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모든것을 내려놓고 떠나야만 했던 이유
20대와 30대의 장기 여행은 ‘탐험’이지만, 50대의 장기 여행은 ‘반란’에 가깝다. 가족, 부모님, 일… 나를 중심으로 촘촘히 얽힌 세상의 모든 인력(引力)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거대한 중력을 이기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결심의 방아쇠를 당긴 한 장의 부고장이 날아들었다.
마흔이 넘어가면서부터 부고장의 주소가 바뀌기 시작했다. 지인의 부모님이 아닌, 지인과 친구들 당사자의 이름이 하나씩 새겨졌다. 사고사보다 지병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삶의 끝이라는 검은 그림자는 한 뼘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날, 나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의 허망한 죽음을 마주했다. 50대 초반, 누구보다 건강해 보였던 그는 뇌출혈로 쓰러져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알뜰살뜰 모아 투자했던 강남의 아파트가 드디어 완공되어, 이제 막 행복을 누리려던 찰나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그의 죽음은 내게 묻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은 언제 살 것인가?’
지금 일을 계속하면 돈을 조금 더 모을 수 있겠지. 하지만 몇 년 뒤, 늙고 병든 몸으로 돈다발을 쥐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절대 권력자였던 김일성, 김정일조차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 시간과 죽음이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아직 심장이 뛰고, 두 다리에 힘이 있을 때, 내 영혼에 ‘안식년’을 선물하기로. 나를 얽매던 모든 것들을 과감히 끊어내기로 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안 되는 이유’를 찾는 데 전문가가 된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돼.” 자기 합리화라는 이름의 핑계들은 실천을 미루게 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그 모든 핑계를 향해, 나 불드로(불타는 영혼 페드로)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40대 불혹(不惑)과 50대 지천명(知天命)은 흔들리지 않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나이가 아니다. 더 이상 세상의 기준에 흔들리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진짜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이다!”
‘1년간의 장기 여행.’ 결심이 서자, 멈춰 있던 세상의 지도가 다시 내 방 책상 위에 펼쳐졌다. 엑셀 시트에 한 줄 한 줄 나라 이름을 채워 넣을 때마다, 멈췄던 엔도르핀이 혈관 속에서 다시 끓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이미 다녀온 50개국에 더해, 이번 여행에서 100개국의 도장을 채우고 싶었다. 마음이 이끄는 나라에서는 한 달 살기도 해볼 참이었다.
미국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시작으로, 남미 콜롬비아에서 한 달을 살고, 터키를 거쳐 유럽의 50개국을 남김없이 돌아본 뒤, 북아프리카의 모래바람을 맞는 장대한 여정.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을 밟으며 100개국 방문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현재는 105개국이 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던 지난 1년. 내 인생 가장 찬란했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나는 이제 흔들림 없이 말할 수 있다.
[첫 여행지,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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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행 중 정말로 죽을 뻔한 일이 몇 번이나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