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세요?" 떨리지만 송곳처럼 물었다.
"제니 씨죠? 나 ㅇㅇ이 누나인데, 이제 우리 ㅇㅇ이랑 앞으로 연락이 안 될 거예요. 어디 갔는데 오래 있다 올 거라...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전해주려고 받았어요."
"어딜... 갔는데요?"
'침착하자 침착해.' 쿵쾅쿵쾅 심장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리겠다.
".... 그동안 동생이 제니 씨한테 전혀 말을 안 했다던데, 우리는 종교가 있어요. 군대를 가지 않아요. 오늘부터 병역거부로 수감생활 시작했고, 이렇게 여자친구도 밖에서 마음대로 사귀면 안 됐었는데..."
".... 무슨... 종교신데요?"
대표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종교였다.
지금도 그 통화를 끊고 너무 놀라서 그대로 얼어있던 내가 잊히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속을 수도 있구나와 이런 종교도 있구나가 어떤 공포보다 섬뜩했다.
"너는 종교가 있어?"라고 묻던 날로 기억이 거슬러갔다. 내가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다는 대답에 본인도 같은 상황이라고 한날. '그러니까 우리가 같은 게 아니었어?'
알아본 내용으로 대략 이 종교는, 대학교 진학에 보수적이고, 수혈 거부, 군대 거부, 투표도 하지 않고 애국가도 부르면 안 되고, 본인들 종교 내에서 교제하고 결혼해야 하고, 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다.
내 생일을 챙겨주던 일이 생각나면서, 막상 본인 생일엔 집에서 미역국 한번 못 먹어봤다는 말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더라면 입학할걸 그랬다는 말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너는 이 종교를 원하지 않았나 보네...
그러나 원망스럽고. 비겁하다.
감정을 쏟아내야 할 존재가 감옥에 있대고, 미치고 팔짝 뛸 상황이 되었다.
내가 같이 교회 가자고 얘기하던 말을 듣고 더 말이 나오지 않았을 수 있구나.라고 애써보았다.
속았다는 사실과 잠적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치가 떨리다가, 그날이 마지막 데이트인 줄 몰라서 못 해준 말들이 떠올라 아쉽고 보고 싶고 그리웠다가...
이내 괘씸했다가, 어쩌면 이게 나한테 해 준 배려였나 싶어 마음 아프고 절절했다가.
판단력도 점점 흐려진다. 일상에 집중을 못하고 이 느닷없는 이별은 정말 쉽지 않았다.
나 어처구니없는 이별을 당했노라고, 그는 날 속인 남자 친구였다고, 헐뜯고 욕하고 흉보며 시원하게 내지르고 몹쓸 놈을 만들기 충분한 소재이나.
감옥에 갔다고 입방아 오르게 하는 것이.. 남들에게까지 그 소식을 드러내게 하는 것은 마음이 좀 아팠다.
그래 이 사실만은...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말자.
그렇지만 '나는 왜 널 배려하고 있는가'의 생각이 더해져 괴로웠다.
그의 베프에게 연락이 왔다. 본인도 누나를 통해 최근에 소식을 알았다고.
면회를 간다기에. 난 그를 볼 용기가 없었고, 의미는 더 없었다.
그 친구를 통해 내게 늦은 사과라도 하면. 추스르고 정리하기가 수월해지겠다 생각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옥'은. 내가 감당할 선을 넘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지만 굳이 이단으로 지정된 종교를 내 가치관과 맞지도 않는데.
마음이 점점 싸늘히 식어갔다.
페이스를 찾아가고 있었다.
내가 딱 질색하는 비련의 여주인공 캐릭터를 그만 내던지자. '우리는 여기서 멈추는 것이 맞아.'
그의 친구는 면회를 다녀왔고, 내게 전해진 소식은.
"ㅇㅇ이 곧 나온대. 본인은 입대하기를 강하게 희망해."
다시 잠 못 드는 밤이었다.
사진 출처-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