


사람들이 보따리를 메고 이고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운이 좋았는지 나랑 우리 언니는 

동굴 안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제 살았다


언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언니를 바라본 것 같다. 


그때였다. 


언니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누군가를 향해 손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임신부였다. 

하지만 모르는 여자였다. 


언니는 마치 언젠가 크게 신세를 진 은인을 만난 것처럼 

굳이 인파를 헤집고 나가 그 여자의 손목을 잡고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여기, 우리 자리로, 안으로 들어가세요. 

언니가 그 임신부에게 자리를 양보한 탓에 

우리는 동굴 입구로 밀려났다.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아는 여자도 아닌데 웬 오지랖이냐구! 


내가 짜증을 냈지만

언니는 그저 조용히 대답할 뿐이었다. 


-애를 가진 사람인데 어떡해

나는 참지 못하고 계속 씩씩거렸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판에 놀구있네! 

그때였다.

동굴 위로 폭탄이 떨어졌다.

 

폭탄은 바다로 이어지는 동굴 끝자락에 떨어졌고,

동굴 안쪽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잃었다.

그 임신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언니를 바라보았다.

언니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때 심장이 빠르게 빠르게 시작했고

나는 가위에 눌렸다.

꿈이었다.


-20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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