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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돌이 아저씨, 지구 반대편으로 출근하다.

스페인어와 살사, 쿠바의 심장을 두드리다

by 불드로


과거의 나는 지독한 집돌이였다.

“그 비싼 돈 들여서 왜 사서 고생을 해? 그 돈이면 집에서 몇 달은 더 행복할 수 있는데.”

나에게 여행이란, 가성비 떨어지는 취미의 대명사였다. 어쩌다 떠난 3박 5일 동남아 패키지여행이 전부였다. 그저 남들이 가니까, 잠깐의 휴식이 필요하니까 떠났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40세에 ‘전 세계 200개국 여행’이라는 허무맹랑한 목표를 세웠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은 신비로운 나라, 쿠바였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는 첫 장거리 여행. 이번만큼은 다르게 놀고 싶었다. 관광객으로 겉핥고 오는 여행이 아니라, 그들의 삶 속으로 뛰어드는 진짜 여행을 하고 싶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공항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쿠바행 비행기 표를 끊은 그날부터, 나의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 1년간 스페인어를 배웠고, 4개월간 살사 스텝을 익혔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어설픈 스페인어로 중얼거리고, 삐걱거리며 살사를 추는 매 순간이 설렘이었다. ‘여행은 계획하는 즐거움, 경험하는 즐거움, 추억하는 즐거움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그때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쿠바. 그곳에서 마법이 일어났다. 준비해 간 언어와 춤이라는 두 개의 열쇠는,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 나의 여행 공식에 **‘현지인과의 교류’**라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 추가된 것이다.


나는 관광객이 득실대는 호텔이 아닌, 현지인들이 사는 동네에 머물렀다. 어설픈 스페인어로 동네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의 집에 초대받아 함께 럼을 마시고 음식을 나눴다. 밤에는 클럽에서 함께 살사를 추며 땀 흘렸다. 그들은 나를 이방인이 아닌 친구로 맞아주었고, 헤어지던 날에는 직접 손으로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기념품을 건네며 아쉬워했다. 준비 없이 떠났다면 결코 맛보지 못했을,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깊은 추억이었다.

편도 30시간의 쿠바 여행은 내 안의 두려움을 자신감으로 바꿔놓았다. “어? 지구 반대편도 별거 아니네?”


[현지 친구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준 기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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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배 밖으로 나온 나는 곧장 남미 일주에 나섰다. 콜롬비아를 시작으로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스페인어라는 무기 덕분에 나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급기야 세계 살인율 1위 도시인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입성해 현지인들과 어울려 음주가무를 즐겼고, 갱단으로 악명 높은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의 골목까지 누비고 다녔다.


회사에 묶인 몸이었지만, 틈틈이 떠난 여행은 어느덧 50여 개국을 넘어섰다. 내 여권에는 출입국 도장이, 마음에는 평생 마르지 않을 추억이 방울방울 채워졌다.



[한 달간 동유럽과 남미를 둘러보았던 첫 세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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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프리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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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세상이라는 놀이터에 흠뻑 빠져 행복을 쌓아가던 나에게, 거대한 위기가 닥쳐왔다.

‘코로나19.’

하늘길은 굳게 닫혔고, 세상은 빗장을 걸어 잠갔다. 여행이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나에게, 이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caged wild horse가 된 기분이었다. 사는 재미가 없다는 무기력감이 온몸을 덮쳤다. 희망 회로를 돌려봐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때, 절망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하늘길이 막혔다면 땅으로 가지 뭐. 이 기회에 대한민국이나 제대로 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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